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가정 자녀 70% 고교 교육 못받아  

레인보우 코리아 다문화강국<1부>


◆ 한국, 다문화 시계는 몇시인가 / ⑤ 다문화 강국 성패는 교육에 ◆


내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가야 하는 아람(가명ㆍ7)이는 아직 우리말이 서툴다. 맞춤법에 맞게 한글을 쓰는 것은 더 버겁다. 공장에서 밤늦게까지 일하는 한국인 아버지(47)는 얼굴 보기조차 어렵고, 베트남에서 시집온 어머니(35)는 아직 아이들 이름조차 제대로 발음하지 못해 집에 있더라도 아람이와 대화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

서울 동작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안진경 팀장은 "서울 25개 구에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4곳뿐"이라며 "센터마다 배정된 교사 2~3명이 아이들을 모두 돌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다문화가정 2세들은 대부분 한국에서 태어나 법적으로는 완전한 한국인이지만 정상 교육조차 받지 못한 채 이방인으로 전락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현재 초ㆍ중ㆍ고교에 재학 중인 다문화가정 자녀는 약 2만명. 해마다 40% 가까운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국무총리실 주도로 이뤄진 `다문화가정 교육지원 실태 평가`는 대부분 지원정책이 이주 1세대를 대상으로 한 한국어 교육 등에 편중돼 자녀 교육지원은 미흡한 수준이라고 결론내렸다.

차별과 편견을 어느 정도 각오하고 한국땅을 밟은 이주 1세들과 달리 스스로를 한국인으로 자각하는 2세들이 교육 기회 차별로 인해 사회 부적응자로 성장하면 한국 미래에 `시한폭탄`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정부 관계자는 염려했다.

실제 원희목 한나라당 의원이 교육부 등에서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다문화가정 취학 연령대 자녀 2만4867명 가운데 6089명(24.5%)이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등학교는 15.4%, 중학교는 39.7%, 심지어 고등학교는 69.6%가 학교에 다니지 않고 있었다. 이는 일반 가정에 비해 6~8배 높은 수치다.

신상록 다문화네트워크 소장은 "이주 여성들은 대부분 생업에 쫓기는 남편을 대신해 어린 자녀를 홀로 양육하고 있다"며 "한국말이 서툰 어머니 밑에서 자란 아이는 말이 늦고 학교에서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언어 장벽으로 수업을 따라가기 힘든 데다 피부색이나 외모를 이유로 따돌림까지 당하니 아이들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은 필연적인 현상.

정부에서도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방과 후 교육(교육부)이나 방문교육(복지부)과 같은 지원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예산이나 전문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해 다문화가정 자녀 지원을 위해 배정된 교육부 예산은 14억3400만원. 산술적으로 1인당 7만원꼴도 안 되는 액수다. 여기에 더해 다문화 교육에 대한 교사 전문성 부족과 한국어 교육 외에 마땅한 `맞춤형` 프로그램이 없다는 점도 내실 있는 교육을 어렵게 하고 있다.

더욱이 학교 교육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취학 전 기초학습이 필요하지만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을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에 대한 별도 지원대책은 전무하다.

2007년 여성정책연구원 연구 결과 일반 가정 자녀 56.8%가 유치원에 다니는 반면 다문화가정 자녀 취학 비율은 27.3%에 불과했다.

그나마 학교에 다닐 수 있는 아이들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불법체류 외국인 자녀 가운데 상당수는 출생신고조차 못한 채 교육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다. 법무부는 지난해 말 현재 불법체류 외국인 약 20만명 자녀 8000여 명이 학교 밖에 방치돼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한국은 다문화 교육이 다문화가정 자녀들만을 대상으로 이들을 일방적으로 한국 문화에 편입시키려는 이른바 `동화주의(assimilation)`를 못 벗어나고 있다. 일반 학생들이 다문화 현상을 이해하고 다문화가정 2세들과 편견 없이 어울리도록 하는 교육은 전무하다.

미국 등 선진국 다문화 정책을 보면 이민 2~3세들을 단순히 자국 문화에 융화시키는 `용광로(melting pot)` 주의는 이제 옛말이다. 문화 다원주의에 입각해 다양한 언어ㆍ문화적 특성을 존중하면서 새로운 국가경쟁력으로 승화시키는 `샐러드볼(salad bowl)` 주의가 새로운 트렌드가 됐다.

정부 관계자는 "한국도 다문화가정 자녀의 이중언어 능력을 키우고 유학을 장려해 글로벌 인재로 육성하는 한편 일반인을 대상으로는 다문화 이해 능력을 높이는 방안이 장기적인 정책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