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유세는 각 후보들의 힘찬 연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장내가 떠나가도록 힘찬 목소리로 자신의 주장을 밝히는 모습은 참 보기 좋았습니다. 박수도 있고 웃음도 있는 유세장의 분위기도 아주 좋았습니다. 저의 유세는 제가 보기에도 실망스러웠습니다. 감기약 탓인지 아니면 김은진 후보를 응원하는 부산당원들의 기세에 눌려선지 유세 마지막에 시간에 쫓겨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기억이 안날 정도였습니다.
오늘 유세에서 가장 아슬아슬한 장면은 정책위의장 유세때 나왔던 북한 인권문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북쪽의 공개처형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이 정책위의장 후보의 입에서 나왔다는 추궁과 공개처형을 반대하는 자신의 의견을 밝힌 뒤 진흙탕 선거운동은 이제 그만 지양하자는 공격성 해명이 부딧치는 순간 유세장은 긴장이 감돌았습니다. 아마 후보유세가 아니고 토론회였다면 상당한 설전이 오갔을 순간이었습니다.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당내 논란은 매우 선정적이지만 실내용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인권의 문제가 아니라 북체제의 민주주의 문제로 바라보는 것이 문제를 협소화하지 않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한반도 전체에서 노동자계급의 주도성을 높인다는 측면에서 노동권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에서 노동조합의 교섭권이 공식적으로 부인된 것은 1961년입니다. 4, 50년대에는 노동조합의 역할을 강조하는 원산지역 노동운동의 터줏대감이었던 오기섭 같은 반대파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직총이라고 불리던 북한의 노동자 조직은 사실상 쟁의권과 교섭권을 상실하고, 사회주의 사상을 교육하는 기관으로 전락했습니다. 나중에는 주체주의를 교육하는 기관으로 바뀌었지만 말입니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노동조합의 역할에 관련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저는 노동조합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해마다 무리한 생산목표를 설정하고 목표완수를 다그치는 사회라면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방어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어쨋든 북한 노동자들은 교섭권과 쟁의권을 박탈당한 상태입니다. 다만 80년대 합영법이 만들어지며 외자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위한 장치로 직총조직의 구성과 직총의 임금교섭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예외가 있는 데 그 곳이 바로 개성공단입니다. 개성공단 노동자들의 임금은 사회보험비를 포함해 월 57달러 입니다. 문제는 임금인상율은 연 5%로 제한되어 있고 직총의 조직은 허용해도 교섭권은 박탈한 것입니다. 남한의 자본과 북한의 값싼 노동력이 만나는 환상의 지대, 개성공단은 자본에게 완전히 무장해제 당한 북한 노동자들의 무권리 지역입니다.

개성공단은 지금 남북경협의 쇼윈도우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지금 시범단지가 원래 목표대로 100만평 나아가 400만평 규모의 공단으로 발전한다면 이것은 필경 남한 노동자에게 재앙으로 닥칠 것입니다. 지금도 고실업을 빌미로 임금저하를 시도하는 자본이 개성이라는 든든한 백을 믿고 설칠 일은 안봐도 비디오입니다. 한편에서는 동남아로 빠져 나가는 자본이 차라리 북한지역으로 가서 민족공조를 이루면 좋은 일이 아니냐는 반론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역이 북한이든 인도네시아든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해외투자의 경우는 대개가 수출산업이 아니라 내수시장을 겨냥한 경우입니다. 값싼 노동력으로 생산비를 줄여 보겠다는 심보가 분명하기 때문에, 이는 제조업공동화, 이에 따른 실업률 증대로 이어질 것입니다.

이를 막는 길은 북쪽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수호하기 위해 남북 노동자가 연대하는 "계급공조"입니다. 노동자계급이 자본과 직면해서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 최소한의 안전망인 교섭권과 쟁의권의 확보는 체제를 뛰어넘는 문제입니다. 값싼 임금을 보고 개성으로 몰려간 자본에게 똑 같이 임금을 지불하라고 하면 씨도 안먹히는 이야기지만 노동자들의 제권리를 인정케 하는 투쟁은 충분한 명분과 실리를 찾는 길이 될 것입니다. 자본진출이 당분간 불가피하다고 하면 최소한 노동자들에게 자본주의에 대한 백신, 즉 단결하고 교섭하고 파업하는 권리를 제공해야 합니다. 그리고 개성공단에서 벌어 들이는 수익은 그 일부를 북한 농업인프라 개선사업으로 쓸 수 있도록 요구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GS정유(LG정유) 노동자들이 외국 합작기업에 대해 막대한 이익의 일부를 지역발전기금으로 내놓으라고 한 것과 같은 취지에서 입니다.

이것은 통일의 상을 잡아나가는데도 중요한 쟁점이 될 것입니다. 한반도의 통일이 자본의 지배력을 북한까지 확대하는 것인지, 노동자 국가, 사회주의적 원리를 남쪽까지 확대하는 것인지 분명히 선택해야 합니다. 북쪽의 선하디 선한 사람들이 탐욕스런 천민 자본주의의 아가리에 들어갈 생각을 하면 끔찍합니다. 세계에서도 드물게 여성이 술따르는 더러운 술문화를 가진 남쪽의 소부르주아들이 북쪽을 더럽힐 생각을 하면 소름이 돋고 머리가 아픕니다.

후퇴가 불가피하고, 기초생활을 정상화시켜야 하는 북쪽의 다급한 사정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사회주의적 소유의 장점을 북한이 지켜주기를 정말 바랍니다. 그것이 바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남북한 노동자들의 구체적인 연대, 즉 남쪽 노동자들이 개성공단 노동자들의 무권리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북쪽 노동자들의 무권리 상태를 개선하는 투쟁을 벌임으로서 남한 노동자계급은 주도성을 강화하고 통일문제에 대한 명확한 태도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는 노동자들의 의식을 상승시켜 사회주의 쟁취투쟁을 보다 강화할 것입니다.

사회주의는 현실에 정직하게 반응하는 것입니다. 있는 사실을 없는 것처럼 여기는 것처럼 비겁한 것은 없습니다.

부산유세를 마치고

기호 1번 가슴이 따뜻한 사회주의자 김광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