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미등록 이주노동자 선별 '합법화' 방안에 대한 이주노조의 입장

모든 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하라

법무부가 여수 화재 참사에 대한 근본적 해결에 전혀 의지가 없다는 비판에 직면해 미등록 이주노동자 선별 '합법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 동안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단속추방 정책만을 고수하던 정부가 이런 태도 변화를 보이는 것은 자신들이 추진해 온 정책이 실패했음을 시인하는 것이다.
정부의 태도 변화는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 참사로 10명이 사망하는 충격적 사건과 이에 항의하는 운동의 지속, 국제적 항의와 압력 등의 결과다.

그 동안 정부의 단속 때문에 숨죽여 지내 온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은 이번 정부 발표에 매우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단 하루라도 단속의 공포에서 벗어나고 싶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이 소식은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일 것이다. 그러나 이번 법무부 방안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많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줄 내용들이다.

출입국관리국장은 전면 합법화는 불가능하다고 못을 박고 법적 테두리 내에서 가능한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그 방안은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자진 출국을 유도한 뒤 일정 기간이 경과하면 합법적으로 다시 입국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고 “현재 고용허가제에 따라 인력송출 양해각서(MOU)가 체결된 9개 나라 출신 이주노동자들을 우선 대상으로 삼을 계획”이다.
그러나 전면 합법화는 필요한 법 개정과 신설을 통해 가능한 방법을 만들면 되는 것이지 불가능한 문제가 아니다.
한국 경제에 필요해서 받아들여 놓고 정부나 기업 모두 책임지지 않은 것이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생겨난 원인이다.
1994년 산업연수제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정부와 기업들은 입국 규제를 완화해 이주노동자들이 관광 비자 등으로 들어와 미등록으로 취업하는 일을 묵인하고 방조했다.
산업연수제, 고용허가제 모두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인정하지 않거나 사실상 행사할 수 없게 만들었고 이 때문에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생겨났다. 따라서 전면 합법화는 모종의 시혜가 아니라 정부가 만든 잘못된 정책에 당연한 책임을 지는 문제다.

또한, 정부가 진지하게 합법화 문제를 논의하려면 단속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 이 논의 자체가 정부의 단속 정책의 실패에서 나왔는데, 단속을 지속하면서 ‘합법화’를 논의하는 것은 위선이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한국 사회에서 기생하는 해로운 존재들이 아니다. 한국 사회에 부담을 지우는 짐짝도 아니다. 이주노동자들은 한국 경제의 맨 밑바닥에서 한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한국 경제와 사회에 꼭 필요한 존재들이다.
한국 사회는 우리를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불법’ 집단으로 공격받는 한 우리에게 인권과 노동권은 없다. 여수 화재 참사는 우리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끔찍한 차별과 억압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우리에게 합법화는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인정받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 조건이다. 우리는 한국 정부에게 한국의 모든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 합당한 체류 자격과 노동할 권리를 보장하는 합법화를 요구한다.

그 동안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 추방 중단, 합법화를 요구하며 투쟁해 온 우리 모두는 이제 합법화 쟁취 운동을 본격화해야 한다. 여수화재 참사로 만천하에 드러난 우리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끔찍한 차별과 억압에 맞서기 위해 운동의 단결과 확대가 중요한 시점이다. 이제 여수 참사에 항의하는 운동은 이 운동의 4대 요구 중 한 가지였던 전면 합법화를 위한 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사람은 불법일 수 없다고 생각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우리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싸워나갈 것이다. 적극적인 연대와 동참을 호소한다.


정부가 내 놓은 ‘합법화’ 방안의 문제점

첫째, 이 방안의 가장 큰 문제는 선별 구제라는 점이다.
현재 한국과 고용허가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9개국(필리핀, 베트남, 태국, 몽골, 우즈베키스탄,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스리랑카, 캄보디아)에 해당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전체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34.7 퍼센트다.
이런 선별 구제는 이주노동자들을 분열시킨다.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는 이런 식은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커다란 절망감을 심어줄 것이다.
대상을 추가로 MOU를 체결하는 나라들까지 확대한다 해도 여전히 배제되는 사람들이 남는다는 점에서 마찬가지의 문제를 안고 있다. 선별이 아니라 전체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합법화 대상으로 해야 한다.

둘째, 자진출국 후 일정 기간이 경과하면 재입국하도록 하겠다는 것도 문제다. 출국이 여의치 않은 사람들도 많거니와 근본적으로는 출국 후 과연 재입국이 보장되는가 하는 문제에서 정부를 믿을 수가 없다. 지난 2004년 자진출국 후 재입국을 믿고 출국했다가 재입국을 하지 못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정부가 재입국을 확실히 보장한다고 한다면, 한국 현지에서 체류 자격을 주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셋째, 출국 후 재입국할 사람들을 다시 고용허가제로 받아들이는 것은 새로운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양산할 것이다.  
고용허가제는 단기간 체류 허용(3년), 1년 단위 고용주와의 재계약 의무, 직장 이동 금지로 인해 많은 이주노동자들을 제도 밖으로 내몰아 미등록 신분으로 만들고 있다.
올해 유엔 이주민 특별 보고관도 고용허가제의 이런 점들을 지적하며 개정을 주문한 바 있다.
정부가 미등록 이주노동자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이런 독소 조항들을 개선한 노동허가제를 도입해야 한다.


                                                                                                             2007. 4.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