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와 차별을 넘어>②'고단한 삶' 외국인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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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노동자는 직업선택의 자유 없어"

(서울=연합뉴스) 구정모 기자 = 코리안 드림을 좇아 한국에 온 미얀마 출신 외국인노동자 아웅 멍(가명.28)씨. 하지만 한국에 온 지 채 1년이 못돼 돈을 벌기는 커녕 몸은 병들고, 병 때문에 직장을 쉰 게 빌미가 돼 불법체류자로 전락하게 됐다.

고용허가제로 2009년 10월 입국한 그의 첫 직장은 경기도 김포시의 한 가구공장. 그는 이곳에서 목재를 프레스 기계에 올렸다 내리는 작업을 담당했다.

하지만 작년 1월 출입국관리사무소의 단속으로 함께 일했던 태국 출신 미등록(불법) 외국인노동자 2명이 연행된 뒤 공장 업무량이 엄청나게 늘어나면서 2월부터 몸에 무리가 왔고, 목과 팔이 견딜 수 없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목의 인대가 손상돼 2주 쉬라는 의사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흘만에 직장에 나갔으나 사장은 "아프면 쉬어라. 일 못하면 돈도 못 준다"며 그를 내쫓았다.

인간 기계 취급하는 사장의 횡포에 못이겨 다른 직장을 찾고자 했지만, 외국인노동자는 사업장을 함부로 변경할 수 없다는 법규에 막혀 일자리를 얻을 수 없었다.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 해당 사업장에서 계속 근무하기 부적합한 상해가 아닌, 경미한 부상으로는 맘대로 직장을 옮길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가구공장 사장을 찾아가 사죄하고 일을 시작했지만 얼마 안돼 5월에 다시 탈이 났다. 이번에는 전립선에 염증성 질환이 생겨 잘 걷지도 못할 지경이 됐다. 허리를 많이 쓰는 작업을 하고, 음식이 입에 안 맞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런 질환이 생길 수 있다는 게 의사의 설명이었다.

몇 주 요양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소견서를 보여주고 쉬겠다고 하니 사장은 "일 못하면 나가라"고 화를 냈다.

며칠 쉬는 사이에 사장은 그를 '사업장 이탈'로 신고했고, 그는 외국인노동자 지원단체의 도움을 받아 사장에 이탈 신고 취하를 요구했으나 시간만 허비했다.

사장이 말로는 이탈 신고를 취하해 주겠다고 했지만 차일피일 미뤄 사업장 변경 신청 기한을 넘기는 바람에 그는 한국에 온 지 8개월 만에 불법 체류자 신세가 됐다.

그를 곁에서 도와줬던 같은 나라 출신의 이주노동자 활동가인 아웅틴툰 MWTV(이주민방송) 대표는 "아웅 멍씨와 같은 사례는 외국인노동자 한둘이 겪는 사건이 아니다"며 "고용주가 잘못 처리했지만, 노동자가 처벌을 받게 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 고용허가제에서도 외국인노동자 차별은 여전

'현대판 노예제도'라고 비판받았던 산업기술연수제를 대신해 2004년 8월부터 고용허가제가 시행됨에 따라 송출 비리 등 일부 문제가 개선됐지만 외국인노동자들이 받는 차별 대우는 여전하다고 이주노동자 지원단체들은 목소리를 높인다.

지난해 말 현재 고용허가제로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노동자는 모두 19만1천여명. 이 가운데 16만6천여명이 제조업에 종사하며 소위 '3D' 중소기업의 부족한 일손을 메우고 있다.

이들은 대개 영세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어 최저임금을 간신히 받고 있지만 경제 위기로 이마저도 제대로 못 받는 이들이 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한나라당 차명진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외국인노동자의 임금 체불액이 2007년 62억8천만원에서 2009년 236억8천500만원으로 2년 새 4배 정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임금을 받지 못한 외국인노동자도 같은 기간 2천249명에서 9천452명으로 4배 이상 급증했다.

게다가 대부분 사업주가 외국인노동자에게 기숙사와 식사를 제공하는 현실을 감안해 최저임금에서 숙식비를 공제해야 한다는 중소기업계의 입장이 관철돼 2009년 관계 법령이 개정됨에 따라 '컨테이너 박스'나 다름없는 기숙사에 사는 외국인노동자는 최저임금의 20% 가량 덜 받게 됐다.

외국인노동자의 건강권도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다. 이들은 '더럽고, 어렵고, 위험한' 일을 맡고 있는데다가 제대로 된 안전교육을 받지 못해 일하다 다치는 경우도 늘고 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산업재해를 당한 외국인노동자가 2007년 3천967명, 2008년 5천221명, 2009년 5천231명으로 꾸준히 느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외국인노동자들에 대한 산재 인정 판정이 보수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산재를 당한 이들은 이보다 많을 것이라고 이주노동자 지원단체들은 주장한다.

외국인노동자 10명 중 4명은 산재 경험이 있다는 조사결과가 잇따라 나와 이 같은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사업장 이동제한'이 외국인노동자 차별의 핵심

외국인노동자와 이들을 지원하는 시민단체들은 고용허가제의 사업장 이동제한 규정을 '만악의 근원'으로 꼽는다.

고용허가제는 외국인노동자의 사업장 이동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 근로조건이 계약조건과 다르거나 근로조건 위반 등 사용자의 부당한 처우로 근로계약을 유지하기 어려운 경우 ▲ 상해 등으로 외국인노동자가 계속 일하기 부적합하나 다른 사업장에서는 일할 수 있는 경우 등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하고 있다. 내국인의 일자리를 보호하고 외국인노동자의 과도한 임금 상승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사업장을 자유롭게 옮길 수 없는 외국인노동자는 결국 고용주에 종속되고 저임금과 열악한 근무환경을 감내해야 할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다.

사업장 변경사유가 발생하더라도 사업주 동의가 없으면 외국인노동자가 실질적으로 근무지를 옮길 수 없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사업장 변경 처리절차상 사업주가 고용변동신고서를 제출한 뒤 외국인노동자가 사업장 변경을 신청하게 돼 있어 사업주가 고용변동신고서를 써주지 않으면 외국인노동자는 어쩔 도리가 없다.

한국이주인권센터 김기돈 정책국장은 "외국인노동자들은 몸이 아프거나 회사에서 폭행당하는 등 긴박한 상황이 생겨도 사업주 동의 없이 사업장을 옮길 수 없다"며 "이는 내국인과 비교했을 때 명백한 차별이고 외국인노동자가 인권침해 상황을 피할 수 없게 한다"고 지적했다.

사업주가 동의하더라도 일할 곳을 구하지 못하면 체류자격이 취소되는 것도 문제다. 관계 법령에서는 사업장 변경을 신청한 후 3개월 내 다른 일자리를 구하도록 했다.

하지만 외국인노동자는 한번 비자를 발급받은 업종에서만 일할 수 있어 구제역이 발생해 일감이 떨어진 축산농가에 종사하거나 노동 수요가 적은 냉장업, 재활용업에서 일하는 이들 가운데 대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불법체류를 택하거나 고된 노동을 감수하는 길밖에 없다.

의정부 외국인력지원센터 관계자는 "최근 냉동창고에서 일하는 우즈베키스탄 출신 외국인노동자 십여명이 하는 일이 너무 힘들고 사장이 툭하면 욕하고 때려 다른 곳에서 일하고 싶다고 찾아왔다"며 "하지만 냉동업에서 다른 사업장을 찾기 어려워 이들은 결국 미등록 신세가 될 수밖에 없으니 안타깝다"고 전했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사업장 변경 횟수를 3회로 제한한 것도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지적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이주노동자 변호인단은 "사업장 변경 횟수 제한은 헌법이 보장하는 직업 선택의 자유 등을 침해한 것"이라며 2007년 9월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는 "외국인노동자만 사업장 변경 횟수를 제한하는 것은 평등권뿐만 아니라 근로의 권리와 직업선택의 자유도 침해한다"고 비판했다.

pseudoj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