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삭감, 이주노동자를

경제위기의 희생양으로 삼지 말라!


  경제위기로 모든 이들의 삶이 위태롭다. 특히나 우리사회 가장 낮은 자리의 이주노동자들의 삶은 피폐하기만 하다. 대량해고와 두달 간의 구직기간 제한은 온갖 인권침해와 노동권 악화를 가져왔고, 고환율로 고향에 보내는 송금액은 반 토막이 나 이주노동자들은 이중의 고통 속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얼마 전 두달 간의 구직기간 동안 일자리를 찾지 못한 베트남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은 이주노동자들이 살아내야 하는 오늘을 극단적으로 보여주었다.

가만히 두어도 힘겨운 이주노동자들을 아예 벼랑 끝으로 내모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주노동자들과 60세 이상의 최저임금을 삭감하고, 수습기간을 늘리는 내용으로 최저임금법 개악이 진행 중이다. 명백한 차별과 위법으로 논란과 사회적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3월 27일 중소기업협동조합은(이하 중기협) 이주노동자 숙식비 부담기준을 마련하여 이를 시행하라는 지침을 회원사에 내려 보냈다.

  최저임금의 10-20%에 달하는 숙식비를 최저임금에 포함하라는 내용으로, 그 대상은 신규로 도입하거나 근로계약을 갱신하는 이주노동자라고 명시하고 있다. 기존의 근로조건에서 합리적 이유 없이 이루어지는 행위는 위법이다. 뿐만 아니라 임금지급 시 숙박비를 공제하고 지급하는 행위도 임금전액지급원칙에 위반하는 위법행위인 것이다. 헌법과 노동법을 위반한 명백한 위법조장 행위다.

현대판 노예제도라 불렸던 산업연수제를 운영하며 이주노동자들의 고혈로 배가 불룩했던 중기협이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2007년 산업연수제 폐지 결과로 보장 받고 있는 최소한의 권리인 최저임금법, 퇴직금, 산재보험법 등의 근로기준법 적용을 다시 무력화 하겠다는 수작이다. 국적은 달라도 노동의 권리는 같다는 보편적 인권기준을 정부와 중기협이 앞장서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UN인종차별철폐협약을 위반하고 있는 명백한 인종차별 행위다.

현실을 들여다보자. 이주노동자들은 근무 연수에 상관없이 거의 모두 최저임금에 맞추어 임금을 받고 있다. 그나마 임금을 보전해주던 잔업과 특근은 경제 불황으로 사라진지 오래고 휴업도 잦다. 여기에 많게는 20만원 가까이 임금을 삭감한다고 가정해보자. 2009년 최저임금 기준으로 따지면 이주노동자들은 50-60만원으로 고국에 있는 가족의 생계와 한국에서 생활을 유지해야만 한다. 다시금 현대판 노예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은 물가 싼 아시아의 고향이 아닌 한국 땅에서 살아가는 한국의 노동자다.

세계인권선언은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고, 어떠한 차별도 없이 법의 평등한 보호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보호에 관한 국제협약은 이주노동자의 체류 또는 취업이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인하여 이 원칙으로부터 파생되는 어떠한 권리도 박탈당하지 않을 것을 보장하기 위하여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고 명시한다. 정녕 정부와 중기협은 이주노동자 차별과 탄압하면 떠오르는 국가브랜드를 만들고 싶은가? 국제사회의 웃음거리가 되려는 몰지각한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

이주노동자에 가해지는 이러한 차별적인 정책은 이주노동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 어느 누구라도 제3의 희생자가 될 수 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경제위기는 누군가의 일방적인 희생을 통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특히나 지금의 경제위기는 이주노동자의 고임금에서 온 것이 아니다. 정부도, 중기협도, 우리도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주노동자를 희생양으로 삼아 경제위기를 모면하려 하고 있다. 중기협은 이에 빌붙어 지난 시절의 온갖 인권침해와 탄압을 오늘에 되살리고 있다. 당장에 중단되어야 한다.

  이 땅에서 땀 흘리고 있는 70만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정부와 중기협의 일방적인 행동을 주시하고 있다. 이것은 곧 세계가 보고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이주인권연대를 포함한 시민사회도 몰지각하고 반인권적인 행태를 가슴에 담고 있다. 당장에 멈추지 않으면 결단코 지난 촛불보다 더 큰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걸 한국정부와 중기협은 뼛속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2009년 4월 5일

이주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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