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시대…中企 설 풍속도
"내국인·외국인 근로자가 따로 있나요"

입력: 2011-02-01 15:58 / 수정: 2011-02-02 05:22

경기도 김포의 모터펌프 제조업체 대한중전기(대표 김재훈)에서 일하는 베트남인 팜반혹씨(27).그는 지난달 29일 1년반 만에 특별휴가를 받아 베트남 남동부에 있는 고향 남딘(Namdinh)으로 떠났다. 두둑한 설 보너스에다 회사에서 준비해준 생활용품 선물 꾸러미까지 챙겨간 그는 다음 달 초 복귀할 예정이다.

대한중전기는 지난해부터 설과 추석 명절이 돌아오면 8명의 외국인 근로자를 순번대로 고향에 보내주고 있다. 한 달여의 장기 휴가에다 왕복 비행기 값이 만만치 않지만,이직률을 크게 낮추고 생산성을 높이는 효과가 더 크다는 게 회사 측 판단이다.

중소 제조업체에 근무하는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처우와 인식이 바뀌고 있다. 이들에 대한 산업현장의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다문화 · 다인종을 받아들여야 지속적으로 성장 탄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회적 공감대도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시각을 바꿔 놓고 있다는 분석이다.

대한중전기는 내 · 외국인 구분 없이 기본급의 100%를 설 보너스로 지급했다.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친지 방문 계획을 잡은 외국인 근로자에겐 차편까지 제공했다. 금속조립 가공업체인 삼우정공(대표 서태호)은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데도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설 특별 보너스 50%를 지급했다. 이 회사의 외국인 근로자 사랑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5명의 파키스탄 근로자들을 위해 양고기 파티를 열고,고궁을 찾거나 영화를 보러갈 경우 관람료도 지원하기로 했다. 서태호 대표는 "파키스탄 사람들은 명절 때 함께 어울려 양고기를 요리해 먹는 것을 즐긴다"며 "고생하는 이들에게 위안을 주기 위해 양고기 파티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양주에 있는 부품가공업체 신혁정공(대표 정순용)은 연휴 기간 중 공장을 부분 가동할 계획이다. 외국인 근로자 10명이 순번제로 쉬면서 특근을 자청했기 때문이다. 정순용 대표는 "일감이 밀려 있는 것도 아니고,휴일 특근을 하면 인건비를 더 줘야 하지만 특별히 갈 곳이 없는 이들의 사정을 감안해 공장을 돌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연휴 기간에도 구내식당을 운영하고 명절 당일엔 근로자 10명을 집으로 초청해 떡국을 함께 먹을 계획이다. 외국인 근로자들도 달라진 분위기를 실감하고 있다. 신혁정공에서 만 4년째 근무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출신 하난씨(37)는 "20대 초반부터 한국에서 일한 덕분에 자카르타에 집도 사고 돈도 많이 모았다"며 "한국신문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한국문화에 익숙한 데다 사장도 귀화를 권유해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위 친구들도 '한국 근무여건이 선배들 시절과 확연히 달라졌다'고 말한다"며 "우리도 한국의 명절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규용 한국노동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현재 국내 중소 제조업체의 외국인 근로자 비중이 10%선에 달하는데 앞으로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며 "외국인 근로자를 단순히 3D 분야 대체인력이 아니라 생산 주체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국내 중소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는 불법체류자를 포함해 22만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