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에 소속되지 못한 자들의 시선

[일다 2005-05-31 03:54]  

‘나는 **나라 사람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어디서나 ‘이방인’임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영화 <추방된 사람들>은 프랑스인이되 완벽하게 프랑스에 소속되지 못한 두 명의 젊은 남녀가 스페인을 거쳐 알제리로 떠나는 과정을 감각적인 음악과 영상에 담아냈다.

애인 나이마(루브나 아자벨)에게 알제리 여행을 제안한 자노(로맹 뒤라스). 자노의 할아버지는 프랑스가 알제리를 식민통치하던 시절 독립운동을 하다 감옥에서 죽었다. 그런데 자노의 할아버지처럼 알제리의 독립을 몸소 지지했던 알제리 출신 프랑스인들은 본국에서 은근한 차별에 시달린다.

알제리 출신 프랑스 작가 까뮈는 국내외로 화려한 명성을 자랑한다. 그러나 프랑스 지식인들은 고집스러운 까뮈의 성미를 가리켜 ‘알제리적’이라고 부른다. 자노 또한 프랑스에 완벽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처지다. 한편 나이마는 아버지가 아랍계였지만 자신이 프랑스인이라고 생각하며, 애써 낯선 이들 앞에서 자신이 프랑스인임을 강조한다.

자노와 나이마는 무임승차를 하면서, 때로는 농장에서 일해서 여비를 벌어가면서 알제리에 다가간다. 이들은 여행 초반에는 자유를 만끽하며 음악과 춤, 맛있는 음식이 그득한 풍경을 즐기지만, 낯선 공간에서 언어를 배워 적응해야 하는 현실에 부닥치며 점차 변해간다. 감독 토니 갓리프가 직접 작곡한 현란한 음색을 자랑하는 음악들이

이들의 심리적 변화를 은유한다.

“나의 종교는 음악”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자노의 귀에는 언제나 헤드 셋이 꽂혀있으며 거친 테크노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 테크노 음악은 춤을 추는 정열적인 스페인 여성의 플라멩고를 거쳐 타악기를 쉼 없이 두드리며 수피교(이슬람의 신비주의종교)의 의식을 행하는 알제리인들의 연주로 변한다. 자노와 나이마의 마음 또한 보다 자유롭고 편안한 상태로 이동한다. 자노는 할아버지를 비롯한 가족들이 알제리에 남긴 사진을 보면서 비로소 가족을 잃은 상실감을 표출한다.

나이마의 경우는 자노보다 훨씬 복잡하다. 여행 초반부터 나이마는 타인의 시선에 신경 써야 할 필요가 없는 현실을 축복이라도 하듯 마음껏 춤을 춘다. 그러나 숲 속에서, 과일농장에서 성적욕망을 발산하던 그녀의 몸에는 그녀 자신이 이유를 밝히기를 거부하는 흉터가 있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몸에 여러 가지 사회적 의미가 투사된다고 본다. 나이마의 몸 또한 마찬가지다.

그녀는 스페인에서 낯선 남자의 유혹에 이끌렸다가 자노에게 ‘몸을 함부로 굴리는 나쁜 년’이라는 욕을 먹고, 알제리에서는 부르카를 쓰지 않고 얼굴과 등을 드러냈다는 이유로 “너 때문에 저주를 받는다”는 폭언을 듣는다. 그녀의 몸이 지닌 상처는 약 15분의 롱테이크와 클로즈업으로 처리된, 무아상태로 빠져드는 수피교 의식을 통해 비로소 치유된다. 마치 굿판에서

망자를 만나서 산 자들이 눈물 흘리듯, 나이마는 정신 없이 몸을 흔들면서 눈물을 쏟아낸다.



자노와 나이마는 프랑스에서 알제리로 향하면서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고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한다.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분명하게 자각한 셈이다. 나이마는 아버지가 가르쳐주지 않았던 아랍어를 천천히 배워나가고, 자노는 할아버지의 무덤에 자신의 헤드 셋을 남긴다.

그러나 현실에는 돈을 벌기 위해 유럽으로 떠나는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있다. 감독은 자노와 나이마가 자신들과는 반대로 알제리에서 파리로 향한 남매들을 만나도록 설정해,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이들은 몰래 차 바닥에 붙어서 여행 길에 오를 정도로 궁핍하고 신분이 불안정한 처지다.



아랍인 아버지와 집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고향 알제리를 떠난 감독은 스스로의 상처와 혼란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추방된 사람들>에는 비록 외부자 자노와 나이마의 시선을 빌리기는 했으나, 알제리인들의 종교의식과 일상, 독립운동과 내전, 지진으로 인해 황폐해진 알제리 거리를 세심하게 담아내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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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저널 '일다' 김윤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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