숨진 이주노동자 자녀 장학사업 4년째 펼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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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인권문화연대 '네팔장학사업' 진행

(서울=연합뉴스) 구정모 기자 = 네팔 카트만두에 사는 얼쩌나(14)양과 비쌀(12)군은 아버지의 돌연한 죽음의 충격에서 벗어나 학교를 잘 다니고 있다.

지난해엔 아버지의 사고 보상금으로 지은 집에서 나오는 월세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이들 남매의 아버지 찬드라 라이(사고 당시 36)씨는 2005년 8월 경기도 양주시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귀가하던 중 도로에 쌓여 있는 철제 빔에 부딪혀 목숨을 잃었다.

사고 현장은 새 도로를 건설하던 곳이었지만 아무런 출입 통제 표지판도 설치하지 않았다. 고향에서 농사로 먹고 살기 어려워 수도인 카트만두로 왔다가 다시 돈을 벌고자 2001년 한국으로 이주노동한 라이씨의 '코리안 드림'은 4년 만에 물거품이 됐다.

문제는 유가족이었다. 가정 살림을 남편의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했던 아내 엄비까(34)씨는 남편의 사고 소식에 망연자실했다.

이주노동자 지원단체인 아시아인권문화연대(이하 아시아연대)는 라이씨의 사고 소식을 접하고서 장례부터 사고 관련 소송에 이르기까지 유가족을 도왔다.

이 단체의 이란주 대표는 그러나 사고 수습 과정에서 가족을 만나고 돌아오는 발길이 무겁게 느껴졌다. 아버지의 죽음을 아직 실감하지 못한 남매의 모습이 눈에 밟혀서다.

이 대표는 "엄마는 어쩔 줄 몰라 울고 있는데, 아이들은 우리가 준비해간 선물에 마냥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먹먹했다"며 "이 아이들을 장기적으로 도울 길을 그때부터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아시아연대는 이후 2006년 7월부터 10월까지 한국에서 사망한 외국인 노동자의 가족들이 어떻게 사는지 살펴보고 그들의 삶을 엮은 '보고서: 꿈 그리고 악몽'을 발간한 뒤 본격적으로 사망 외국인노동자의 자녀 장학사업에 나섰다.

처음엔 한국에서 일하다 숨진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들을 돕다가 나중에 한국 이외의 나라에서 이주노동하다 숨진 노동자의 가족들까지 지원 대상을 확대했다.

본국에 돌아간 네팔 출신 외국인노동자들이 아시아인권문화개발포럼(AHRCDF)을 만들어 아시아연대와 지속적으로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데, 이들이 한국보다 중동과 같은 지역에서 숨진 노동자들의 유가족들이 더 열악한 삶을 살고 있다고 알려와서다.

현재는 네팔 각 지역에 퍼진 AHRCDF 지역모임 회원들이 라이씨 가족처럼 딱한 사정이 있는 가족들의 사연을 카트만두 AHRCDF 사무소에 연락해오면, AHRCDF가 현지 실사 후 아시아연대와 논의해 지원여부를 결정한다.

지원 대상으로 결정되면 유가족 자녀는 사고 당시 재학 중인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도록 학비를 받는다.

아시아연대는 대학 학비까지 지원하는데, 대학 등록금은 전액이 아니고 유가족의 생활형편에 따라 부분 지원하고 있다.

아시아연대는 지난해 말 현재 25가정 52명에게 모두 27만7천350루피(한화 470만원)를 장학금 명목으로 지원했다.

장학금은 온라인 사이트(happylog.naver.com/asiansori.do)와 오프라인을 통해 후원금을 받아 마련하고 있다.

이란주 대표는 "숨진 외국인노동자의 자녀를 돕는 것은 이주로 인해 발생한 문제와 그에 따른 아픔을 같이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며 "이들에게 학비를 지원하고 있지만 큰 금액이 아니어서 좀 더 지원금을 늘릴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pseudoj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