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의료지원까지…다문화가족 복지 업그레이드

  
#1. 지난해 3월 한국으로 시집온 필리핀 결혼이주여성 S(23)씨는 1년 가까운 세월을 악몽 속에서 보냈다. 남편이 휘두르는 폭력에 얼굴과 온몸의 피멍이 가시지 않았다. 급기야 S씨는 임신 8개월의 무거운 몸을 끌고 나와 대구의 한 쉼터에 의탁했다. 시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잦은 폭력으로 태아 위치가 잘못되는 바람에 당장 수술을 받아야 할 처지가 됐다. 하지만 한국 국적이 없는 그녀로서는 병원조차 갈 수 없었다. 이런 S씨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은 대구 달서구청. 30만원의 생계비와 수술비 지원이 그를 살렸다. S씨는 "이런 지원마저 없었더라면 어떻게 됐을지 두렵다"고 울먹였다.

#2. 인도네시아 출신 근로자 K(32)씨는 요즘 큰 수술을 앞두고 있지만 희망에 차 있다. 성서공단에서 4년간 일하다 2개월 전 일자리를 잃은 그는 심장판막증까지 얻어 막막한 처지였지만 달서구청이 생계비와 수술비를 지원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결혼이주여성,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 등 사회안전망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외국인들을 위한 '다문화 복지'가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다문화 인구가 급속하게 늘고 있는 가운데 국내 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계층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다문화가정을 구호하기 위한 정책이 처음으로 등장, 관심을 모으고 있다.

달서구청은 올해부터 실직, 이혼 등으로 인해 어려운 처지에 놓인 국내 거주 외국인들을 위한 긴급 구호 예산을 조성, 직접 지원에 나선다고 밝혔다. 구청 관계자는 "'달서구 외국인주민지원 조례'에 근거해 예산을 편성했으며 하반기에도 추가 예산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달서구청이 외국인들을 위해 직접 지원에 나선 것은 대구에 거주하는 외국인 1만여명 중 36%(외국인 근로자 3천66명, 결혼이주여성 872명)가 달서구에 몰려 있는 사정 때문이다.

그동안 다문화가정, 외국인 근로자 등을 위한 정책은 결혼이민자지원센터나 복지관 등을 통한 간접 지원이 대부분이고 직접 지원은 한글·예절 등 문화교육이 고작이었다. 여기에는 기초수급·차상위 계층 한국인도 많은데 외국인, 혹은 외국 출신까지 도울 여력이 없다는 차별적 정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광역·기초자치단체 담당자들이 지금껏 다문화가정에 대해 직접 지원을 요청했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아왔다. 다문화정책에서 전국 최고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경북도도 마찬가지다. 한 관계자는 "다문화가정 경우 인터넷과 2세 교육을 위한 사설 학습지 예산을 지원해 주고 싶어도 다문화가정 지원 관련 법규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한계가 많다"고 했다.

달서구청 배봉호 기획조정실장은 "국적 취득을 못한 채 집을 나온 결혼이주여성과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외국인 거주자들이 늘어나 구호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앞으로 병원 등과 협약을 맺어 어려운 외국인 주민들이 의료, 생계 등 실질적인 혜택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