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남양주교회 이정호 신부 "외국인 노동자의 절규가 날 깨웠다"

[조선일보 2005-05-26 03:09]    
[조선일보 김한수 기자]

“이제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기본적인 복지의 하드웨어는 갖춰지게 됐습니다.”

24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면 성생가구공단 초입의 대한성공회 남양주교회에서 만난 이정호(48) 신부는 흥분돼 있었다. 남양주교회가 땅을 제공하고 경기도와 남양주시가 건축비를 대 짓고 있는 이주노동자복지관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상 4층, 지하 1층 연면적 530여평에 이르는 복지관에는 치과, 내과, 방사선과 등 의료시설과 물리치료실, 헬스장, 샤워장, 컴퓨터교육실, 휴게실, 탁아실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여러 딱한 사정으로 갈 곳 없어진 외국인들이 며칠 쉬어갈 수 있는 ‘피신 시설’도 마련된다. 방글라데시, 필리핀, 나이지리아, 카메룬 등 동남아·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성생공단 내 800여 이주노동자와 한국인 노동자를 위한 종합복지시설이다.

이정호 신부는 성생가구공단과 주변 남양주 지역의 이주노동자들에겐 종교의 벽을 넘어선 ‘파더(Father)’이다. 지난 1990년 남양주교회에 부임한 그는 15년을 내리 이곳에서 보냈다.

성공회 사제가 평균 5년에 한 번씩 임지를 교체하지만 그는 자원해서 15년을 이곳에서 보냈다. 처음 부임할 때 아장아장 발걸음 떼던 세 살짜리 딸(성공회 사제는 결혼할 수 있다)이 벌써 고3 수험생이 됐다. 그동안 그는 “파더! 도와줘요!”라는 절박한 외침이 들릴 때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어나갔다.

우리말 서툰 이주노동자들 대신 밀린 월급 받아서 환전·송금해주고, 산재(産災)보상을 위해 싸우고, 말기 에이즈환자를 고향으로 보내주고 외국노동자들의 장례까지 성당 마당에서 치렀다.

그는 그렇게 15년간 성생가구공단의 800여명, 인근지역까지 2000여명의 이주노동자들의 ‘파더’가 됐고 성당은 그들의 쉼터이자 상담소, 입원실, 영안실이 됐다. 조건 없이, 아낌 없이 퍼준 그의 사랑은 목회방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교회 나오라” “예수 믿으라”는 요구는 일절 없었다. 오히려 이 신부는 “15년간 선교한 이주노동자가 3명인데 그나마 둘은 귀국하고 지금은 한 명만 남았다”며 허허 웃었다.

방글라데시인 등 이슬람교도들이 많은 성생가구공단에서 그는 “아무리 힘들어도 기도시간엔 가장 깨끗한 옷을 입고 메카를 향해 절하고, 모스크를 만들겠다며 그 박봉에도 십시일반으로 1억원씩 모으는 그들에게 차마 개종(改宗)하라고 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런 가운데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은 이슬람 관련 행사를 하겠다며 성당건물을 사용하게 해달라고 요청해 식당건물을 빌려줄 만큼 친숙해졌다. 이 신부는 적극적으로 전도하지 않는 데 대해 “그들은 내가 성공회 신부인 것을 잘 알고 있다”며 “귀국한 후 그들 중 몇 명은 ‘도대체 왜 우리를 도와줬을까’를 생각할테고, 그 가운데 몇몇은 하나님을 받아들일지 모르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런 그에게 복지관 건립은 소중한 중간결실이다. 그러나 그는 건물이 완성돼 갈수록 걱정도 쌓이고 있다. 건물에 채울 교육과 각종 서비스를 위한 기자재 마련이 어렵기 때문. 그는 이 비용을 약 9억원 정도로 예상한다. 현재 건물공사는 거의 끝났지만 개관은 기자재가 마련된 후인 올 9월쯤으로 계획하고 있다.

이 신부는 “건물이 완성되는 것을 지켜보는 외국인노동자들과 그 자녀들의 기대와 희망 어린 눈빛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그래서 지인들에게 도움을 호소하는 편지를 보내는 문제도도 고민 중이다. 그는 지금까지처럼 기적이 이뤄질 것으로 믿고 있다. 이 신부는 “우리가 어려울 때 받았던 도움을 생각하자”고 말했다.

(김한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