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자기만족이죠! 손제민기자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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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한국 전체인구의 0.04% 불과한 소수종족
ㆍ필요한 소수만 수용, 나머지는 배제 정책

한국에서 ‘다문화’라는 말은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지원안을 담은 법 이름에도, 혼혈인 운동선수를 한국인으로 묘사하는 언론 보도에도 빠지지 않는다. 이럴 때 ‘다문화’는 언제나 바람직한 뉘앙스다. 그러나 20년 가까이 한국에서 살아온 이주노동자를 정부가 표적 단속해 강제 추방할 때에 ‘다문화’는 ‘엄정한 법 집행’에 슬그머니 자리를 내준다. 한국사회에서 ‘다문화’는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 것일까. 지난 6일 동북아역사재단과 동아시아사연구포럼 주최로 열린 ‘역사적 관점에서 본 동아시아세계의 아이덴티티와 다양성’ 국제학술대회의 다문화주의 섹션에서 나온 논의가 이해를 돕는다.

‘다문화’가 쓰이는 빈도만 보면 한국은 벌써 다문화 사회인 것 같다. 하지만 미국 중앙정보부 자료에서 ‘지구상에서 매우 희귀한 동질적 종족집단’으로 묘사되는 한국의 인종적 구성은 틀린 말이 아니다. 설동훈 전북대 교수의 계산에 따르면 2009년 한국의 소수종족 인구 비율은 전체 인구의 0.04%에 불과하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다문화적이지 않은 나라에서 다문화라는 말이 가장 많이 쓰이는” 아주 특이한 사례인 것이다. 설 교수는 “특수 조건을 가진 소수 이민자만 엄격히 받아들이고, 나머지 대다수는 배제하되 소수의 결혼이민자에 대해서는 동화정책을 펴는 ‘구분배제’ 정책이 정확한 표현”이라고 했다. 그가 보기에 다문화는, 한국 정부가 근대화·공업화·정보화·세계화에 뒤이어 발전전략으로 내세우는 또 다른 ‘-화(化)’ 정책에 가깝다.

일본 역시 ‘다문화’의 홍수 속에 빠져 있다. 이와부치 고이치 와세다대 교수에 따르면 실제 다문화 사회에 가까운 구미 국가들에서 다문화주의는 9·11 사건 이후 국민을 분단시키고 통합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부정적으로 여겨지거나 심지어 실패했다고 간주되는 추세이지만 일본에서는 정부가 2005년부터 강조해온 ‘다문화 공생’ 담론이 유행 중이다. 하지만 이와부치 교수는 일본에서 다문화 공생은 종종 ‘코스메틱 다문화주의’ 수준에 그친다고 지적했다. 타자(他者)를 소비하고,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차원의 다문화주의라는 것이다. 가령 외국인들의 전통 의상과 음식을 보고 ‘저 사람들 신기하다’면서 타 문화를 소비하다가도, 다음날 돌연 ‘당신은 필요없으니 나가라’고 요구하는 대상이 외국인인 것이다.

최근 강제추방된 미누에게 적용된 논리도 똑같다. 한국 문화를 한국인 이상으로 진지하게 계승하는 모습이 소비되다가도, 어느 순간 ‘수상하고 위험한 외국인’으로 취급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김영옥 이주여성인권포럼 대표는 “10년 이상 한국에 거주한 ‘불법체류자’들에 대해 한국사회와의 관련성을 고려해 실정법적으로 한국에 거주할 수 있게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다문화’ 담론은 사회 내부인들에게 ‘우리는 다양한 문화를 포용하는 풍요로운 사회’라는 자기만족을 안겨 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자기만족에도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우리’는 모른다.

<손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