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가 아니라 인간의 지하철을 위해 함께 분투할 수 있기를
(2006. 5. 10.)




[부일시론] 지하철 정거장에서

나는 지금 부산 지하철 정거장을 생각하고 있다. 출퇴근길에 거기에서 만나곤 하는 모종의 공포를 떠올리고 있는 중인 것이다. 지하철 정거장에서의 공포? 그렇다. 어쩌면 기계와는 영영 못 사귈 나 같은 사람만이 느끼는 묘한 공포감이랄까? 왜? 그것은 사람이 안 보이기 때문이다. 오가는 승객이 없다는 말은 물론 아니다. 그 콘크리트 지하엔 있어야 할 사람인 직원은 매표소 안에도 밖에도 도무지 보이지 않고 철제 기기들만 버티고 서 있기 때문이다. 이름 하여 자동 매표기, 자동 교통카드 보충기, 자동 동전교환기, 자동 고액권교환기가 그것이다. 또 있다. 매표소와 통하는 작게 뚫린 유리창 안의 기기의 단추를 누르면 이번에는 경로 우대 무료 승차권이 자동으로 나온다. 그리고 그 옆엔 직원을 부르고 싶을 때 벨을 눌러달라는 안내 표지판이 매달려 있고.

이건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얘기다. 지난 해 9월부터 부산교통공사가 이른바 경영합리화란 것을 내세우며 매표소 업무를 보는 노동자 100여 명을 한꺼번에 해고하고 매표 무인화 시스템을 도입한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오늘 다시금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사정이 어쨌든 간에 결국 기계를 사람 대신 앉혔다는 건데 이건 가공할 사건 아닌가? 그렇게 쫓겨난 노동자들은 바로 우리의 이웃이며 부모며 형제자매일진대 대체 누구를 위한 무인화이고 누구를 위한 경영 합리화란 말인가?

적자 문제가 심각하다고 했다. 그럴 것이다. 그러나 무인화가 지하철의 구조적인 적자 문제에 대한 시급하고도 유일한 해결책이긴 했던가? 보도에 따르면 무인화 이후 도둑 공짜표가 늘어나 오히려 더 적자가 발생했다지 않은가. 여기에다 부산교통공사는 올 초 연간 예상 운영비가 19억여원에 이른다는 실업 축구팀 창단을 서둘러 의결했다. 매달 인건비로 나가는 1억8천여만원을 절감한다며 매표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몰고 돈으로는 환산하기 힘든 시민들의 불편과 고통도 나 몰라라 한 공사 책임자들에게 그것은 그리도 급했단 말인가? 이런 정황들은 교통공사뿐 아니라 부산시의 최고 책임자들이 무인화 시스템의 비효율성과 자동화 시스템의 효율성이 가진 반인간적 성격에 얼마나 무감각하며 무지한가를 여실히 드러내줄 따름이다.

시인 에즈라 파운드는 파리의 지하철에서 문득 발견한 사람들의 선명하니 아름다운 얼굴을 '지하철 정거장에서'라는 제목의 짧은 이행시에서 "젖은, 검은빛 나뭇가지 위의 꽃잎들"이라 이미지화해 노래했다. 나는 오늘밤 소망한다. 내일이면 '무인화'로 형편 무인지경이 된 부산 지하철 정거장으로 매표소 해고 노동자들이 돌아와 '꽃잎'처럼 빛나는 얼굴로 나를 맞아 주기를. 그러한 내일이 앞당겨지기를 바라는 모든 이들이 기계가 아니라 인간의 지하철을 위해 함께 분투할 수 있기를.

/윤지형 부산여고 교사·극작가



(▲ 어제부터 혼잡역 매표소 앞 1인 시위에 들어갔습니다.  시민들께서 지나가시다 말고 많이들 관심가져 주시고, 궁금해서 물어보기도 하고, 시민들끼리 서로 토론도 하시고, 화이팅이라며 연거푸 외쳐주고 가시기도 하셨습니다.  너무나도 뜨거웠던 시민들의 호응에 실버봉사대 어르신들께서 곤혹스레 얼굴을 붉히기도 하셨지만, 이내 이분들도 맞다맞다며 맞장구를 쳐주셨습니다.)


(▲ 저녁, 화요 촛불문화제가 있었습니다.  유난히 차분했던 촛불문화제.  조금전 범진케이블 신기식 동지가 삭발과 함께 무기한 단식투쟁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신 동지도 얼마전 사측의 노조탄압 속에 해고된 동지입니다.  아침에 등교하는 아이를 붙잡고 “아빠 몇일간 출장가서 집에 못들어와.  아빠 없으면 이 집에 대장은 누구지?”라고 물으니 자기라며 힘주어 말하던 초등학교 1학년짜리 아이가 뒤돌아서 걸어가며 울더랍니다.  이내 눈시울이 붉어져 말끝이 떨려오는 신기식 동지를 보며 어찌나 가슴이 아프던지요.  그래서 숙연해질 수 밖에 없었던 문화제였습니다.)



살고자하는 몸부림의 흔적으로 흉흉해져 버린 시청 앞 천막과 서면 노숙농성장.  오늘도 굵은 빗줄기는 사정없이 내렸습니다.  낡은 천막을 뚫고 들어온 빗물은 갈 곳을 잃고 후둑후둑 주루룩 천막 안 이곳저곳에 생채기를 남겼습니다.  
서면 노숙농성장.  강물이 범람한 듯 농성장 바닥에 빗물이 가득 고였습니다.  고인 빗물 위로 많은 부유물들이 떠다니고, 그 사이로 고립된 노숙농성장이 어쩐지 서글퍼 보입니다.  빗물에 발은 퉁퉁 불고 신발은 저벅거렸지만 한 손엔 우산, 한 손엔 피켓과 유인물을 들었습니다.  정든 일터로 돌아가 예전처럼 다시 일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오늘도 피켓을 들고 마이크를 잡습니다.  
이제 여기서 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얼마나 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지금껏 살고자 뛰어왔지만, 아직도 허남식 부산시장과 부산교통공사는 만천하에 명백히 드러난 매표소 무인화 정책의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 잡기는커녕, 여전히 저희들을 짓밟고 목을 죄고 있습니다.  숨이 막힙니다.  


허남식 부산시장의 책임입니다.
부산시의 책임입니다.
부산교통공사의 책임입니다.
매표소 복구하고 부산지하철 비정규 매표소 해고노동자들을 고용승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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