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주노동자한테 최소한의 관용도 없는 나라



  


  
법무부가 지난 23일 밤 네팔 출신 미등록 이주노동자이자 문화활동가인 미누(본명 미노드 목탄)를 결국 강제출국시켰다. 서울행정법원에 강제퇴거명령 취소소송이 제기된 상태인데도 서둘러 내쫓은 것이다. 한국에서 18년이나 산 그에게 법원에 호소할 기회조차 줄 수 없다는 얘기이다. 이런 태도는 관용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한국 이주노동자 정책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
국내외 인권단체들이 누누이 지적했듯이, 한국의 이주노동자 정책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무엇보다 관용을 베풀 줄 모른다. 인권 보장 장치도 매우 취약하다. 그럼에도, 정부는 그들의 고통을 덜어줄 조처보다는 미등록자 색출과 추방에만 힘을 쏟는다. 게다가 단속 과정에서 이주노동자들은 또다시 수치와 모멸을 당하고, 심지어 생명을 잃을 위험까지 겪는다.

더는 이런 상태를 방치해선 안 된다. 그들을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걸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그 이유는 하나둘이 아니다. 경제적으로 봐도,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인이 꺼리는 일을 맡아 함으로써 중소기업을 지탱해주고 있다. 그들이 없으면 가동을 멈춰야 할 기업들이 널려 있다는 걸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인과 비교해 훨씬 열악한 상황에서 일하고 있다. 고용허가제의 문제점 때문에 사업주의 부당한 대우에 맞서려면 일자리를 잃고 본국으로 돌아갈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일자리를 옮기기도 쉽지 않고, 옮기기로 했어도 일정 기간 안에 새 일을 구하지 못하면 한국에 더 머물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정책은 그들을 3년 동안 노예처럼 부려먹고 내쫓겠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할 이유는 또 있다.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이 ‘일회용’ 취급을 받고 있다는 앰네스티 조사관의 최근 지적처럼, 국제 사회가 한국의 이주노동자 현실과 정책을 지켜보고 있다. 심지어 인종차별 측면에서 이 문제를 보는 시각도 있다. 존경받는 국제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도 문제투성이의 이주노동자 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이주노동자의 고통스런 현실은 한국 사회의 가장 부끄러운 모습 가운데 하나다. 한국 사회 구성원 누구도 이 치부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요즘 부쩍 ‘국격’을 거론하고 있지만, 이주노동자를 외면하면서 ‘국격’을 말하는 것은 위선일 뿐이다.



‘어리석은 법무부’…“미누 추방은 다문화사회 귀중함 버린 것” 김지환기자 baldkim@kyunghyang.com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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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정치활동 주도’ 왜곡까지… 시민사회 비판 확산
ㆍ“법원 판결도 나기전 쫓아내… 다문화 사회 맞나”

문화운동가로 활동하다 표적단속된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 미누(38·본명 미노드 목탄)가 지난 23일 전격 추방된 이후 시민사회에서 거센 비판이 일고 있다.

18년째 한국에 머물며 생활의 뿌리를 내린 미누가 추방돼 앞으로 최소 5년 내에 다시 입국할 수 없게 된 데 대해 시민단체들은 “따뜻한 법치주의를 외치는 정부가 얼마나 기만적인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미누의 석방을 위한 공대위’는 25일 성명서를 내고 “미누의 강제퇴거는 한국사회의 다문화주의가 허울에 불과할 뿐이라는 걸 보여준다”며 “다문화사회를 위한 귀중한 인적자원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법무부의 어리석음을 다시 한번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은 “무엇이 그리 급해서 이의신청을 기각하자마자 면회할 시간도 주지 않고 속전속결로 강제출국 시키는 것인가”라면서 “그것도 인권 준수인가”라고 법무부에 물었다. 이어 “법무부는 미누를 범죄자처럼 묘사하기 위해 정치적 활동에 주도적으로 가담해왔다고 왜곡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누의 법률 지원을 담당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법무부가 행정법원에 제기된 소송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제로 추방해버렸다”며 “그의 노동력을 열악한 생산현장에서 이용했던 한국 정부는 그가 재판청구권과 변호인의 조력받을 권리는 아예 묵살해버렸다”고 비판했다.

‘아시아의친구들’도 “누가 스스로 ‘불법’의 딱지를 두르고 살고 싶겠는가”라면서 “한국 정부는 ‘법치주의’라는 말만 기계적으로 반복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물음에 근본적인 답변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정부도 각종 포상을 통해 인정했듯 미누는 위험요소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해 온 존재”라며 “이를 철저히 무시하고 단속과 추방이라는 극단적인 수단만을 고집해 벼랑 끝으로 몰아간 것은 다름아닌 한국 정부”라고 지적했다.

미누는 앞으로 최소 5년 이상 한국에 재입국할 수 없다. 출입국관리법 11조에 따르면 강제퇴거명령을 받을 경우 출국한 후 5년이 지나지 않으면 입국이 금지된다.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장서연 변호사는 “미누가 다시 입국할 의사가 있다 해도 입국 심사를 할 때 불법체류한 기간을 고려하기 때문에 10년 정도는 한국에 오는 게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공대위는 26일 오전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미누를 강제추방시킨 법무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김지환기자 bald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