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17 빈곤철폐의 날 여성행진에 참가하며]  


이희영 (민성노련 위원장)


안녕하세요. 민주성노동자연대(민성노련) 위원장 이희영입니다. 지난 7.3
여성행진에 이어 유엔이 정한 세계빈곤철폐의 날인 오늘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행진’ 마무리 행사에 참여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 성노동자들은 사회적 빈곤의 소산

아시다시피 저희 성노동자들은 사회적 빈곤의 소산입니다. 우리사회에서
성노동을 두고 여러 가지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빈곤’이 우리를
이곳까지 오게한 데에는 다수가 동의하리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비정규직
여성등 이 땅과 세계의 민중들이 억압과 차별로부터 해방되는데 이의가
없다면 ‘빈곤’을 타파하기위해 나름대로 애쓰고 있는 ‘자발적
성노동자’는 당연히 이 범주에 포함되어야 할 것입니다.

저희 민성노련은 지난 9월 6일, 제도권에서는 ‘법외노조’라고 말하지만
저희들에게는 소중한 투쟁의 결과물인 노동조합을 결성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우리 성노동자들의 조직을 두고 ‘성매매여성’들이 무슨 노조를
만드냐고 비웃기도 합니다마는 이는 저희들의 속사정을 전혀 모르고 하는
발언으로 이해합니다.

우리 성노동자들은 여성권력자들이 말하는 소위 ‘성매매 피해여성’이란
용어를 거부합니다. 이 용어는 성노동의 현장에서 우리들이 주체가 되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힘들어도 스스로의
노력으로 자신이 처한 경제적 환경을 극복하려 합니다. 그러나
‘피해여성’이라는 말은 마치 가여운 존재에게 서푼어치 동냥을
해주려는 냄새가 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여성권력자들이 현
정권하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성과로 과대포장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이런 대중 선동주의는 싫습니다.

- 베이징 행동강령(1995) 상기하자

여러분들께 강조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성노동자란 말은 ‘자발적으로
성적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성과 관련한
범죄적 ‘인신매매’(sex-trafficking)가 아니라, 우리들의 필요에 의해
일하는 ‘성거래’(sex-trade)와 노동(working)이 합쳐진 개념입니다.
따라서 전자에는 당연히 정부의 법적인 도움이 필요하지만, 후자에는
하등 법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지난 1995년 '베이징
행동강령'에서 양자가 일정부분 양해했던 사실을 상기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 성노동자들은 노동계 일각에서 ‘노동’의 개념을 두고 굳이
구분하려고 하는지 의아해하고 있습니다. ‘성노동’은 비천하고
‘노동’은 신성하다는 견해는 성노동자들로 하여금 많은 혼란을
가져오게 합니다. 이는 마치 성노동자는 악녀고 일반 여성들은 성녀인양
단순화하는 세간의 논리와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이런
발상이 가혹한 자본주의에서 모든 문제를 개인에게 돌리려는 의도에
결과적으로 협조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만약 ‘성노동자’란 용어보다
‘성판매자’란 용어를 고집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판매자’도 엄연한
서비스업 노동자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민중 여성들의 고달픈 성산업과 고급화된 미디어 성산업은 차이 있다

성노동자들은 자본주의를 주름잡고 있는 ‘성의 상품화’에서 굳이
우리들이 특별하게 차별받는 것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합니다. 성적인
행위를 연상시키는 연예인들의 섹시 덴싱과 거의 포르노 등급
영화배우들의 베드씬을 보자면 저희를 공격하는 사람들의 관심은 오직
‘삽입 섹스’에 집중하는 게 아닌가 고민하게 합니다. 다수 민중
여성들의 고달픈 성산업과 고급화된 미디어 성산업을 나누는 것은 자본의
크기에 따른 차별로 문제가 있다는 것이 우리들의 생각입니다. 우리는
여러분들이 정직한 ‘삽입 섹스’보다 복잡한 ‘성 비즈니스’에 좀 더
관심과 혐의를 두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지긋지긋한 빈곤의 대물림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저희는
지연, 혈연, 학연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저희가 끌어안고 있는 가족들과
함께 생존해야 하고 삶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따라서 현재 우리 자발적
성노동자들의 선택은 현 상황에서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입니다.
여성권력자들은 말합니다. ‘자활’하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미 우리는
여기서 ‘자활’하고 있습니다. 삶이 어떻게 단절될 수 있겠습니까.
성노동자들은 현재의 삶과 내일의 삶이 별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성권력자들은 우리들을 특별히 대우해주려고 애씁니다. 그것이
진정성이 있건 정치적 음모이건 어쨌든 외면상으로는 그렇습니다. 문제는
우리들이 그런 시혜를 바라지 않으며 이 무서운 학벌카스트 사회에서
특별한 방식으로 소득을 올리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정성이 있다면 월 40만원의 긴급생계비를
인신매매를 당한 여성 및 노숙자들과 같이 더욱 어려운 이웃들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게 도리입니다. 이를 도외시하고 성노동자들을 계속
성매매 특별법으로 토끼몰이 한다면 아이러니하게도 자발적 성노동자들의
자활 프로그램을 오히려 지연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 여성가족부는  시대착오적인 기관

그리고 만약 저희들에게 여성이라는 이유로 도움을 강제한다면, 이 땅의
빈곤한 삶을 살고 있는 다수 민중들을 모욕하는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는 여성가족부의 원래 명칭이 ‘성 평등부’ 였듯이 어떤 이유로도
‘양성 평등의 원칙’을 위배하는 것은 법 집행의 형평상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덧붙이자면 저희들은 여성부에서 여성가족부로 명칭이 바뀐
것에 대해서도 불만이 있습니다. 독신가정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공존하는 현실에서 가부장제적 전통적인 의미의 가족을 강조한다는 건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성매매 금지주의는 스웨덴 모델에서 비롯된 것을 다 아실겁니다.
그러나 최근 연구차 스웨덴을 다녀오신 박선영 박사(여성개발연구원)에
의하면 사회보장제도의 천국인 스웨덴에서조차 성매매 금지주의 정책은
성공적이지 않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즉 스웨덴은 외면상 성매매
감소와는 달리 이들이 실내 성매매로 들어갔을 거라는 이야기와 또
하나는 성구매자가 처벌되니까 성매매 여성들의 음성적 거래로 폭력의
위험에 노출된다는 지적입니다. 또한 성구매자들의 계급화로 돈있는
사람들은 인근 외국으로 이동해 별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최근 여성권력자들이 스웨덴을 말하지 않고 미국을
얘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여성부가 스스로
인정받고 있다는 ‘폴라리스 프로젝트’는 미국 부시행정부의 성매매
반대서약 정책에 협력하는 반관반민 단체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칭찬은
부시의 대리인으로서 한국의 성매매 금지주의 정책 채택을 제3세계에
홍보하기 위한 방편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 한국은 브라질의 룰라 정권에게서 배워라

브라질의 룰라 정권이 왜 부시의 성매매 반대서약을 거부한 것일까요.
서약만 하면 에이즈퇴치기금으로 거액인 4천8백만 달러를 준다는 부시의
유혹을 뿌리치고, 기독교적 순결 이데올로기 대신 ‘콘돔’을 선택한
것은 막연한 윤리적 관점보다 현실적인 대책이 주효하다고 본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에이즈 퇴치를 위해 전 세계에 무료로 콘돔을 배포하고 있는
세계보건기구의 입장과도 일치합니다.

혹자는 저희 성노동자들의 노동행태에 대해 의문을 표시합니다.
이해합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저희들의 성적서비스
행태에서 일단 대가를 배제하고 봅시다. 그렇다면 성적 행태로 보면
우리는 엄밀하게 ‘성적 소수자’입니다. 동성애자 등 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진보진영의 추세라면 저희들 또한 포함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럼 물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성담론은 무엇이냐고 말입니다.


이에 대한 답변으로 저희들의 동료이기도 한 인도 성노동자들의 1997년도
선언문을 인용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주장하고 원하는 것은 독립적이고, 민주적이고, 폭력적이지
않고, 상호 쾌락적이고 안전한 성이다. 섹슈얼리티에 대한 자유 또한
책임과 타인의 욕구와 욕망에 대한 배려와 함께 추구되어야 한다. 우리는
음란함과 상스러움으로부터 자유로운 성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건강하고
성숙한 태도 및 행동을 모색하고 만들어 갈 자유를 원한다.”  

- 민주노동당 여성위가 좀더 민중적인 사고를 해주길

잘은 모르지만 정당에 대해 약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진보적
정당이라는 민주노동당이 왜 성노동자들에 관해서는 유독 인색한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특히 최근 민노당 여성위원회가 성특법 철저 시행을
요구한 것에 대해 매우 섭섭한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간 성노동자들의
힘겨운 투쟁의 결과 언론과 진보진영의 한 축에서 성매매 정책에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등 고무적인 움직임이 일어났고, 정치계 또한
긴장하며 성특법 1년 입장표명을 유보하고 있는데 왜 여성위원회가
우리들과 맞서는지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저희는 여성위가 좀더 민중적인
사고를 해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저희 성노동자들
다수는 지난 국회의원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우리같이 어려운 이들의
입장을 대변해줄 것으로 믿고 민노당에 표를 던진 바 있습니다.

최근 흥미로운 일이 있었습니다. 저희 민성노련이 노조를 결성하자마자,
성매매 특별법 제정을 주도한 조배숙 의원등 몇몇 여성 국회의원들이
‘인정’할 수 없다고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사실 저희들은 너무
반가웠습니다. 그동안 성노동자들의 대화요구에 일체 응하지 않던
여성권력자들이 저희 노조 일로 일부로 기자회견까지 자청할 정도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물론 저희들은 며칠 후에 우리 노조를 ‘인정’하고
안하고는 성노동자들 자신의 ‘권리문제’라며 월권하지 말라고 즉각
반박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직접 만나기 힘들다면 이런 방식으로라도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성매매 특별법은 음성적 성매매 권장 특별법이다

저희 민성노련은 내부 논의를 통해 성매매 금지주의에 대한 대안을
모색했습니다. 그 결과 유럽의 비범죄주의와 합법적 규제주의의 장점을
결합한 비범죄적 규제주의’ 정도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전국을
성매매 자유지역화 하고 있는 현 성매매 특별법은 기실 ‘음성적 성매매
권장 특별법’에 불과합니다. 이런 음성적 성매매의 비대화 현상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대안적 축소론’으로 성인남녀들
모두 비범죄화가 적용된 상태에서 ‘일정 지역내’에서 성거래(성노동)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중산층의
고급화된 성매매 접대방식은 지양하고 자신의 여건에서 도저히 성을
해결할 수 없는 서민들의 편안한 제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노동자들은 국경이 없습니다. 국가간 빈부의 차이에 따라 노동자들이
이동하며 ‘이주노동자’가 되듯이, 성노동자들 또한 무자비한 성매매
특별법을 피해 해외로 음성적 성매매 분야로 자리를 옮기고 있습니다.
이런 행태는 여성권력자들이 아무리 성매매가 줄었다고 집창촌 데이터를
내놓고 홍보하는 것으로 눈감고 아웅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전
지구적 신자유주의의 범람에 여성계가 침묵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거액이 드는 명분없는 이라크 파병과 사회복지제도의 미비점을
말하지 않고  성노동자들만 핀셋으로 달랑 집어내 구출하겠다는 발상은
10: 90으로 빈부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 우리네 경제현실과 여성의
비정규직 비율이 70%에 이른다는 사실을 보더라도 있을 수 없는
전시행정입니다.  

- 성특법으로 인한 국력 소모 더 이상 되풀이해선 안돼

우리 성노동자들은 요구합니다. 여성권력자들은 성 인신매매와 자발적
성노동을 분명하게 구분하여 정책을 집행하십시오. 그리고, 한국 실정에
맞는 성거래 정책을 깊이 연구하며 사회적 공론화로 나아갑시다. 성매매
특별법은 아무런 존재가치가 없으므로 폐기되어야 마땅합니다. 지난
1년여 동안 성특법으로 인한 국력의 소모는 더 이상 되풀이할 수
없습니다.

여성인 ‘베르그먼’ 독일 가정장관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거래는)
“오랜 세월이 증명한 것과 같이 법적 처벌은 불가능합니다. 여러분
솔직해집시다.”

우리 민성노련 성노동자들은 세계여성행진 헌장이 이제 지구를 한바퀴 다
돌고, 유엔이 정한 세계빈곤철폐의 날에 동참하게 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저희들은 빈민운동으로 그리고 사회변혁운동으로 지금
여러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다같이 빈곤철폐의 그날까지 단결해
나아갑시다. 감사합니다.

2005. 10. 17


민주성노동자연대(민성노련)
http://cafe.daum.net/gksdud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