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 합법화’ 목청 커진다 글·사진 김지환기자 kjh1010@kyung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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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폭언에 폭행’ 무법천지 단속에 피눈물 흘리는 우리 이웃

“오늘도 야근이다. 책 제목처럼 아이들은 전화할 때마다 ‘아빠, 제발 잡히지 마’라며 울부짖는다. 고향땅 가족을 위해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살아온 지도 벌써 10년. 월급은 한국인의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지만 단속을 피해 돈을 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하지만 우리는 단속에 늘 공포를 느낀다.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지만 얼굴색이 다른 우리는 식당, 기숙사, 버스정류장 할 것 없이 언제 어디서든 불법단속을 두려워해야 한다. 누구는 단속을 피해 3층 건물에서 뛰어내리고 누구는 단속에 항의해 손목을 그었다는 소리까지 들린다.”

고용허가제 5년이 흘렀지만 국내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은 아직도 제자리 걸음이다. 인천지역연대가 12일 인천 중구 항동 출입국관리사무소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이 딛고 있는 더도 덜도 아닌 현실이다. 정부의 고용허가제 시행이 지난 8월17일로 5년을 맞았지만 이들의 절망과 한숨소리는 그칠 줄 모른다. 사업장 이동이 3회로 제한되고 이동시 사업주 승인을 요구하면서 사업주들이 이를 악용하는 사례도 늘었다.

오히려 직장 변경 승인 요구를 하는 이주노동자들의 권리 행사를 훼방하기 위해 허위로 이탈 신고를 해 이주노동자들을 미등록 신분으로 내모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구직기간도 2개월로 제한하면서 체류 자격을 상실해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전락하는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인권단체 조사결과 지난 2008년 1월부터 2009년 1월까지 구직기간 제한으로 체류 자격을 상실한 이주노동자는 무려 2450여 명에 이른다 . 정부는 이주노동자들이 범죄를 저지르고 한국인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비난하지만 사실과 다르다.

인천지역연대가 12일 오후 인천 중구 항동 출입국관리사무소 앞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 강제단속 및 추방중단 촉구 결의대회’를 가졌다. 미누, 하킴, 범 라우티 등 인천과 인연을 맺었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잇달아 강제추방 당하면서 이에 대한 항의로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인천은 전국에서도 순위에 들 만큼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률이 높다. 부평·서부·주안·남동공단 등 공장들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이날 대회사를 맡은 전재환 민주노총 인천본부장은 가장 먼저 ‘무차별 단속에 의한 인권유린’을 지적했다. “주거침입은 물론 단속과정에서 폭언, 폭행이 자행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제재 조치는 미흡하다”는 것이다. 이정원 이주노조 교육선전 차장도 “역대 어느 때보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며 “외국인들이 몰린 곳이면 어디든지 불법 단속이 자행되고 있다”고 개탄했다.

연간 4만 명에 달하는 대대적인 단속만으로도 18만 명의 미등록 이주노동자 문제를 해결하기는 역부족이란 게 이들의 하나 같은 목소리였다.

결국 한국 인권단체와 노동단체들의 요구는 ‘이주노동자의 합법화’로 압축된다. 브라질 정부가 1980년과 1988년, 1998년에 이어 이번이 네 번째 조치로 외국인 불법체류자에 대해 사면령을 확정 발표한 만큼 한국 정부도 이제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기돈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 상담팀장은 “국민의 70%가 강제추방·단속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며 “미등록 이주노동자 탄압은 국내 노동자 탄압의 전주곡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천이주연대는 다음 달 18일 이주민의 날을 맞아 기자회견과 함께 토론회도 갖는다.

<글·사진 김지환기자 kjh1010@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