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대선 평가
이명박 당선의 모순과 정권의 불확실한 앞날

최일붕  
  

노골적인 친미주의자이자 시장주의자인 이명박이 대통령 당선자가 됐다. 사실, 이명박이 당선되리라는 것은 뻔한 게임이었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대중의 반감이 하도 커서 대선은 치르나마나 한 상황이 지난해 6월 여당의 지방선거 참패 이후 지속됐다. 이명박의 BBK 동영상 공개도 당락을 좌우할 정도는 전혀 되지 못했다.
터무니없이 ‘진보’로 분류되는 노무현 정권에 대한 대중의 환멸과 냉소가 진보에 대한 반발로서 이명박 같은 보수(우파) 정치인 지지로 한동안 나타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결코 대중 자신의 보수화(우경화)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대중은, 자신이 신자유주의자이긴 하지만 ‘좌파’(“좌파 신자유주의자”)라는 둥 말로만 진보적인 체하고 실천은 보수 반동적이었던 노무현 계승 세력보다는 중앙 1차로에 버스 전용차로를 만들고 청계천을 복원시킨 추진력을 보인 “불도저” 이명박을 선택했다. ‘그런 추진력으로 경제 정책을 펴면 경제가 나아질 텐데, 비리면 어떠냐. 도덕성이 밥 먹여주냐’는 듯한 태도다. 도대체 노정권에 대한 냉소가 얼마나 크면 저러랴 싶다.
경제 문제
정부 정책으로써 경제를 부흥시키겠다는 이명박의 공언은 신자유주의보다는 개발독재 시대의 국가자본주의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한국 경제의 위기는 정부 정책보다는 외생적 요인의 효과가 훨씬 더 크다. 원래 수출 지향적인 한국 경제는 10년 전 국제통화기금을 불러들인 공황 이래 더욱 수출 지향적이 됐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불거진 미국 경제 위기가 점점 심화되고 있는데다, 미국 경제와 맞물려 세계 경제의 쌍끌이 견인차 구실을 해온 중국 경제도 위기의 문턱을 밟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 경제가 지금보다 훨씬 더 심각한 위기에 처하리라는 것은 거의 시간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 때는 성장률 7퍼센트,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7대 경제 강국 도약 등 이명박의 너무도 ‘야심찬’ 공약은 개발독재 시절 KDI(한국개발연구원) 등 군사정권 산하의 국책연구소들이 내놓은 장밋빛 환상처럼 끝날 공산이 크다.
물론 맑스 자신 등 고전적 맑스주의자들이 지적했듯이, 노동계급의 희생을 대가로 해도 빠져나오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경제 위기는 없다. 그러므로 이명박 정권은 노동자 운동과 좌파에 대한 탄압의 강도를 높일 것이다.
사실, 이런 일은 이미 그동안 노무현 정권 하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구속 노동자 수는 사상 최다를 기록했다. 이런 일을 겪어 아는 노동계급 사람들이 굳이 정동영을 이명박에 비해 차악으로 여기지 않았다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부패 문제

또한, 노무현 정권 자신이 부패와 비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대중이 잘 알고 있었기에 BBK만으로는 이명박이 후보에서 낙마하지 않았다. 사실, 수십 년에 걸쳐 부패 스캔들에 신물이 난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부패가 사회 구조의 논리적 산물임을 알고 있었다. 부패에 분개하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로 치부될 정도이다. 그러나 대중이 부패에 둔감하다며 좌절감이나 절망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대중의 이런 보수성은 때에 따라서는 매우 가변적이 되기 쉽다. 러시아 혁명을 직접 겪으며 이끈 트로츠키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요점인즉슨 기계수리공이 연장을 바꾸듯, 사회가 필요로 한다 해서 제도를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는커녕 사회는 사회에 찰싹 달라붙은 제도들을 확고히 주어진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대중의 견해와 정서가 혁명기에 급속히 변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 가변적이고 변덕스러워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정반대, 즉 심오한 보수성 때문이다. 새로운 객관적 조건이 조성됐는데도 관념과 관계들이 그에 뒤처져, 전자가 파국의 형태로 사람들 머리 위로 와르르 덮치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 혁명기에 관념과 열정이 비약적으로 바뀌는 상황이 도래한다. 경찰 눈에야 민중 선동가들이 활약한 결과로밖에 안 보이겠지만 말이다.”
이처럼 “모순된 대중 의식”(그람시) 때문에 이명박이 대통령직에 제대로 취임하겠느냐, 취임하더라도 오래 버틸 수 있겠느냐는 물음은 호사가들의 호기심 섞인 관심사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파이낸셜 타임스> 등을 비롯한 해외 유수 친기업 언론들이 국제 자본가들의 우려를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한국의 정치 상황은 대선 후에도 불확실하다. “BBK와 관련된 것이 사실로 밝혀지면 대통령직을 걸겠다”고 이명박 자신이 여러 차례 공언했으므로, 만의 하나 그가 기소된다면 정국은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될 것이다.
지난 몇 년 사이에 라틴아메리카 등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부패 스캔들로 정부가 퇴진한 사례는 부지기수이다.



국제적 맥락 속에서 본 민주노동당의 위기

노무현 정권에 대한 반발이 주로 오른쪽 방향으로 향하고 왼쪽 방향으로는 그다지 나아가지 못함에 따라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고배를 마셨다. 이것은 국제적 운동이라는 더 큰 맥락 속에서 봐야 그 배경이 더 잘 보인다.
가령 세계 주요 나라에서처럼 한국에서도 이라크 전쟁 반대는 국민 대다수의 정서가 됐고, 심지어 한국군 파병 반대 여론도 이제는 다수 여론이 됐다.
‘다함께’의 대의원들은 올해 초 협의회에서 국제 반전 운동의 이러한 상태에 대해 논의하면서, 국제 반신자유주의 운동이 프랑스와 라틴아메리카를 제외하면 교착 상태라고 지적했다.(《마르크스주의 연구》 7호에 실린 최일붕의 “2007년 전망과 마르크스주의자 앞에 놓인 도전과제”를 보라.)
프랑스 좌파마저도 대선에서 실패한 이후, 반신자유주의 운동의 정치적 표현인 국제 급진좌파들이 위기 상황에 처해 있음이 감지됐다. 실제로, 영국 리스펙트로부터 우파인 ‘혁신파’의 분리 사태와 최근 베네수엘라 개헌안 부결 사태, 볼리비아 지배계급의 국가 분립 위협 등의 사건들이 뒤를 이으면서 이 점을 확증해 주고 있다.
각각의 경우에 위기의 형태는 다르게 나타났다. 가령 스코틀랜드사회당의 경우 토미 셰리던에 대한 머독 신문의 마녀사냥성 왜곡보도에 대해 셰리던이 벌인 투쟁을 당의 나머지 지도자들이 방관하면서 지도부의 내분이 격화해 분당 사태에 이르렀다.
이탈리아 재건공산당은 당 지도부가 프로디의 ‘사회적 자유주의’(=제3의 길) 정부에 입각함에 따라 우경화가 일어나고 내분이 뒤따랐다.
영국 리스펙트는 조지 갤러웨이와 저명인사 개인들이 “다원주의, 포괄주의, 광범함”에 대한 미사여구 뒤에서 무슬림 기업인들과 제휴를 시도하는 등 우경화를 기도하다 다수파인 사회주의자들의 민주적 통제 시도에 부딪히자 그것을 거부하고 분당을 단행한 사태를 최근 겪었다.(며칠 뒤 ‘다함께’ 웹사이트에 올려질 크리스 하먼의 “리스펙트의 위기”를 보라.)

분당

우리는 최근 당 안팎의 논란을 보면서 한국의 민주노동당도 대선 성적이 만족스럽지 못하면 다른 나라 급진정당들과 비슷한 운명에 처해질 것임을 예감했다. 그리고 김하영과 전지윤 <맞불> 공동편집자들이 들춰냈듯이, <오마이뉴스>, <한겨레>, <경향신문>, <프레시안>, 최장집, 전순옥 등 당 바깥으로부터의 민주노동당 공격이 당내 일부 의견그룹 일부 리더들의 당 지도부 공격과 일종의 공조를 취하고 있음도 밝혀냈다.
민주노동당보다 왼쪽에 있는 척하는 사회당의 공세까지 포함하면 사태는 더욱 복잡해진다. 하지만 이 모든 공격이 때로 좌파적 외양을 취하고 있음에도 그 본질은 당을 기존 체제의 작동 원리에 적응시키려는 기회주의적 압력이다.
물론 이런 비판들이 일부 옳은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이들의 지지자들 사이에 훌륭한 변혁운동가나 장래 변혁운동가가 포함돼 있을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마치 트로츠키가 1903년 레닌에 맞서 멘셰비키측에 가담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명박 하의 계급투쟁은 탄압을 물리치기 위한 것을 포함해 치열해질 것이다. 하지만 기회주의 및 종파주의와의 투쟁도 그만큼 더 필수적일 것임을 예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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