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허가제 보완부터… 이주 노동자 처우 개선 길 열렸다

[불법체류자도 노조 설립 가능]

수정: 2015.06.25 19:44
등록: 2015.06.25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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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국 후 14일 내 퇴직금 수령, 직종 전환 금지 등 독소 조항 꼽혀

사업장 변경도 사업주 허가 있어야… "이주노동자 권리부재 해소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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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노동자의 노동조합 설립을 허용한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온 25일 오후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왼쪽에서 두 번째)을 비롯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서울 서초동 대법원 법정을 나오다 팔을 올리며 함박 웃음을 짓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불법체류자를 포함한 모든 이주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는 25일 대법원 판결로 이주노동자의 처우 개선 논의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노동계는 국적ㆍ인종에 따른 근로조건 차별대우 금지 등 이번 판결의 근거가 된 법령의 목적을 중심으로 이주노동자 처우 개선 요구가 활발해 질 것으로 보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주노동자의 권리 부재 상태를 해소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라고 평했다.

우선 산업연수생 제도 폐지 이후 2004년 시행된 고용허가제의 차별적 내용부터 수정 요구가 빗발칠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게 출국 후 퇴직금 수령 조항이다. 지난해 1월 국회에서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이주 노동자는 퇴직금을 출국 뒤 14일 안에 받도록 했는데, 이에 대해 우다야 라이 서울ㆍ경기ㆍ인천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하 이주노조) 위원장은 “대표적인 차별 조항”이라며 “한국인 노동자에게 퇴직금을 지불할 때는 별도의 조건이 붙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농업ㆍ축산업 등 입국 당시 정해진 직종의 전환이 금지돼 있는 것도 인권침해 독소조항으로 꼽힌다. 때문에 최저임금 미만의 월급을 받거나 폭언ㆍ폭행ㆍ성추행을 당하는 이주 노동자가 적지 않다. 직종 내 사업장 변경은 사업주의 허가가 있을 때 3번에 한해 가능한데 정해진 기간 안에 다른 사업주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해 ‘울며 겨자 먹기’로 견디는 것이다. 앞서 지난해 국제앰네스티는 “한국의 고용허가제로 이주노동자 인권유린이 심각하다”고 지적했고, 불교ㆍ개신교ㆍ천주교ㆍ원불교 이주ㆍ인권위원회도 “고용허가제는 현대판 노예제도”라며 개선을 요구했었다.

교수ㆍ연구원 등 전문인력을 제외한 단순기능인력 이주노동자 수는 2012년 47만명에서 올해 5월 현재 58만명으로 늘었지만 이들의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베트남ㆍ캄보디아ㆍ네팔에서 온 노동자 161명을 대상으로 2013년 실시한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작업량을 제 시간에 끝내지 못할 경우 식사를 못하게 하거나(36%), 폭언(75.8%)ㆍ폭행(14.9%), 성폭행 또는 성추행(30.8%) 등 인권 침해 행위가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근로시간에 화장실도 못 가게 하는 경우(9.9%)도 있었다.

일반 작물 재배 업종의 경우 이주노동자들은 한 달 평균 297시간을 근무하지만 시간당 최저임금을 적용한 액수(144만원ㆍ2013년 최저임금은 4,860원)보다 22만원 적은 122만원을 평균 월급으로 받았다. 박진우 이주노조 사무차장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지위를 악용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며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식개선도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이주노동자가 저지른 사건ㆍ사고를 이주노동자 전체 문제인 것처럼 일반화하고, 이주노동자가 한국인 근로자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인식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