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빈민운동 이야기]


 



<STRONG>이주노동자 노조 간부 표적단속을 보며</STRONG>


- 노동비자-노동허가제 도입 및 세계시민국가로의 전환 필요


 


<SPAN style="LINE-HEIGHT: 160%"></SPAN>


<SPAN style="LINE-HEIGHT: 160%">: 청주보호소에 갇혀 있는 이주노조 까지만 위원장(왼쪽) 등 세 동지.</SPAN>


<SPAN style="LINE-HEIGHT: 160%">(사진: 이주노조)</SPAN>


 



내가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이하 ‘이주노조’) 까지만 위원장을 알게 된 것은 지난 2005년부터다. 네팔노총(GEFONT, <U style="text-underline: #0000ff single"><SPAN lang=EN-US style="COLOR: #0000ff">www.gefont.org</SPAN></U>) 산하연맹인 네팔노점상연맹 대표들이 한국 전국노점상총연합을 방문했는데 당시 내가 전국노점상총연합(이하 ‘전노련’)의 국제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던 터라 통역을 이주노조에 알아보면서 알게 되었다. 당시 까지만 동지는 이주노조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사실 이주노동자 투쟁을 알게 되고 연대했던 것은 서울경인지역 평등노동조합 이주노동자지부가 활동하던 지난 2001~ 2002년 때였지만 나 스스로 이주노동자 동지들과 편하게 이야기하지 못해 그리 많은 동지들을 알 수는 없었다.(이주노동자 동지들을 대하는 내 시선이 동지가 아닌 ‘외국인’을 대하는 것 같다는 자괴감...) 그러다 정부의 고용허가제 및 이주노동자 대 단속에 맞서 2003년 11월 15일부터 2004년 11월 28일까지 380일간 진행된 “강제추방 저지와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 쟁취를 위한 농성투쟁단” 때는 전노련 연대담당 주체로 결합하게 되면서 차츰 여러 동지들을 알게 되었고 좀 더 체계적으로 이주노동자를 대하는 한국사회의 모순과 고용허가제가 얼마나 기만적인지, 이주노동자들에게 노동비자와 노동허가제가 얼마나 절실한지를 대략이나마 알 수 있게 되었다.


 



: 2004년 11월 28일, 380일간의 명동성당 농성투쟁 해단식을 진행하고 서로를 끌어안고 울고 있는 이주노동자 동지들.


(사진: 프로메테우스 양희석)


 



‘고용허가제’는 지난 2003년 8월 16일 제정되어 2004년 8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을 말한다. 하지만 직장이동 금지, 단기간 체류 허용(3년), 1년 단위 고용주와의 재계약 의무로 인해 많은 이주노동자들을 제도 밖으로 내몰아 미등록 신분으로 만들고 있다. 2006년 3월 31일 현재 기준으로, 전체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30%가 고용허가제에서 비롯했다.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이주노동자 전체 중에서는 42%가 미등록 체류자로 전락했다. 또 고용허가제는 전체 이주노동자들의 노동 조건과 임금을 저하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고용허가제 시행 전과 후를 비교한 통계에 따르면, 실질 임금이 10% 이상 하락했고, 노동 시간은 더 늘어났다. 여기에 지속된 단속 때문에 임금 등 노동조건 하락의 압력은 더 커지고 있다. 노동조합을 만들 권리 등이 보장되어 있다 하지만 직장을 옮길 자유가 없고 매년 재계약을 해야 하는 데 조금만 고용주에게 밉 보이면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는 조건, 잘못 보이면 단속되어 추방당할 수 있는 조건 등으로 현실에서 노동3권이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


 



: 2005년 11월 9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민주노동당, 민주노총 주최로 '노동허가제 입법 공청회'가 열렸다.


(사진: 이주노동자 방송국 신만호)


 


이에 이주노조는 ‘고용허가제’의 ‘개선’이 아닌 ‘철폐’와 ‘노동허가제’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요구를 통해 지난 2005년 말,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은 △이주노동자 체류기간 확대 △사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 사면 보장 △고용주 중심의 제도에서 노동자의 기본권을 강화하는 노동허가제 등을 골자로 하는 '외국인근로자고용 및 기본권보장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하기도 했다.(사실 이 법안도 특정 업종, 그 중에서도 외국인 고용사업장으로 등록된 작업장에서만 취업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등 근본적으로 노동권을 제약하는 한계를 안고 있다.) 이는 지난 2007년 3월 4일부터 중국 및 옛 소련 등 해외동포들에게 취업 기회와 한국 왕래 문호를 넓혀주는 제도라고 시행되고 있는 ‘방문취업제’의 자유 왕래 허용, 직장 이동의 제한 폐지, 비자 시한 5년 등을 볼 때 충분히 실현 가능하고 전체 이주노동자를 위해 관철시켜야할 내용이다.


 



전노련에서는 이주노동자의 투쟁에 연대하며 방송차량을 지원하거나 장기간 농성으로 재정 어려움을 겪고 있던 농성투쟁단에 쌀과 채소 등 반찬거리를 지원하곤 했다. 네팔이나 인도 노점상 대표들을 한국으로 초청하여 지지방문을 가기도 했다. 단속이 잦은 곳이지만 *호텔까지 찾아와 네팔 민중항쟁 소식과 가족 소식을 주고받던 까지만 위원장과 이주노조 조합원 동지들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듯하다.


 



: 2004년 4월, 네팔노총 주최로 열린 네팔 노동자대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먼주, 샤말, 나, 그리고 국제노점상연합 김흥현 국제의장.(왼쪽부터)


(사진: 네팔노총)


 


전노련에서 이주노동자 투쟁에 적극적으로 결합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첫째는 ‘약속에 대한 책임감’이다. 2004년 네팔노총 주최로 열린 노동자대회를 방문한 우리는한국에서 일을 하다 손가락이 잘려 네팔로 돌아온 만주, 한국에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을 결성했던 버즈라, 명동성당 투쟁을 이끌다 추방된 샤말 타파 등의 동지들을 만났다. 손가락이 잘려나가 악수를 할 때마다 허전한 느낌과 죄송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던 먼주와 여러 동지들의 밝은 얼굴, 한국에 남아있는 이주노동자 동료들에 대한 걱정을 생각하며 최대한 연대하겠다고 했던 그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둘째는 이주노동자의 문제가 동등한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법과 제도, 사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노점상의 그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를 인정하지 않는 합법화가 그렇듯, 노점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현실과 노점상의 기본권을 인정하지 않는 합법화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으며 기만적인 것이고 통제․배제의 산물일 뿐이다. 서울시의 2.27 ‘노점특별관리대책’의 사례에서도 나오지만 기만적으로 합법화해서 관이 일방적으로 결정한 규격, 시간, 장소, 인원, 도로점용료, 재계약 우선순위 및 기간에 맞게 장사를 한다는 것은 한강둔치 등록노점을 폐쇄하고 대형유통자본의 매점을 깔거나 거리의 등록노점인 가로판매대를 대대적으로 정비하겠다고 하여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노점상의 노동권과 사회적 구성원으로서의 권리를 외면하고 ‘노예’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마음과 흔히 불법노점상으로 왜곡되고 있는 미등록노점상의 마음은 궁극적으로 한 마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난 11월 27일, 비인간적이고 강화된 이주노동자 단속을 규탄하는 목동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앞 정례 집회를 준비하던 이주노조 까지만 위원장, 라쥬 부위원장, 마숨 사무국장이 숙소 인근 혹은 직장에서 표적 단속 당했다. 동료들에게 핸드폰으로 연락하려던 것도 제지당했고 그 과정이 일일이 채증 되는 등 기획적인 이주노조 탄압이었다. 지난 11월 19일 까지만 위원장, 마숨 사무국장을 비롯한 이주노조 간부들과 한국사회당 금민 대통령 후보, 오준호 서울시당 위원장 등이 함께 진행한 이주노동자와 이주민 관련 간담회 때 오랜만에 개인적으로 술 마시자고 했었는데 불과 8일 만에 동지들은 청주보호소에, 나는 바깥에 무언가 모를 벽을 두고 떨어져 있다. 허전하고 죄송하다. “한국에서도 단체마다 이주 담당자를 세워 고립되고 있는 이주노동자 투쟁에 책임있게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했던 말이 머리를 맴돈다.


 



: 11월 19일, 이주노조 사무실에서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는 한국사회당 금민 대통령 후보, 오준호 서울시당 위원장, 이주노조 마숨 사무국장, 까지만 위원장.(왼쪽부터)


(사진: 한국사회당 금민 후보 선대본)


 



민주노총 등을 중심으로 40여개 단체가 ‘이주탄압분쇄 비대위'를 결성하였다. 국제적으로 동지들의 석방을 호소하고 있고 한국 내에서도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앞 집회 등을 진행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를 하루 앞둔 12월 18일은 세계 이주민의 날이다. 1990년 12월 18일, 유엔총회에서 회원국 만장일치로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보호를 위한 협약(이주민 협약)이 통과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 협약은 이주노동자가 노동할 권리와 자유롭게 귀국할 권리,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가족을 동반할 권리, 국적 및 인종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 본국의 선거에 참여할 권리 등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권을 각국 정부가 보장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하기도 한 한국 정부는 여전히 협약 비준을 미루고 있으며 오히려 이주노동자에 적대적이기까지 하다. 최근에는 영장이 없이도 공장이나 주거지에 들어가 단속할 수 있고 의심되는 사람은 언제라도 단속할 수 있으며 현재 단속 전에 필히 발부받아야 하는 긴급보호명령서도 사후에 발부할 수 있는 출입국관리법을 일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기까지 했다. 대한민국 인구의 1%에 육박하는 40만의 이주노동자들은 여전히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살아가고 있다.


 



12월 9일(일) 오후 2시,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세계 이주민의 날 집회가 진행된다. 이주노동자를 비롯 이주민들이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노동, 교육, 주거, 건강 등 사회적 기본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또한 보호소에 갇혀 있는 동지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념 행사’가 아닌 ‘투쟁 집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 2004년 4월, 한국에서 강제추방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네팔 노동자대회에 참가한 깨비, 굽타, 샤말 및 한국 참가단 동지들. 네잎 클로버를 찾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단속 및 보호소 구금 과정에서 부상을 당해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추방되어 무릎통증을 앓던 깨비와 굽타는 시골 고향으로 내려갔고 샤말은 이후 네팔노총 아시아 이주노동자운동 담당자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 신희철)


 


 


- 신희철/한국사회당 서울시당 빈곤철폐특위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