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으로 치닫는 '인간 사냥'…"법무부는 범법부냐"  
  대규모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경찰까지 동원  

  2008-11-14 오후 6:30:16    


  

  
  "우리 나쁜 사람 아니에요. 한국에 돈 벌러 왔어요."
  
  방글라데시에서 온 이주노동자가 눈물을 흘렸다. 법무부의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에서 도망치다 다친 그의 팔에는 때묻지 않은 흰 붕대가 감겨 있었다.
  
  '인간 사냥 식' 이주노동자 단속의 폭력성이 끝모르게 치닫고 있다. 지난 12일 법무부는 경찰과 합동으로 경기도 남양주 마석가구단지와 연천 청산농장 등에서 또 한 번 대대적 단속을 벌였다. 올들어 시행된 최대 규모의 단속이었다. 이 과정에서 130여 명의 이주노동자가 붙잡혔으며 4명은 수술을 받을 정도로 중상을 입었다.
  
  법무부가 사상 처음으로 경찰과 합동으로 실시해 마치 군사 작전을 방불케 했던 이번 단속은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과 '외국인 이주 노동운동협의회'는 14일 서울 양천구 신정6동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앞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법무부는 비인간적이고 야만적인 불법 단속을 즉각 중단하라"며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전면 합법화하라"고 촉구했다.
  
  경찰 동원, 문 부수고, 토끼몰이 식…"군사 작전 방불케 해"

  
▲이주노동자 시민단체들은 14일 오전 서울 양천구 신정6동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앞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지난 12일 법무부가 경찰까지 동원해 대대적으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단속한 것은 '인간 사냥의 결정판'"이라고 비난했다. ⓒ프레시안  

  이들은 성명서에서 "지난 12일 법무부가 벌인 대규모 불법 단속은 적법한 절차는 철저하게 무시한 '미등록 이주노동자 인간 사냥'이었다"고 성토했다.
  
  이들에 따르면, 법무부는 지난 12일 마석 지역에서만 대형 출입국 버스 1대, 경찰버스 2대, 25인승 버스와 승합차 7대 등 차량이 동원해 공단 각 입구를 에워싸고 도망치는 이주노동자들을 토끼몰이 식으로 붙잡았다. 이날 투입된 단속반은 법무부 출입국 소속 직원과 경찰을 포함해 100여 명인 것으로 추산된다.
  
  또 법무부 출입국 직원들은 사업장을 출입할 때 신원을 밝히지 않고 무단으로 들어와 단속했다. 단속 대상자에게 수갑을 채워서 연행할 수 없게 한 법무부 내 단속지침은 보란 듯이 무시됐다. 단속 과정에서 심각한 부상을 당한 이주노동자들은 치료가 늦어 수술을 해야 했다.
  
  이들은 "단속반 직원들은 파렴치한 범죄자나 할 수 있는 해괴한 일을 거리낌 없이 취했다"며 "어떻게 이주노동자들이 사는 기숙사 문을 부수고 무단으로 가택에 침입해 불법 단속을 행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따졌다. 이들은 "법과 질서를 준수해야 하는 법무부 출입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을 백주 대낮에 행할 수 있나"라며 "법무부는 법이 없는 부처를 가리키는 말인가"라고 꼬집었다.
  
  이주노동자 때문에 슬럼가 형성?…"한국 경제 떠받치는 게 누군데"
  
  이번 단속은 지난 9월 25일 법무부가 국가경쟁력위원회에서 "올 연말까지 미등록 이주노동자 2만 명을 단속하고, 향후 5년 이내에 그 인원을 전체 이주노동자의 10% 정도로 감축하겠다"고 보고한 것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또 현재 법무부는 전면적인 단속을 2~3차례 더 시행할 것을 예고하며 구체적으로 52개 지역을 선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단속 강도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12일 법무부는 단속에 앞서 보도 자료를 배포하고 "이주노동자 밀집 지역의 슬럼화와 범죄의 증가"로 인해 단속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주노동자 단체들은 "남양주시의 2007년 통계 연보에 따르면 지난 2006년에 일어난 범죄 중 외국인에 의한 범죄는 0.31%에 불과하다"며 "남양주 전체의 수치임을 감안하면 성생공단 내 범죄율은 더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이들은 "슬럼화 문제는 오히려 이주노동자들의 기본권 문제가 심각한 수준임을 각성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기자 회견에 참석한 민주노총 허영구 부위원장은 "한국 사람으로서, 같은 노동자로서 이런 사태가 부끄럽다"며 "국가 경제 파탄의 책임을 힘없는 사람에게 떠넘기려는 현 정부는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인이 회피하는 험한 곳에서 일해 경제 성장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안경환)는 단속 과정에서 인권 침해가 일어났다는 진정이 제기된 마석가구단지 일대에서 현지조사를 실시했다. 인권위는 아울러 자체 조사와는 별개로 한국을 방문 중인 필리핀, 네팔 국가인권위원회 위원 등도 현장 방문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김하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