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이주노동자투쟁이 던지는 질문


최근 들어 전 세계에 걸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이 하나의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 이주노동을 제약하는 악법이 추진되고 있고, 이에 반대하는 이주노동자들의 거대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프랑스에서도 정부의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공격과 이에 맞선 노동자들의 반격이 일어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도 이주노동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이후 이주노동악법을 둘러싸고 끊임없는 논란과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2003년에 고용허가제와 단속추방정책이 도입된 이후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자살할 만큼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면서 소수이지만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각국에서의 이주노동자에 대한 공격들은 약간의 형태를 달리할 뿐이지 합법적 이주라는 명목 하에 불법이라는 족쇄를 채워 마음껏 착취하고자 한다는 점에서는 대동소이하다.
2003에서 2004년에 걸친 명동성당농성투쟁 이후, 한국 노동운동도 점차 이주노동자의 조직화에 대한 필요성을 느껴가고 있다. 이주노동자 대책위원회, 경기지역이주노동자 공대위, 안산 이주실천연대를 포함하여 아직은 소수이지만 이주노동자와 연대하고 조직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그것은 계급적, 대중적 운동이라기보다는 사회의 최하층민에 대한 동정과 연민을 담은 인권 운동적 성격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노동계급운동의 일부인 이주노동자운동이 이제 막 태어났을 뿐이라는 역사적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 글은 이주노동의 역사가 깊고, 이와 함께 운동의 역사 또한 깊으며, 노동계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유럽과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최근 투쟁을 짚어보면서 교훈을 찾고자 하는 시도이다.

미국 이민법 개정 - 하층노동계급에 대한 심각한 공격

  2005년 12월 미 하원은 불법체류자 구금 후 추방, 서류미비 고용주 처벌, 국경 320km 장벽 설치, 불법체류지원자 처벌 등을 주 내용으로 하는 이주악법을 통과시켰다. 이에 대한 이주노동자들의 반발과 저항에 직면한 미 상원은 5월 25일에 5년 이상 체류자에게 벌금(3250달러)부여 후 영어를 배우고 시민권 취득 가능, 2~5년 체류자 재입국 절차, 2년 미만 체류자 본국 송환, 국경에 595km장벽 설치 및 국경경비 강화라는 새로운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현재는 두 법안의 단일화가 추진되고 있으며, 미국정부와 언론은 마치 한국의 지배자들처럼 상원 통과 법안이 친이민법이라고 떠들어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그나마 법이라는 틀 밖에 이주노동자들이 누려왔던 제한적 자유마저도 법이라는 틀을 통해 제약하는 심각한 반이주노동자법일 뿐이다.
  미국 자본과 정부는 5년 이상 체류자에게 시민권을 부여하기에 이번 법안이 이주노동자들에게 커다란 선물을 준 것인 양 호들갑을 떨고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정말 가관이다. 5년 이상 불법체류한 이주노동자들에게 길게는 6년까지 연장할 수 있는 취업비자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한 후에 벌금 3250달러(약 260만원)와 미납세금을 내면 그 6년 뒤에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고, 다시 5년이 지나면 시민권을 받게 되는 것이다. 2년 이상, 5년 미만 체류자인 경우엔 일단 출국한 뒤 임시 노동자로 비자를 받아 미국에 재입국할 수 있도록 했다. 이들도 나중에 기한을 채우면 영주권과 시민권을 받을 수 있으나 5년 이상 체류자보다는 더 오래 기다려야 한다.
신규 초청이주노동자뿐만 아니라, 2년 이상 5년 미만의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이 6년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기한이 6년뿐인 초청 고용주의 보증이 필수적인 것이고 다른 직종으로 이동할 수도 없도록 했기 때문에, 당연히 고용주는 이를 무기삼아 이주노동자들에게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 무노조를 강요할 것이고, 이주노동자는 6년간 노예처럼 복종해야만 그나마 영주권 자격을 얻게 되는 것이다. 체류기간이 2년 미만인 사람들은 계속 불법체류자로 남게 된다. 아니, 중범죄자 취급을 받으면서 한국 땅의 이주노동자보다도 더한 폭력적 단속의 위협 속에서 살아가야만 한다. 이들이 일단 미국을 떠난 뒤 재입국하려면 이민. 취업을 희망하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미 당국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재입국 보장이 없는 것이다. 일부 이민자 권리운동단체들이 이에 대해 환영하고 있지만, 한국에서 고용허가제와 단속추방정책이 결국 이주노동자 전체에 대한 공격이라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났듯이 미국의 이주노동자 법안도 미국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이라는 점은 너무도 명백하다. 오히려, 미국에서 이주노동자의 수가 노동계급 가운데 차지하는 비율이 훨씬 더 높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공격은 훨씬 더 거대한 공격이다.
  미국은 이주노동자의 나라이다. 영국과 프랑스의 상인들이 아메리카대륙을 차지한 이후 자국에서 살기 힘든 노동자와 농민들이 땅 한때기와 일자리를 찾아 죽음의 바다를 건너와야 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독일과 아일랜드에서 가뭄과 기아를 피해 노동자 농민들이 미국으로 건너와 하층노동자가 되었다. 이어서 아시아의 이주노동자들과 흑인 노예출신의 노동자들이 노동계급의 하층으로 편입되게 되었고, 최근에는 멕시코를 포함하여 스페인과 동남아시계의 이주노동자들이 미국노동계급을 확장시켰다. 그 가운데 전체 노동자의 10%에 달하는 1200만 미등록이주노동자를 포함하여, 영주권과 시민권을 아직까지 보장받지 못한 합법체류자 수백만 명을 합해 약 15%에 가까운 하층노동자들을 시민권이라는 족쇄에 묶어두고  마음껏 유린하고 착취하고자 하는 것이 이 법안이 노리는 것이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세계적 공격 - 노동계급 일부에 대한 억압과 분열을 노리다  

  5월 13일 프랑스 하원은 미숙련노동자의 이민제한과 프랑스어 테스트 통과 후 영주권 부여 등을 내용으로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것은 입국과 거주를 까다롭게 하여 가족 재결합을 위한 입국조건을 보다 엄격히 하고, 10년간 프랑스 불법체류 시 자동국적 취득규정을 폐지하는 이주노동자 악법이다. 비슷한 시기 영국에서도 이민자의 건강보험 제한 등을 골자로 하는 악법을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일본도 불법체류자를 쉽게 통제하기 위해 장기체류 외국인에게 체재카드를 발급할 방침이다. 그 동안 지자체 별로 외국인등록증을 발급, 체재허가와 등록을 해왔으나 앞으론 국가가 일원화해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재일동포 등 특별영주자는 제외되지만, 카드에 성명, 국적, 생년월일, 여권정보, 체류자격, 주소, 취업ㆍ통학처 등을 적어 넣어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통제하에 두겠다는 전략이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 각국의 자본가계급과 정부는 똑같이 이주노동자에 대한 공격을 펼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각국에서의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공격이라는 형태로서만이 아니라, 구조조정과 민영화라는 명목으로 고용을 줄이고 노동시간과 강도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그리고 비정규직 확대라는 방식으로 노동자들이 숨쉴 틈 없이 몰아붙이고 있다. 이것은 각국 자본가들의 상황이 너무도 유사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계적 경제침체와 경쟁의 격화, 이로 인한 이윤창출과 자본축적의 어려움이 동일하게 노동자에 대한 끊임없는 공격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단적인 예는 프랑스다. 프랑스 자본과 정부는 2005년 11월에 국영철도와 전기, 해운업의 민영화, 2006년 5월에는 최초고용계약법(CPE)을 통한 노동시장의 유연화에 이어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이주노동자에 대한 공격을 들고 나와 싸움을 걸고 있다. 그것도, 중요한 거리들을 불질렀던 이주민 청소년들의 폭동이 일어난지 몇 달 지나지 않았고, CPE에 대한 거대한 반대투쟁으로 법안을 철회한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또 다시 공세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자본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경제적 둔화로부터 비롯된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은 점차 노동자들의 투쟁을 강화시켰고, 개량적인 노동자당에 대한 노동자들의 지지철회가 확대되었다. 이로 인해 점차 개량적인 노동자당의 노동자들에 대한 통제력도 약화되었고, 중간계급은 정치적 우경화를 걷게 되었다. 사회적 분노를 노동자계급 가운데 약소민족에게 돌리는 극우세력이 등장했다. 자본가 정당은 노동계급을 완전히 배제하고 우경화한 중간계급을 권력의 기반으로 삼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을 적으로 돌리는 르팽의 목소리는 이제 사르코지 목소리가 되었고, 이런 방식으로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후진적 민족주의를 부추겨 자신들의 책임을 이주노동자들에게 전가하고자 하고 있다. 이것이 현재의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을 통해 자본가 정당이 겨냥하는 두 번째 목표이다.

이주노동자투쟁이 던지는 질문

  미국에서 이주노동자의 투쟁은 3월부터 시작되어 주말마다 거리를 메웠으며, 메이데이 투쟁에는 역사상 유례없는 규모로 파업과 집회에 참여하였다. 전국적으로 200만에 달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집회에 참여하였고, 비록 중간계급운동에 이끌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충분한 힘을 완전히 발휘하고 있지 못하지만, 그 숫자와 파업이라는 노동자의 무기를 동원함으로써 거대한 잠재력과 자신감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이주노동자 투쟁은 미국 노동운동이 최근 거둔 가장 소중한 성과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미국 노동자계급은 이주 노동자들을 선두로 조금씩 기지개를 펴기 시작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프랑스에서도 우경화된 사회의 압력과 지난 겨울 이주노동자 청소년들의 폭동으로 인한 좋지 않은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13일 3만 5천명이 모여 이주노동자개악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러한 거대한 투쟁들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주노동자들이 동원하는 힘이 자본가계급의 공세를 넘어설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특히 자본가계급의 가공할 만한 공세가 무차별하게 작동하고 있는 미국에서 결과는 당장에는 자본가 정부의 승리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이주노동자들만이 아니라, 그 결과가 미칠 영향으로 모든 미국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악화될 것이 분명하다. 더 심각한 것은 이주노동자들이 내국노동자들의 외면으로 인해, 자본가 정부가 노렸던 분열의식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내국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에 대해 투쟁파괴자로 이용되는 것이다. 이주노동자들과 내국노동자들 사이의 분열의 확대는 미국에서 자본가들과 정부가 노동자에 대한 공격에서 항상 이용해 왔던 인종주의라는 사악한 무기를 확대시킬 것이다. 반대로 자본이 노리는 분열을 거부하고 인종과 민족을 뛰어넘어 단결의 기운을 만들어내고, 선진부위에서나마 진정한 연대를 형성해 낸다면, 미래를 위한 소중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이후 이주노동자는 내국노동자의 투쟁에 대해 형제애적인 연대로 답할 것이다.

미래를 준비하자!

  한국에서도 이주노동자들의 자주적 진출이 본격화된다면 한국노동운동은 현재 타국에서 던져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피할 수 없는 질문 - 노동자계급의 연대를 통한 승리의 길이냐 분열을 통한 각개 격파의 길이냐 - 을 받게 될 것이다. 나아가서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각국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나날이 증대하면서 가장 빠른 속도로 생산직 노동자들을 토해내고 있는 상태에서 한국의 이주노동운동은 아시아 노동해방운동을 연결짓는 중요한 고리로서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한 미래의 요청에 제대로 부응하기 위해서 우리는 조합주의에 갇힌 분열을 박살내면서 노동해방운동의 길, 다름 아닌 전체 노동자계급의 단결투쟁의 길을 향해 한국노동자들과 이주노동자들을 준비시켜야 한다. 노동자들의 해방을 위한 단결을 조직하자!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임무 앞에 한국 노동자들과 한국의 이주 노동자들이 당당한 단결로 일어나도록 힘차게 실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