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오바마 꿈꾸다’ 이주여성 정치인 만들기 시동  





지난 10월 22일 국회와 정치의 의미를 교육하는 강의에 참가한 이주여성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경청하고 있다.


수많은 편견을 극복하고 첫 흑인 미국 대통령으로 우뚝 선 버락 오바마. 미국의 대표로 당당히 자리매김한 그의 당선은 마침내 다문화사회를 일궈 낸 미국의 쾌거이자 역사적인 사건이다.

한국에서도 오바마를 꿈꾸는 이들이 있다. 한국사회의 순혈주의, 남성중심주의를 극복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정치로 풀어내겠다는 이주여성들의 도전. ‘국제결혼 이주여성 첫 의원 만들기 프로젝트’에 참가한 이주여성 20명의 희망은 단순하다. 하지만 결코 만만친 않다. 내 권리를 말해줄 정치인을 내 손으로 만들어내겠다는 것. 지역의, 여성의,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할 정치인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어찌보면 당연한 얘기지만 수많은 차별과 외면을 감내하고 있는 이들에겐 결코 만만치 않은 도전이다. 한국의 오바마를 꿈꾸는 이들에게 정치는 새로운 희망이자 숙제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첫 이주여성 정치인 탄생시키겠다


지난 5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위치한 한국여성정치연구소에는 국회 방문 일정을 앞두고 막바지 준비가 한창이었다.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은 “직원 3명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며 “몸이 바쁜 일은 별로 없지만 꼼꼼하게 행사를 준비하다보면 마음이 더 바쁘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들이 올해 초부터 진행하고 있는 이 행사는 ‘국제결혼 이주여성 첫 의원 만들기 프로젝트’. 2010년 지방선거 때 첫 이주여성 출신 정치인을 배출하겠다는 취지다.


올해 초부터 시작한 프로젝트지만 이들의 첫모임은 10월 22일이 되서야 어렵사리 이뤄졌다. 참가 인원 섭외에만 6개월 넘는 시간이 걸린 것. 김 소장은 “당장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주여성도 많은데 쉽사리 정치 활동에 동참하자는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며 “지인들과 대학 강의 수강생 등을 통해 오랜 시간에 걸쳐 마침내 20명의 참가자를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우리도 세금내는 똑같은 한국인


프로젝트에 참가한 이주여성들의 목적은 간단하지만 절실하다. 이주여성의 권리는 이주여성의 손으로 만들고 싶다는 것. 똑같이 세금을 내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자녀 교육 걱정과 가계부 관리에 고심하는 학부모이자 한 사람의 주부로서 직접 필요한 부분을 요구하고 만들어가는 국민의 ‘기본권’을 찾고 싶다는 의미다.


몽골 출신의 아리옹(35ㆍ여) 씨는 “한국정부가 많은 정책을 제공해주고 있지만 정작 이주여성들에게 절박한 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다”며 “당사자가 직접 정책을 만들어가는 것이 진정한 권리란 생각에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됐다”고 말했다. 스리랑카 출신의 이레샤(34ㆍ여) 씨도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대한민국 국민으로 차별 없이 살게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 소장은 “참가자들은 자신의 차별까진 감내하더라도 계속 한국에서 살아갈 자식에게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부모’의 마음으로 노력하고 있다”며 “투표도 한국에서 처음 해보고 민주주의를 처음 접해본 참가자들도 있지만 다들 열의가 대단하다”고 설명했다.


실무교육과 정치단체 방문을 진행하고 있는 한국정치연구소는 내년까지 전문 교육을 진행해 2010년 지방의원 의원선거에 진출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정당 및 시민단체와 지속적으로 접촉하고 있는 한국정치연구소는 이들 단체와 함께 네트워크를 구성, 선거까지 박차를 가하겠다는 입장이다.


2차례 실무교육에 이어 6일 신낙균 국회 여성위원회 위원장과 국회에서 간담회를 갖고 국회 본회의까지 방청한 이들은 이후 청와대, 통일전망대 등을 방문하며 한국 정치의 면면을 경험하게 된다. 김 소장은 “정치는 질곡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또 희망을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며 “정치에 도전하면서 새로운 희망을 꿈꾸는 이들에게 따뜻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상수 기자(dlcw@heraldm.com)


▶갈 길 먼 10만 이주노동자의 대표


미국 다문화 사회의 승리를 보여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 하지만 미국 사회 역시 200년 넘은 역사를 거쳐 수많은 질곡을 겪은 뒤에야 이 같은 결과를 가져왔다. 한국은 아직 갈 길이 멀기만 하다. 현실적으론 다문화 사회에 접어든 지 오래지만 아직도 한국 정치는 변화될 조짐마저 보이지 않는다. 현실보다 정치가 한참 뒤처져 있는 형국이다.


한국 남성과 결혼해 한국에 정착해 살고 있는 이주여성은 이미 10만 명이 넘는다. 6일 출입국 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9월 30일 기준으로 한국에 거주하는 결혼 이주여성의 수는 10만6211명. 이주남성 1만4494명까지 포함하면 국내 거주하는 이민자는 12만 명을 웃돌고 있다. 서울지역 2만9481명을 비롯, 경기도(3만1173명), 충청도(9345명), 전라도(1만206명), 경상도(1만3261명) 등 전국적으로 이주민이 없는 지역을 찾을 수 없는 실정이다.


▶수용의 정치문화 절실


경제적 목적으로 잠시 한국에 머무는 이주노동자와 달리 한국에 거주해 가정을 이루는 이주민들의 증가는 한국 정치계에서도 놓쳐선 안 될 대목. 하지만 10만 명이 넘는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정치권에 진출한 정치인은 여전히 단 한 명도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지방의회의 문턱조차 아직 이주민들에겐 높기만 하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학과 교수는 “오바마 대통령처럼 정치가 사회에 새로운 바람과 활력을 불어넣어야 하지만 여전히 이주민들에게 폐쇄적인 한국의 정치는 그런 역할을 하기 보다는 오히려 현실보다 퇴행적인 측면이 강하다”고 말했다.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도 “미국 역시 오바마 대통령이 나오기까지 200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며 “이제 이주여성 역사가 10년 남짓 된 한국으로선 아직 극복할 문제가 많다”고 말했다.


한국의 정치 문화에 유연성이 부족하다는 점 역시 지적되고 있다. 박 교수는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은 미국 정치문화가 다양한 가치관을 수용할 수 있다는 유연성을 보여준 대목”이라며 “정치문화의 유연성이 부족한 한국에서 ‘오바마’같은 정치인 배출을 기대하기엔 사회 깊숙이 뿌리박힌 관행과 편견이 여전히 심하다”고 말했다.


이정희 한국외대 정외과 교수는 “오바마 대통령의 등장은 한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것에 도전할 수 있다는 ‘용기’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이미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가 자리잡은 미국과 달리 한국은 이주민자가 정치권으로 진출하기엔 문화적으로 성숙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 사회도 오바마 대통령 당선을 계기로 새로운 변화와 수용을 보여주는 정치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상수 기자(dlcw@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