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기본법에 무엇을 담아야 하나



작성자 |  koilaf   작성일 |  2009/06/25 2:44 pm




전문가들 다양한 견해 제시

    (서울=연합뉴스) 홍덕화 기자 = 여야 의원 37명이 참여하는 국회 다문화 포럼이 지난 18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출범, 다문화기본법 제정 방침을 밝힌 가운데 전문가들은 기본법의 제정 방향에 대해 "콘트롤 타워 기능 강화", "`요요 이민' 대책 강구", "인권중심 법 제정" 등 다양한 견해를 내놓았다.

   전문가들은 우선 정부의 각종 부처와 지자체, 시민단체 등이 각각 다문화 정책을 추진, 나름대로 의미 있는 성과를 올렸다는 점은 인정했다.

   하지만 부처 간 중복성 등으로 난맥상을 보여온 법과 제도를 시급히 정비해 통합 관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데 한 목소리를 내면서 추진 방향에 대해서는 '주무 부서의 선정' 문제를 놓고 엇갈리는 시각을 보였다.
   국회 다문화 포럼의 산파역인 김성회 (사)한국다문화센터 사무총장은 25일 다문화 기본법의 추진 일정에 대해 "국회 입법조사처와 함께 빠르면 7월 중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로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다문화 기본법안을 만든 뒤 공청회(8월중)를 거쳐 9월 정기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며 회기 내 통과될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이호영 국무총리실 사회문화정책관은 "다문화 정책이 법무부 등 8개 부처로 분산돼 있고 관련 법도 6개에 달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는 만큼 하나의 법 체계로 묶어 관리하자는 기본법의 제정 취지나 필요성은 공감한다"면서도 "이를 위해서는 여러 부처가 기능별로 별도 관장해 온 다문화 정책의 주관 부서를 정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어 기본법 제정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다음은 다문화기본법의 방향 등에 대한 전문가들의 견해를 정리한 것이다.

◇ 박화서 명지대 사회교육원 교수(이민행정)

   = 세계적으로 볼 때 정주이민보다 순환이민(circular migration)으로 상징되는 일시 체류 형태의 이민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기본법 제정시, 이민 갈 때 역이민까지 염두에 둔 사람들이 많아졌고 이민과 역이민을 반복, 한 곳에 정착 못하는 이른바 '요요 이민'이 늘고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요요 이민은 다이어트 부작용 용어인 '요요 현상'을 빗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민자에게만 한국 문화를 가르치려고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기보다 한국인에게 다문화적 공동체에서 고유 문화를 보존 유지시키고 글로벌 마인드로 무장된 경쟁력 있는 시민으로 양성하는 데에도 관심을 둬야한다.

   또, 법 제정시 예산확보 근거를 만들려고 구체적인 내용까지 담으려는 유혹을 받을 수 있으나 지나치게 상세한 부분까지 넣으면 급진전하는 다문화 현상을 따라잡기 어려워 법 자체가 화석화되는 악법이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민 현상을 융통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이민자와 글로벌 현상이 위주가 되는 포괄적 기능을 담은 법을 제정해야 한다.

◇ 한국염 (사)한국이주여성 인권센터 대표
   행정안전부 등 각 부처마다 외국인 지원조례, 보건법, 다문화가족지원법 등 다문화 가정을 지원하는 법률이나 조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법(母法)인 재한 외국인 처우 기본법의 존재로 인해 합법 체류자만 지원을 받도록 되어 있다.

   국내 외국인의 절반 가량이 노동자이고 노동자의 절반이 미등록 상태(불법 체류자)인 점을 감안해 새로 제정되는 기본법은 합법과 불법의 구분보다 인권 중심의 법이 되어야 된다.

   또, 다문화 정책이 국제결혼 가족에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노동자 문제에 소홀해졌던 게 사실이고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 가정이 아닌 외국인끼리 결혼한 가족에 대한 지원은 거의 없는 등 법이 제한적으로 운용되는 한계가 있었다.

   아울러, (이혼 등) 이런 저런 이유로 가족이 해체된 사람에 대한 지원도 등한시돼 온 만큼 이주노동자 자녀, 특히 이중에서도 미등록 노동자의 자녀에 대한 지원책도 꼭 모색돼야 한다. 아울러 한국이 유엔 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나라인 만큼 아동 보호에도 역점을 두는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

◇ 홍기원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선임연구원
   외국인 처우 개선법 등 각종 다문화 관련 법의 대부분은 부처마다 예산 확보의 수월성 등을 염두에 두고 행정업무에 대한 근거법으로 만든 성격이 없지 않다. 다문화 기본법은 출입국, 다문화 가정 등 여러 부문을 포괄하는 방향으로 제정돼야 한다.

   또, 의원 입법으로 하더라도 주관 부처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기본법을 이끌고 갈 주무 부서의 선정이 중요한 만큼 이 과정에서 부처간 적극적인 협의 등을 통해 '최대 공약수'를 낼 수 있는 방향으로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기본법 제정에 앞서 기존의 각종 법의 토대 위에서 선언적인 의미를 추가할 것인지 중장기 계획을 담은 포괄적인 내용을 담을 것인지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 그동안 행정 경험상 선언적 의미의 법이 제정되더라도 기존의 법들이 정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문화 업무가 부처 간 중복적으로 이뤄지지 않도록 통폐합 차원에서 정비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기본법 제정 논의에 참여할 구성원의 성격도 중요하다. 다문화와 관련 분야의 학자나 실무경험이 있는 현장 전문가 외에 문화인류학이나 사회학 등 사회적 관점에서 정책을 연구,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전문가들도 참여하도록 적극 유도하는 게 바람직하다.

◇ 이호영 국무총리실 사회문화정책관
   기본법 제정의 선결 과제인 총괄 부서 선정과 관련,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다문화 포럼에서 지적됐던 것처럼 총괄 부서 역할을 해 온 법무부로부터 총괄 기능을 떼어내 다른 부서로 이관하자는 주장은 여러 부처의 이해 관계가 얽혀 있는 현실을 직시해 볼 때 실현되기 어렵다고 본다.

   이런 점을 감안해 정부는 9월 중 총리실 산하에 설치할 다문화 가족 정책위원회를 통해 각 부처의 정책 추진에 대한 총괄 조정 기능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외국인 정책과 달리 다문화 정책에서는 복지, 교육, 고용, 여성정책 등 한층 포괄적인 차원에서 범정부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주관 부서 선정의 난항 등으로 기본법 제정이 조기에 어렵다는 판단이 드는 만큼 이 법의 취지를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정부가 수시로 관계 부처 회의를 열거나 효율적인 예산지원 등 콘트롤 타워 기능 강화 대책을 한층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할 것이다.

◇ 김성회 (사)한국다문화센터 사무총장
   "중구난방식" "지리멸렬" 등의 지적을 받아 온 정부의 다문화 정책을 제대로 정립하려면 총괄부서를 법무부에서 종합 행정 능력을 갖춘 행정안전부로 바꿔 미래지향의 다문화 행정을 펴야 한다. 법무부는 출입국 관리, 외국인 범죄자와 불법 체류자 단속 등 통제 중심의 업무에 주력, 각 부처의 다문화 행정을 총괄하는 데 한계가 있다. 반면, 행안부는 지자체와 연계 등 다문화 서비스 전달체계를 갖춰 사회통합 정책을 펼치는데 적합하다.

   소관 부처 선정 못지 않게 컨트롤 타워 기능의 정립도 중요하다. 지금까지 법무부가 주관 부서 역할을, 또 국무총리가 위원장으로 있는 외국인 정책위원회에서 총괄 심의를 해왔으나 이는 절차적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외국인 100만명 시대에 접어든 데다 극심한 저출산과 고령화 현상을 겪고 있는 점을 감안해 대통령이나 총리 직속으로 외국인ㆍ다문화정책을 총괄하고 실질적으로 조정하는 기구를 설치, 국가발전 전략에 입각해 기본 계획을 수립하고 전달체계를 조정하는 역할을 맡겨야 한다.
   이민정책의 경우 캐나다, 호주, 미국 등에서 효과를 봐 온 점수제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고, 관계법령을 통합한 프랑스의 이민통합법안과 강제적 사회통합프로그램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 정책결정에서의 중앙과 지방정부의 협정이나 서비스 전달체계의 민간협력적 모델을 보여주는 캐나다나 지방정부와 언론의 역할을 중시하는 호주의 모델도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 밖에 자치단체가 중심이 돼 지역 차원의 거버넌스 형태로 문제를 푸는 일본의 '밑으로부터의 다문화 공생 모델'도 참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