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허락 없이는 회사도 못 그만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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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이주노동자 A씨는 서울의 한 떡 공장에서 일한다. 근무시간은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아침 7시까지. 일요일에도 일은 계속됐다. 하지만 급여는 최저임금 미만이었고, 야간수당도 따로 없었다.

A씨는 "한국에 오기 전에는 전혀 알지 못한 부분"이라며 가슴을 쳤다. 입국 전 체결한 표준근로계약서에는 야간근로가 없었고 최저임금과 수당지급이 표시돼 있었다고 한다.

베트남에서 온 B씨는 "한국에서 어업에 종사하게 될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하지만 막상 B씨가 안내된 곳은 충남 서산의 한 수산시장이었고 B씨는 하고자했던 '고기잡이' 대신 종일 시장 안에서 조개를 손질하는 일을 해야 했다. 다른 일을 하고 싶었지만 '3년 계약'에 묶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이주노동자들이 이러한 어려움을 겪게 된 건 지난 2004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고용허가제' 때문이라고 노동계는 주장한다.

국내 인력을 구하지 못한 기업이 적정규모의 외국인근로자를 합법적으로 고용할 수 있도록 마련된 제도로, 인력난 해소와 이주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취지로 마련됐지만 도입 7년이 지난 현재 오히려 이주노동자의 '발을 묶는' 제도로 전락했다는 것.

이에 민주노총 등 대전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27일 대전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용허가제 폐지와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 보장을 촉구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사업장에 대한 부실한 사전정보 제공으로 이주노동자들은 자신이 어떤 곳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입국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지적했다.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업주의 동의가 있어야 퇴사할 수 있고 사업장 이동 역시 3회로 제한돼 있어 부당한 대우를 그대로 참고 일하는 근로자들이 많다"고 주장했다.

발언에 나선 서민석 대전이주노동자연대 대표는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의 권리가 배제된 사실상의 노예제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 대표는 또 "고용상의 권리가 사실상 사업주에게 집중되다보니 이주노동자들 역시 열악한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제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사업주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고 덧붙였다.

    이성우 공공연구노조 정책위원장 역시 "이주노동자 차별 문제도 해결 못하면서 어떻게 글로벌 사회, 국제 수준의 노동조건을 말할 수 있겠느냐"고 일침을 놓았다.

    한편, 이날 '주인공'인 이주근로자들은 한 명도 기자회견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서민식 대표는 "한 달에 고작 한 번 쉴 수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열악한 환경을 스스로 고발하기에는 시간도, 사회적 여건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