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 인간'에게 강제 노동시키는 한국…언제까지?

[스탑 크랙다운] <1> 고용 허가제에서 노동 허가제로

정영섭 이주노동자운동후원회 사무국장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6-28 오전 11:28:15

    

     

'스탑 크랙다운'이라는 밴드가 있었다. 서울역 앞 가설 무대에서 '스탑, 스탑, 스탑, 크랙다운'(단속 추방 중단)을 경쾌한 펑크 사운드에 실어 외치던 이 밴드의 멤버들은 모두 이주노동자들이었다. 밴드의 보컬로 '단속 추방 중단'을 외치며 인기를 끌었던 미누(미노드목탄) 씨는 자신의 노랫말과 정반대로 지난 2009년, 네팔로 단속 추방 당했다.

88올림픽 이후 '코리안 드림'을 꿈꾸던 각국의 노동자들이 본격적으로 한국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한국의 이주노동자 역사는 얼추 25년이 됐다고들 한다. 그러나 착각이다. 한국인들의 형, 누나, 부모는 과거에 이주노동자들이었다. 중국으로, 독일로, 일본으로, 미국으로 일거리를 찾아다니던 한국인들의 역사까지 합하면 한국의 이주노동 역사는 100년을 훌쩍 넘긴다.

그러나 2013년, 한국 내 이주노동자 현실은 처참하다. 2007년 여수 출입국관리사무소 화재 참사로 이주노동자 10명이 사망하면서 사회적 관심을 끌었지만, 그뿐이었다. 노동 환경은 통제돼 있고, 이를 악용한 '인종·인권 차별'은 전국 곳곳에서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언론에 잘 등장하지 않을 뿐이다.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다. 오히려 '강제 추방'을 실적화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미누'들이 말 못할 통제 속에서 인권 침해에 시달리다 해외로 추방되고 있다.

1993년 산업연수생 제도를 도입한 이후 편법 활용과 인권 침해 문제 등이 야기되면서고용 허가제가 이를 대체했다. 고용 허가제가 시행된 지, 오는 8월 17일이면 9년이 된다. 연수생 신분으로 각종 불이익을 감내하던 이주노동자들의 신분은 다소 개선됐다는 평이 있긴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파리 목숨이다. 회사를 마음대로 옮길 수도 없고, 회사에서 잘리면 불법 체류자로 전락한다. 심지어 아무리 일을 열심히 하더라도 회사 상황에 따라 불법 체류자로 전락할 가능성은 상존한다.

현행 고용 허가제의 문제는 무엇이고, 대안은 어떻게 마련해야 할까. '이주노동자 차별 철폐와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공동행동)'과 <프레시안>은 고용 허가제 시행 9년을 되짚는 기획을 마련했다.

공동행동은 민주노총, 서울경인이주노조, 한국이주인권센터, 사회진보연대, 다함께, 전국학생행진,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민변 노동위원회, 인권단체연석회의, 아시아의창, 아시아의친구들, 지구인의정류장 등 30여 개 이주, 노동, 사회 단체들이 함께하는 연대체다.<편집자>


ⓒ프레시안(손문상)

비리와 인권 침해의 온상, 연수생 제도

1980년대 후반부터 유입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정부 정책은 처음에는 묵인이었다. 1990년대 초반부터 이주노동자 관련 제도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제기되자 정부는 산업연수생 제도를 만들었다. 이는 산업 기술을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노동자를 본국에서 데려다 쓰는 제도였다. 지금도 실업계 고교의 실습생 등이 그러하지만 연수생의 지위라는 것은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았다. 노동자로 똑같이 일하지만 월급은 턱없이 적었고, 여권과 통장 압류, 욕설과 폭행, 산재 다발과 미보상 등 인권 유린이 일상적이었다.

당시 송출을 담당했던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는 송출 비리로 얼룩졌다.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서 일하려고 본국에서 브로커들에게 1000만 원 넘게 돈을 내야 했다. 그러니 대부분의 산업연수생들은 사업장을 이탈할 수밖에 없었다. 미등록 체류자로 일하면 돈도 훨씬 많이 받을 수 있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전체 이주노동자 가운데 압도적인 숫자가 미등록 체류자였다. 예컨대 2002년에 전체 이주노동자 34만 명 중 미등록 체류자는 28만9000명으로 78%에 이르렀다.

고용 허가제 도입과 강제 노동

외국인 고용 허가제는 산업연수생 제도를 대체하기 위해 2003년에 법이 만들어지고 2004년부터 실시된 제도이다. 벌써 9년이 되었다. 한국 정부가 아시아 지역 15개 국가와 양해각서(MOU)를 맺어 인력을 들여오고 있다. 이주노동자는 최초 3년 동안 일할 수 있고, 사업주가 재고용을 해주면 4년 10개월까지 일할 수 있다. 현재 국내에 들어와 있는 동남아·서남아 출신의 이주노동자는 이 제도를 통해 들어와서 일을 하고 있다. 2013년 5월 현재 약 23만5000명이 있다. 고용 허가제는 이주노동자의 형식적 지위를 노동자로 인정하고 노동관계법을 적용하지만, 실제로 모든 권리는 사업주에 귀속되어 있는 제도이다.

우선,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없다. 계약 기간이 끝나기 전에는 휴업이나 폐업, 폭행, 성희롱, 심각한 임금 체불 등의 사유가 없이는 사업주 동의 없이 회사를 옮길 수 없다. 사유가 있더라도 이주노동자가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매우 어렵다. 사업주는 이를 이용해 부당한 처사를 강제한다. 사업장 내의 불합리, 비인간적 대우, 인격 무시, 열악한 작업 환경 등을 이유로 회사를 그만두고자 하는데 사업주가 동의해주지 않으면 그대로 일할 수밖에 없다.

뭐라도 한마디 할라치면 "자꾸 그런 소리를 하면 너네 나라로 돌려보내버릴 거야"라는 식의 협박이 돌아온다(그러나 사업주에게 노동자를 본국으로 강제로 돌려보낼 권한은 없다). 심지어 일부 사업주는 일방적으로 이주노동자를 쫓아내고는 고용센터에 사업장 이탈 신고를 해버린다. 그러면 이주노동자는 미등록 체류자가 되고 만다. 그만두고 싶어도 못 그만두는 것은 강제 노동 아닌가?

사업장 변경 제한에 대해 국가인권위는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 권고안에서 사업장 변경 제한 완화를 권고한 바 있으며, 2007년 8월 UN 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는 고용 허가제 하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직장 이동에 심각한 제약을 받고, 법적 보호를 받는 데 장애가 있으며, 직장에서 겪는 차별적 대우와 학대를 구제받지 못한다는 데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2009년 6월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적용위원회(Standards Committee)도 '이주노동자 사업장 이동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 유연화'를 촉구했다. 2012년 UN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다시금 사업장 변경 제한을 대폭 완화할 것을 권고했다. 한국 정부는 아직도 묵묵부답이다.

둘째, 사업장을 옮길 때 3개월 내에 새로운 사업장을 구하지 못하면 미등록 체류자가 된다. 계약이 끝나거나 사업주가 동의해주거나 심각한 인권 침해를 증명해 사업장을 옮길 수 있게 될 때, 이주노동자는 3개월간의 구직 기간을 가질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는 충분한 기간을 두고 더 나은 노동 조건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가로막는다. 더욱이 현재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것이 더 힘든데 이를 3개월 내로 하라는 것은 한국 노동자에게도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이주노동자는 여러 일자리를 비교 검토하여 자기에게 더 나은 일자리를 찾는 기회를 충분히 가지키는커녕, 오히려 빈 일자리가 있으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제한 기간을 넘기지 않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취직을 해야 하는 것이다.

사업장 변경 지침까지 개악

셋째, 사업장 변경 시에 구인업체 명단을 제공하지 않는 것으로 노동부가 지침을 바꾸었다. 작년 7월까지 노동부는 구직하는 이주노동자에게 3일간 유효한 사업장 알선 명단을 주었다. 한 번에 5-10개의 명단을 받아서 노동자는 전화도 해보고 직접 가보기도 해서 구직 활동을 했다. 3일이 지나면 다시 명단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노동부는 '브로커'들이 개입해서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이동을 부추긴다는 근거 없는 얘기를 하며, 구인업체 명단 제공을 일방적으로 중단했다. 대신 업체들에 이주노동자 명단을 주고서는 연락하게끔 바꾸었다. 이주노동자들은 앉아서 사업주들의 연락을 기다리는 처지가 된 것이다. 그야말로 주인의 선택을 기다리는 머슴의 처지와 무엇이 다른가? 그래서 작년에 분노한 이주노동자들이 8월과 9월에 1000명이 넘게 참여하는 대규모 집회도 개최해서 지침 철회를 요구했으나 역시나 노동부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넷째, 재고용에 대한 권한이 전적으로 사업주에게 있다. 3년이 만료되면 재고용을 하는 것은 사업주의 권한이므로 이주노동자는 사업주 처분에 따라야 한다. 특히 재고용되면 1년 10개월을 더 일할 수 있는데 조금이라도 더 일하고자 하는 이주노동자 입장에서는 재고용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재고용되기 위해 부당한 일도 그냥 감내하는 경우가 많다. 한편 4년 10개월이 끝난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고용 연장을 하는 개정 법률이 작년부터 실시되었는데, 그 조건은 '사업장을 변경하지 않았을 것'이다.

즉 '성실 근로자 재입국 제도'라고 이름을 붙인 이 제도는 4년 10개월 동안 한 번도 회사를 바꾸지 않은 이주노동자를 성실한 근로자로 간주해 혜택을 주는 모양새를 취해서, 사업주가 재고용할 시에 3개월 본국에 갔다 온 후 다시 일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는 한마디로 아무리 힘들어도 사업장을 옮기지 말라는 얘기다. 사업장을 옮기지 않으면 성실 근로자이고 옮기면 불성실한 나쁜 근로자란 말인가?

▲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 참사로 사망한 이주노동자 추모 대회에서 '스탑 크랙다운'이 공연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박세열)

가장 열악한 농축산·어업 분야

다섯째, 농축산·어업 관련 고용 허가제 이주노동자의 문제다. 고용허가제 노동자 가운데 가장 처지가 열악한 이들이 농축산업 및 어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들이다. 고용 허가제는 업종 간 이동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은 제조업으로 이동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 업종에서 일하는 고용 허가제 노동자들은 새벽에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고 종종 밤늦게까지 일하기도 한다. 농촌 지역에서 비닐하우스나 가축 농장에서 일을 하거나, 배를 타고 나가 어패류를 잡는 일을 한다. 이러한 일들은 일이 많을 때에는 잠도 못 자고 휴일도 없을 정도로 많지만, 농한기에는 일감이 매우 적다. 그러다보니 최저임금조차 못 받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욱이 농축산·어업은 근로기준법상의 근로 시간과 휴게, 휴일 규정 적용에서 제외되어 있어서 잔업수당이나 야간수당, 특근수당이 따로 없고 휴게 시간이나 휴일도 정해져 있지 않아서 고통이 더욱 크다. 그래서 미등록 체류율도 일반 제조업 고용 허가 노동자보다 훨씬 높다. 어업의 경우 30%에 달한다. 또한 농축산·어업의 특성상 인근 도심이나 주거지와 동떨어진 곳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성들의 경우 사업주나 관련 남성들로부터 성희롱을 당할 위험에 상당히 노출되어 있다. 제대로 된 주거 시설도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비닐하우스나 움막 같은 곳도 비일비재하다.

고용허가제 폐지 절실

고용허가제는 '단기 순환', '정주 방지', '내국 인력 보완'의 원칙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즉 노동 능력이 가장 왕성한 20~39세의 노동자들을 불러와서 단기간에 최대한 부려먹고는 내보내고 다시 새로운 노동자들을 쓰는 시스템이다. 오죽했으면 앰네스티에서 발간한 한국 내 이주노동자에 대한 보고서의 제목이 '일회용 노동자'였겠는가. 한마디로, 일국 범위를 넘어 아시아적 규모의 '단기 순환 노동 착취 제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용 허가제는 더 이상 지속될 수도 없고 지속되어서도 안 된다. 무엇보다 노동의 권리와 자유 보장이 강조되어야 한다.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주에게 종속되지 않고 자유의사대로 노동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고용 허가제가 9년째이니 그 폐해를 파악하기에는 충분히 긴 시간이다. 이제는 근본적인 전환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언제까지 노예 허가제라는 비난만 받을 것인가?

돈을 가진 투자자, 서구 중심의 전문 인력 등에게만 특혜를 주고 아시아 지역 출신의 소위 비전문 노동자, 결혼 이주민, 미등록 노동자에 대해서는 인종적으로 차별하고 배제하는 야만적인 정책을 이제는 끝내야 한다. 정착을 방지한다고 하지만 이미 우리 사회는 이주민 인구가 140만 명을 넘어섰고 결혼 이주민도 12만 명이 넘으며 그 자녀들까지 합하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물론 그 숫자는 점점 더 늘어난다. 반면에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한국의 노동 인구는 줄어든다. 결국 '노동 이민'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고 지금과 같은 제도로는 안 된다.

그리고 노동3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이주노동자가 실질적으로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단체교섭 및 단체행동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조 결성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역시 사업주에 대한 종속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사업주가 어떠한 불이익이라도 부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역시 고용 허가제의 근본적 전환과 결부되어 있다.

이주 운동 진영에서 생각하는 대안은 '노동 허가제'로 불러 왔는데 그것은 △사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 △5년 이상의 기본적 체류 기간 보장 △일정 기간 체류한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이 노동자가 한국 사회에 기여한 점을 인정하는 취지에서 원할 경우 정착 가능한 통로 보장 △노동관계법, 사회보장법 적용 △실질적인 차별 금지 실효성 보장 △가족 동반 허용 △언어 교육 및 통역 지원 대폭 확대 등의 방향이다.

이러한 대안들이 현실에서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주노동자 운동과 한국 노동자 운동의 주체적 대응이 첫 번째 과제다. 잘못된 정책의 피해자, 도와주어야 할 사람으로서만이 아니라 정책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주체로서 이주노동자 집단과 그 운동이 강조되어야 하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연대와 조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주노동자 스스로 이주노동자 조직을 확대하고 집단적 발언권을 키워가기 위해, 이주노조를 비롯한 여러 이주노동자 단체들이 노력하고 있다. 한국 사회 진보 운동의 관심과 역량 투자가 절실하다.
 

/정영섭 이주노동자운동후원회 사무국장 필자의 다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