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사회 속 노동의 그림자
[일다 2006-02-14 05:12]

국내 등록된 외국인 수는 이동 루트나 직종을 막론하고 50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출입국관리국, 2004). 글로벌 도시로 자리매김하며 아시아, 제3세계 이주민들의 욕망이 된 서울은 다문화적인 복합공간의 겉옷을 입고 있다.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불법 ‘외국인노동자’를 포함하여 이태원, 안산 원곡동, 용산 등지에 부유하는 이주민들의 주거지나 삶의 터전은 서울 시민들의 호기심과 흥미거리가 되기도 한다. 그들이 생산하는 이방 문화적 향취는 내국인들에게 즐기는 문화의 아이템을 하나 더 부가하거나, 그런 피상적인 ‘접촉’으로 위안하며 국경과 인종을 지운 다양성이 점차 뿌리내리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더해주기도 한다.

작년 말 출간된 <글로벌 시대의 문화번역>은 이 글로벌 도시의 실체가 결코 단일하거나 이미지에 불과하지는 않다고 주장한다. ‘서울시민권’을 가진 한국인 연구자인 저자 김현미는 서울의 문화적, 인종적 경계지대를 수집하고 분석한 자료를 통해 우리에게 익숙해진 글로벌 환경, 국경 해체 등이 연상시키는 다국적 자본의 이동, 국제화, 세계시민, 이중언어 구사, ‘서구화’ 등의 틈바구니에서 많은 이들이 당연시해 온 글로벌 자본의 파도에 감추어진 ‘노동’의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국경을 넘은 이들의 반영구적 노예노동

저자는 국경을 넘는 이동자들을 식별하는 장치가 자본중독적 분류체계에 의해 이미 촘촘한 등급을 매겨두고 있다고 본다. 이러한 불균형에서 “상층회로 이주와 생존회로 이주”를 양방에서 보고 있다. 저자는 ‘불쌍한 외국인노동자’로 인식되는 생존회로 이동자들의 생활공간이 사실상 적대적인 한국인들의 인식과 규범에서 스스로 맨땅에서 맨몸으로 살아남기 위한 삶의 궤적과 모임들임을 밝힌다. “노동은 허용하되 정주는 불허”하는 자본 ‘징수’중심의 후진적인 정책구조에서 이들은 서비스 직종과 육체노동자를 ‘저주 받은 자’쯤으로 인식하게 된 한국인들과 공모하여, 텅 빈 서비스 인력과 재생산 관련 일들을 영구적으로 메꿔넣고 있다.

계급화된 ‘성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 또한 저자의 주 관심사다. 이주자들의 서비스, 생산직 노동은 노예화될 뿐 아니라 ‘여성화’되고 있으며, 한국을 비롯한 중견국(?) 현지인들이 세계자본경쟁에 뛰어들면서 현지에 내려온 제품 제조나 시민권자들의 ‘웰빙 라이프’를 채워 넣는 노동분야가 제3세계국가 여성들의 이주노동을 흡입하여 새로운 사각지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밝힌다.

‘외국하녀’ 채용, ‘카탈로그에서 고르는 주문형 신부’, ‘베트남 여성 결혼’ 등 알려진 사례를 차치하고라도, 이러한 단기 자본환수적 이주노동 가운데는 여성의 몸과 성을 재료로 한 ‘산업’이 가장 밑바닥에 자리 잡고 매우 뿌리 깊게 지능적으로 진화해가고 있다. 이 책은 집중적으로 한국으로 유입되어 전국을 순회 ‘공연’한 이주여성 ‘엔터테이너’의 경험을 생생한 인터뷰를 통해 일일이 복원한다.

유입되는 노동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글로벌 시대의 문화번역>은 그보다 더 많은 경우 한국으로 ‘진출’해서 현지를 기지화한 다국적 기업의 지배구도에서 두드러진 ‘한국여성 생산직 노동력’ 수급역사에 대한 인터뷰와 문화기술도 비중 있게 다룬다. 제조업체를 중심으로 한 중소규모 다국적 기업들의 노동착취적 지배구도는 현재진행형의 여성노동사를 국내언론들과 결합해 ‘위대한 누나, 위대한 어머니 만들기’와 같은 이미지로 덧씌웠고, ‘부녀’정체성을 강요하며 ‘현지’여성들의 노동권을 찾으려는 주체적인 노력들을 ‘사적인 이유에서 비롯된 중요하지 않은 것’과 같이 폄하했다.

뿐만 아니라 같은 ‘노동운동’ 진영에서도 남성중심의 성별구도는 여성노동자를 제 가족을 지키는 민족의 영웅으로 만든다거나 국가를 위한 투사의 정체성을 강요해, 여성이면서 노동 주체인 개별자들의 일과 생활이 제 권리를 찾는 데 많은 어려움을 부가했다.

민족.인종.국가 ‘경계숭배’와 ‘경계해체’

이 가운데 국민국가, 민족정체성, 국경은 무엇인가에 대한 ‘글로벌 시민들의 숭고한 고민’도 이 책은 풀어 담고 있다. “자신의 영토 안에서 온전한


시민, 글로벌 회사원, 불법이주노동자 등을 법적으로 구별하면서 인종차별주의를 악화시킨” 토양은 최근 출간된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2>에서도 낱낱이 드러난다. 포괄적 의미에서 ‘이주노동’을 경험한 저자의 기억을 통해 극심한 한국의 자본중독적인 분류체계에 의한 ‘인종차별’ 실체를 밝히고 있다.

박노자 교수가 지적하는 바, 신자유주의적 글로벌 기업이라는 거대한 모국(또는 중심국)에 대한 새로운 글로벌 사대주의가 내거는 ‘경계해체’와, 김현미 교수의 성별, 문화, 인종, 국적 위계화를 허무는 ‘경계해체’ 작업은 글로벌 시대의 ‘경계선’ 문제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지 이해를 돕는다.

두 상반되는 ‘경계해체’가 공통적으로 만나는 부분은 그것을 반대로 뒤집었을 때의 ‘경계숭배’ 현상이다. 다국적 글로벌 기업의 자본을 중심부로, 소비와 노동시장을 주변부로 재편성한 위계화된 경계를 새로 박아 놓고서도 ‘국경에 구애 받지 않는’ 글로벌 시민의식은 다양한 인종과 국적 가운데 그 자본의 중심을 놓고 쟁탈전을 벌이는 새로운 국가주의에 지나지 않을 함정이 자리한다. 스스로 정체를 ‘중심국’에 맞추어가고 자신이 자란 ‘현지’를 타자화하는 현상도 그러하다.

여기서 악순환 되는 것은 (자국인을 포함한) 생존회로 이동자들에 대한 주체적인 차별 강화다. 이러한 사고회로는 모순적이게도 ‘현지인’으로서의 글로벌 구도에서 자기 권리를 주장할 즈음해서 국민국가주의, 순혈주의에서 비롯된 가족주의 등으로 둔갑한다. 이 틈새에서 결국 어느 ‘현지’에도, 어느 ‘국민국가’에도 속할 수 없는 이주노동의 경계인들은 글로벌 자본의 영원한 노예노동을 하게끔 되어있다.

병렬-공존하는 문화를 만드는 일

이미지, 정체성, 상징마저도 착취되어 인간의 몸과 정신, 일상적인 언어와 몸의 습관, 얼굴 근육의 표정과 제스처까지 온전히 지배된다는 면에서 기형적으로 불행해진 ‘글로벌’ 경험은 비단 ‘생존회로’ 이동자들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한국 땅에 ‘배달된’ 노동이든, 한국을 기지 삼은 다국적 기업에 속한 한국인 노동이든, 혹은 국경 밖으로 ‘진출한’ 노동이든,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제3세계 등지를 한국인이 ‘현지 삼아 재패한’ 타민족 노동이든, 최근 몇 년 사이 새롭게 ‘세계를 재패한’ 글로벌 자본의 신 질서에서 인간의 노동은 결코 즐겁지도, 자유롭지도 못하다.

두 저자들은 서로를 살해하는 필요 이상의 습관적이고도 병리적인 근대인의 경쟁심리와 급한 성장속도에 공동체적으로 휘둘려 온 후진적인 인권과 복지정책, 차별을 완화할 공동체 의식구조의 변화보다도 더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권력-자본중독적 정체성과 그러한 인간분류체계에 의해 촘촘히 짜인 ‘중심-주변 논리’의 폭력적인 위계성이 그것이다. 이 정글에서는 비단 노동, 경제, 사회적인 착취를 넘어 정체성과 상징의 착취라는 인간 몸, 정신의 매우 미시적인 구속까지 벌어지는 기괴한 결과를 초래한다.

결국 <글로벌 시대의 문화번역>은 ‘국경 없는’ 환경에서 다수의 인간형, 인종, 문화, 성별, 지역들이 지배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병렬-공존하는 의식과 문화구도를 다시 만드는 일을 제안하고 있다. 세련된 의식구조와 자생적 문화력, 소비력 증강 등으로 새로운 사회현상이 된 아시아 여성 주체들이 폭력적이고 차별적인 경계지대를 허물 수 있는 새로운 문화언어 행위자로서 적극적인 ‘문화번역자’ 역할을 하길 권고한다.

또한 신간 들어 ‘이방인’에 집중한 <당신들의 대한민국2>는 지구의 여러 곳에서 시행되는 사민주의, 여성주의, 평화주의적 대안에 대한 면밀한 선별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과, 특별히 국내 외국인 ‘노예노동’과 관련해 산업연수제도를 폐지할 것, 현재의 고용허가제 대신 노동허가제를 통해 이들에게 제대로 된 삶의 자리와 결혼의 자유, 정착, 안정의 환경을 마련할 것을 구체적인 경험과 사례를 들어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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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저널 일다 정희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