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이 나빠도 우리는 여기서 일해야 해요”

이주노동자 사업장이동제한, 강제노동의 원인

프린트하기

오류보고

2010-08-17 21시08분 참세상

경기도 김포시에 있는 가구공장에서 일을 하는 버마노동자 M씨. 목재를 프레스에 올렸다 내렸다 하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목과 팔이 견딜 수 없이 아파와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는 정밀검사를 받아야 한다며 MRI 촬영을 해야 한다지만 35만원이라는 비용 때문에 발길을 돌렸다. M씨는 회사에 돌아와 몸이 아프다고 했지만 사장은 일을 하지 않는 동안에는 월급을 줄 수 없다고 했다. 특히 M씨 회사는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있었다.

사장이 일을 종용하자, M씨는 관할 고용지원센터를 찾아가 의사진단서를 보여주며 사업장 변경을 요구했다. 하지만 고용지원센터는 사업장 이동 사유가 되지 않는다며 ‘한국에 온지 얼마 안 되었는데 힘들다고 사업장을 바꾸다보면 어떻게 여기서 일을 할 수 있겠느냐’라는 훈계만 늘어놓았다. 그 사이 회사는 고용지원센터에 근로계약해지 신고를, 출입국관리사무소에는 이탈신고를 했다. 고용지원센터 직원은 어쩔 수 없다며 회사에서 계속 일을 하던지, 본국으로 출국하던지 선택을 강요했다. 결국 M씨는 회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고용허가제가 시행된 지 6주년. 고용허가제가 묶어놓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이동제한은 그들을 여전히 멍들게 하고 있었다.

특히 최대 3회로 정해진 이동횟수 제한과, 사업장이동의 주무 기관인 고용노동센터의 ‘사업주 편들기’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빠져나올 수 없도록 족쇄를 채운다.

“왜 우리는 힘들어도 사업장을 바꿀 수 없나요”

이주인권연대가 지난 7월 12일부터 8월 7일까지 고용허가제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조사대상자 149명 중 사업장이동을 경험한 이주노동자는 113명으로 전체의 75.8%를 차지하고 있었다.

사업장을 변경한 이유로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가 19.7%로 가장 많았고, ‘더 나은 조건의 사업장으로 옮기고 싶어서’가 14.2%로 그 다음을 차지했다. 또한 ‘임금체불 등 근로기준법 위반’이라는 이유가 13.3%로 그 뒤를 이었고, ‘질병이나 상해 등 일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서’, ‘계약기간 만료’, ‘사업장과 기숙사등 환경이 열악해서’라는 답변도 많았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에게 사업장 변경은 넘기 힘든 난관이었다. 사업장 변경 과정이 용이하다고 응답한 이주노동자는 10.1%에 그쳤으며, 49.6%의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장 변경 과정이 어렵다고 응답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사업장 변경 과정이 어려운 이유로는 ‘통역 부재’와 함께, 최대 3회로 정해진 이동횟수 제한과 비자별 취업업종 제한을 꼽았다. 또한 이주노동자중 35.5%는 사업장 이동을 원했으나 실패한 경험이 있으며, 실패 원인으로는 ‘회사가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29.5%를 차지했다.

사업장 이동에 실패한 이주노동자 중 55.3%는 ‘그냥 참고 일하는’것으로 나타났으며, 무단이탈에 따른 미등록 노동자가 되는 경우도 10.5%에 달했다. 결국 사업장 이동 제한으로 미등록 노동자가 되는 경우, 단속과 추방에 쫒기며 ‘범법자’로 내몰리고 있는 상황이다.

고용지원센터, “사업주의 판단을 먼저 존중한다”

상황이 이렇지만 사업장 이동의 주무 기관인 고용지원센터는 정작 문제해결에 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업장 이동 과정에서 이주노동자들은 고용지원센터 등 공공기관의 도움보다는 개인적인 네트워크나 이주노동자 지원단체 등의 도움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업장 이동 과정에서 도움을 받은 곳은 ‘자국 동료나 친지’가 44.7%로 가장 많았고, '이주노동자 지원단체‘가 31.7%로 그 뒤를 이었다. 고용지원센터 등 공공기관의 도움을 받았다는 답변은 12.9%에 불과했다.

이주노동자들이 고용지원센터에 도움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고용지원센터가 기본적으로 사업주의 입장에서 일을 처리하기 때문이었다.

베트남 여성노동자 N씨는 식품회사에서 근무하다 동상에 걸려 업무배치를 변경했지만, 여전히 작업장은 추운 곳이었고 업무도 더욱 어려워졌다. 하지만 업체변경을 요구하는 N씨에게 고용지원센터는 “업무가 바뀌었으니 큰 문제가 없지 않느냐”며 “사업주의 판단을 먼저 존중할 수밖에 없다”고 얘기했다.

사업장 변경과정에서의 문제도 존재한다. 고용허가제에서의 사업장 변경은 근로계약해지 후 노동자가 1개월 이내에 다른 사업장으로 구직신청을 해야 하며 이를 이행하지 않을 시에는 본국으로 출국해야 한다. 하지만 이 같은 과정을 잘 알지 못하는 사업주나 노동자들은 변경 절차를 놓치기 일쑤여서 이주노동자들만 불이익을 받고 있었다.

우즈베키스탄인 H씨도 사장이 근로계약해지신고를 한 뒤 H씨에게 통보를 하지 않아 미등록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파키스탄노동자 A씨는 사장의 말에 따라 H업체에서 J업체로 사업체를 변경하기로 했으나 사업주는 ‘잘 몰랐다’며 고용지원센터에 업체변경을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결국 사장과 J씨는 함께 고용지원센터를 찾았으나 별 다른 도리가 없었으며 사장은 “이제 너 불법이니까 가라”며 무책임한 반응을 보였다. 결국 J씨는 불법체류자의 신분이 되어 강제추방 대상이 되었다.

사업장이동제한, 이주노동자 강제 노동의 원인

이주인권연대는 17일 오전,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주노동자의 노동권을 침해하고 있는 사업장 이동제한의 철폐를 촉구하고 나섰다.

출처/ 참세상

박용원 아시아의창 사무국장은 “사업장 이동제한은 강제노동 측면을 내포하고 있다”면서 “월급이 나오지 않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도 회사를 그만둘 권리를 갖지 못하는 것은 분명한 강제노동”이라고 못 박았다.

미셸 이주노조 위원장 또한 “체불임금, 성희롱, 산재, 학대 등을 당해도 회사 사장이 허가를 안 해주면 사업장을 이동할 수 없으며 이주노동자들은 도망을 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이주노동자가 도망가면 그 순간부터 미등록 이주노동자라는 딱지가 붙어 단속추방에 시달린다”고 덧붙였다.

결국 사업장 이동제한이라는 정부의 정책이 사업장에서 도망치는 미등록 노동자들을 양산하고, 정부는 또 다시 이들을 단속해서 쫒아내는 고질적인 반복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이주인권연대는 “고용허가제는 지난 6년의 시간동안 사업주의 권한 만을 확대하고, 노동자의 노동권은 축소하거나 제자리를 맴돌게 했다”면서 “이런 상황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고용허가제 사업장이동제한을 전면적으로 철폐하는 길”이라고 주장했다.(윤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