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원래 ‘다문화 사회’였다[중앙일보] 입력 2010.12.10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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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고고학자·철도기사였던 부르다레는 경의선 부설을 위해 노동자를 모집하면서 신체검사를 했다. 그는 이때 측정한 조선인들의 몸에 대해 상트르(E. Chantre)와 함께 연구, 논문으로 발표했다. 그림은 그의 논문 ‘한국인, 그 인류학적 스케치’(『리옹 인류학회지』 제21권, 1902)에 수록된 한국인의 모습.
구한말 많은 서양인이 외교·선교·무역·탐험 등의 목적으로 조선을 방문했다. 이들은 조선에 대한 견문록을 여럿 남겼는데, 이 기록들은 당시 서양인들에게 비친 조선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 자료들을 보면 서양인들은 조선인이 다른 동양인들에 비해 체격조건이 뛰어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프랑스 고고학자이자 철도 기사였던 부르다레(E. Bourdaret)는 조선인들의 평균 신장을 조사해보니 중국인이나 일본인보다 큰 162㎝였다고 기록했다(『En Coree』, 1904). 영국 지리학자 비숍(I.B. Bishop)도 조선 성인남성이 평균 163.4㎝의 키에 잘생긴 용모와 좋은 체격을 지녔다고 언급했다(『Korea and Her Neighbors』, 1897).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서양인들에게 조선이 다인종 국가로 보였다는 점이다. 네덜란드 의사 지볼트(Fr. von Siebold)는 조선인들의 외양에서 코카서스족과 몽골족의 특성이 모두 보인다고 말하였고(『Nippon』, 1840년대), 프로이센 상인 오페르트(E.J.Oppert)도 조선인을 서로 다른 두 민족이 혼합된 인종이라고 생각했다(『A Forbidden Land: Corea』, 1880). 이탈리아 외교관 로제티(C. Rossetti)도 조선인이 동방인과 남방인들의 혼혈이라 말했고(『Corea e Coreani』, 1904), 영국인 화가 랜도어(A.H. Savage Landor)는 조선인이 “마치 아시아에 거주하고 있는 거의 모든 인종의 표본이 그 조그만 반도에 정착한 듯하다”고 보았다(『Corea or Cho-sen』, 1895).

 이처럼 조선인을 여러 인종의 혼합으로 본 서양인들의 기록은 최근 학자들이 제기하고 있는 한국 단일민족설의 ‘허상’에 대한 논의와도 잘 맞아 떨어진다. 이광수의 『조선민족론』(동광, 1933) 이전까지는 조선인이 단일(혈통)민족이라고 표현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신채호(『독사신론』, 1908), 박은식(『몽배금태조』, 1911) 등은 조선인이 다양한 민족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별다른 거부감 없이 인정하고 있었다(박찬승, 『민족, 민족주의』, 2010). 그런데 일제강점기나 남북분단 등의 역사적·정치적 맥락에 의해 단일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에 이민·국제결혼이 확산되는 것을 낯설게 생각하거나 차별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없다. 원래부터 한국은 다양한 외양의 사람들이 공존하고 여러 인종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다문화사회’였으니 말이다. 마침, 오늘은 세계 인권선언일이다.

이영아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