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들,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 노동허가제 도입하라”

고용허가제 시행 9주년, “사용자 입장만 반영된 고용허가제 폐지해야”

예소영 기자 ysy@vop.co.kr
입력 2013-08-18 19:50:58l수정 2013-08-18 21:26:29
투쟁의 발걸음 내딛는 이주노동자들

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이 18일 오후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연 '고용허가제 폐지! 노동3권 쟁취! 2013 이주노동자 투쟁의 날 집회'가 끝난 후 참가자들이 시청광장으로 행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양지웅 기자



13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 모인 이주 노동자 500여명은 시행 9주년을 맞은 고용허가제를 폐지하라고 촉구했었다. 주말 오후 공장·농장 밖으로 나온 이주노동자들은 “우리가 저임금·장시간 노동, 폭언·폭력·성희롱에 시달리고 있는 원인은 모두 ‘고용허가제’ 때문”이라며 “사용자의 입장만 반영된 고용허가제를 폐지하고 노동자의 입장을 반영한 ‘노동허가제’를 도입해달라”고 한국 정부에 호소했다.

“고용허가제는 현대판 노예제도”
한국에 계속 체류하려면 매 맞아도 1년 계약 채워야

앞서 1993년, 우리나라는 산업연수생 제도를 시행하면서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였지만 노동자들의 신분이 ‘연수생’으로 한정돼 근로기준법 등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아 2005년 제도는 전격 폐지됐다. 고용허가제는 2003년 제정돼 2004년부터 산업연수생제와 함께 시행됐다. 산업연수생 제도의 한계를 보완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으며 이후 보완을 거듭해온 고용허가제는 지난 17일 시행 9주년을 맞았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를 비롯한 국내 노동계는 고용허가제를 ‘현대판 외국인 노예제도’라고 비판하고 있다. 고용허가제에 따라 사용자는 노동자와의 근로기준법에 따르는 근로계약을 체결해 고용노동부에 신고하는데, 사용자들이 이 계약을 빈번하게 위반하기 때문이다. 

또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서 계속 체류하기 위해 1년 단위로 이루어지는 고용계약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면서 그동안 사용자의 폭력과 폭언, 무리하게 요구하는 노동 강도·시간, 근로계약서와 다른 노동조건을 견뎌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 횟수를 제한하도록 한 조항을 폐지하라고 요구해왔다. 이 조항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는 최초 3년의 근로 계약 기간 동안 3회(1년에 1회), 이후 2년 미만의 취업활동 연장 기간에는 2회까지만 사업장을 옮길 수 있다. 

투쟁 열기 뜨거운 이주노동자 집회

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이 18일 오후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고용허가제 폐지! 노동3권 쟁취! 2013 이주노동자 투쟁의 날 집회'를 연 가운데 참가자들 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양지웅 기자



“이주민 노동자 착취해서 농축산업, 어업 유지하는 한국”

이들은 선언문을 통해 “고용허가제가 시작된 지 9년이 됐다는 것은 이주노동자가 10년 가까이 가혹한 노예 노동을 견뎌왔다는 것을 뜻한다”며 “고용허가제는 해가 갈수록 조금이나마 개선이 되기는커녕 이주노동자들에게 인간적 존엄을 포기하고 노예와 같은 굴종과 순응을 감수하도록 하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들은 “한국 정부가 농축산업과 어업 등의 업종에서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도록 허용해 이주노동자들은 한 달에 300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을 하면서도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고 있는 실정”이라며 “한국 정부는 이주노동자들을 고통스럽게 하면서 한국인들이 꺼리고 시장 개방 정책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업을 유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이들은 “특히 지난해 한국 정부는 새로운 사업장 변경 지침을 시행하면서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더욱 억제하고 있다”며 “이는 곧 한국 정부가 사업주의 이주노동자 인권침해를 방조하는 것”이라고 규탄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선언문을 통해 △고용허가제 폐지·노동허가제 실시 △사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 △노동 3권 보장 △단속과 강제추방 중단하고 미등록 이주노동자 합법화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인정·합법화 △사업주와 이주노동자 사이에서 고용센터 중립적 입장 유지 △영주권 신청 허용 △가족 동반 허용 등을 한국 정부에 요구했다.

이주노동자들 '우리도 사람이다'

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이 18일 오후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고용허가제 폐지! 노동3권 쟁취! 2013 이주노동자 투쟁의 날 집회'를 연 가운데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양지웅 기자



“최저임금 준수하고 위험한 작업환경 개선하라”

네팔에서 온 민주노총 이주노동자 담당 우다야 라이(41) 비상대책위원장은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온 지 20년 넘었는데도 여전히 한국은 이주노동자들을 ‘단기 인력’으로만 생각해 우리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며 “한국은 겉으로는 다문화 사회를 언급하면서 속으로는 이주 노동자의 권리를 억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다야 위원장은 “고용허가제가 시행된 이후부터 노동자는 아무리 열악한 환경이라도 노동의 권리를 지키고 사업장과 사업주를 선택할 방법이 없다”며 “한국정부는 이주 노동자의 재고용 기간의 만료에만 관심을 가져 단속하고 강제추방하지 말고, 이주노동자를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노동자의 기본 권리를 보호하라”고 촉구했다. 

캄보디아 출신 삐따요(28) 씨는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는 더럽고 힘들고 심지어 병들고 다치는 노동을 감수하고 있다”며 “대한민국은 사업주 말만 일방적으로 들을 것이 아니라, 고생스럽게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도 들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나서 이주민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을 준수하고 위험한 작업환경을 개선해줘야 한다”고 요구했다. 

베트남에서 온 노반탄(23) 씨는 “고용허가제로 인해 많은 ‘미등록자’를 생겨나고 있다”며 “폭력적인 작업현장에서 튀어나온 노동자들, 국제노동협력센터 등에서 담당자의 (행정)실수로 등록이 안 된 노동자들은 하릴없이 한국에 머물러 있다. 사업자와 정부의 행정편의만 반영된 고용허가제를 폐지하고 ‘노동허가제’를 도입하라”고 촉구했다. 

민주노총 신승철 위원장은 격려사에서 “한국사회에 비정규직 노동자가 절반이 넘고 이들이 불합리한 대우를 받는 것은 한국 노동현장의 가장 밑바닥인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이 올곧게 서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이주노동자가 불합리한 대우를 받으며 덩달아 한국 노동자들의 임금도 하향 평준화 되는 현상, 이주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가 서로의 일자리를 뺏는 것처럼 조장하는 현상을 만든 한국 정부와 자본가에게 경고한다”고 말했다. 

이어 신 위원장은 “이주노동자들의 요구는 가장 정당하고, 가장 절실하고, 가장 옳다”며 “한국에 있는 모든 노동자는 국적, 성별, 피부색을 넘어 당당한 노동자의 이름으로 이주노동자들과 단결하고 하나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공장과 농장을 벗어나 동향인들을 만난 노동자들은 서로의 안부를 위로하고, 고국의 가요를 부르는 등 문화행사를 즐겼다. 또 집회 이후에는 “Abolish EPS! Stop EPS!(고용허가제를 폐지하라, 멈춰라)”, “Free job change!(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집회가 열린 보신각부터 서울시청까지 거리행진을 벌였다. 

공동행동 나선 이주노동자들

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이 18일 오후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고용허가제 폐지! 노동3권 쟁취! 2013 이주노동자 투쟁의 날 집회'를 연 가운데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양지웅 기자



'캄보디아 사람에게 노동비자 허가하라'

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이 18일 오후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고용허가제 폐지! 노동3권 쟁취! 2013 이주노동자 투쟁의 날 집회'를 연 가운데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양지웅 기자



'이주노동자에게 직업 선택 자유를'

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이 18일 오후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고용허가제 폐지! 노동3권 쟁취! 2013 이주노동자 투쟁의 날 집회'를 연 가운데 참가자들이 요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양지웅 기자



'이주노동자 임금 너무 적어요!'

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이 18일 오후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고용허가제 폐지! 노동3권 쟁취! 2013 이주노동자 투쟁의 날 집회'를 연 가운데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양지웅 기자



'나쁜사장님 향한 분노의 물풍선'

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이 18일 오후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고용허가제 폐지! 노동3권 쟁취! 2013 이주노동자 투쟁의 날 집회'를 연 가운데 참가자들이 '나쁜 사장님, 고용허가제, 이주노조 불인정' 등이 적힌 표지판에 물풍선을 던지고 있다.ⓒ양지웅 기자



'이주노동자의 노동비자 쟁취'

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이 18일 오후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고용허가제 폐지! 노동3권 쟁취! 2013 이주노동자 투쟁의 날 집회'를 연 가운데 한 참가자가 '노동비자 쟁취'라고 적힌 머리띠를 묶고 있다.ⓒ양지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