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이주노동자 "신종플루 무섭지만.."
| 기사입력 2009-11-11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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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 걱정에 병원行 꺼려..'열린 대책' 마련 시급

(인천=연합뉴스) 정묘정 기자 = "신종플루도 무섭지만 추방이 더 두려워요"

인천 지역 이주노동자들이 떨고 있다. 신종플루가 무서운 속도로 확산되고 있지만 이주노동자를 위한 대책은 사실상 전무해 감염 위기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11일 인천시에 따르면 인천에 살고있는 외국인 노동자는 1만4천383명. 흔히 '불법체류자'라 불리는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까지 합하면 약 3만2천명으로, 인천시 전체 인구의 1.2% 정도를 차지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확인된 인천 지역의 외국인 신종플루 확진 환자는 단 한명도 없다.

이에 대해 최현모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 사무국장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가는 통계'라고 지적했다. 이주노동자들은 열악한 작업.생활환경 때문에 오히려 일반인보다 전염병에 감염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종플루에 걸렸어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합법적인 이주노동자라 해도 작업장 차원에서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는 데다가 고용주의 눈치를 보느라 몸 상태가 좋지 않아도 병원에 가겠다는 이야기를 꺼내기 힘든 탓이다.

인천의 한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방글라데시 출신의 하산(35) 씨도 그런 경우다. 하산씨는 "건강이 좋지 않아 종종 병원에 가야하지만 그때마다 말 꺼내기가 너무나 어렵다"면서 "혹시라도 밉보여 해고라도 된다면 대책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신종플루 감염 사실이 확인됐을 경우 치료보다는 '추방'을 우선시하는 정부 정책도 이주노동자들의 병원행을 가로막는 요인이다.

최 사무국장은 "출입국관리법은 전염병에 걸린 외국인을 강제 퇴거시킬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면서 "그러니 이주노동자들은 신종플루 증상이 있어도 병원을 찾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라고 설명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경우에는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병원이나 보건소에 가는 순간 신원이 노출되기 때문이다. 건강보험도 없기 때문에 약국에서 고가의 타미플루를 구매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다. 설상가상으로 지난달부터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집중단속까지 시작됐다.

인천 이주노동자건강센터 '희망세상'의 박성표 소장은 "10~12월이 집중단속 기간이라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환자가 절반으로 줄었다"면서 "단속이 무서워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꼼짝을 안 하다 보니 신종플루에 걸린다 해도 속수무책인 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주노동자를 신종플루로부터 보호할 별다른 대책은 없다. 외국인주민센터 등에 12개 언어로 번역된 신종플루 예방안내 책자가 배포되기는 했지만, 실질적인 대책은 못 된다는 지적이다.

최 사무국장은 "이주노동자들은 우리에게 부족한 노동력을 제공해주는 사람들이다. 체류의 적법성을 떠나 열린 마음으로 그들의 건강권 문제에 대해 접근해야 한다"면서 "당장 미등록 이주노동자 집중단속을 중단하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마음 편하게 찾을 수 있는 '거점 치료기관'을 지정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my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