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성명 봇물.. 이주노조 점거농성도 9일째

국가보안법 폐지 권고, 비정규법안 관련 의견표명 등 전향적인 판결들을 내려왔던 국가인권위원회가 이주노동자 단속에 대한 최근의 결정과 관련해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국가인권위는 지난달 14일, 출입국관리소의 아느와르 이주노조 위원장 연행과 관련해 "신체의 자유 침해" "재량권 남용" 등에도 불구하고 '불법체류자가 명백하므로, 48시간이 경과한 후에 재발급한 보호명령서는 적법하다'는 취지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현행 출입국관리법 제51조 ④항은 "긴급을 요하여 사무소장·출장소장 또는 외국인보호소장으로부터 보호명령서를 발부받을 여유가 없는 때"라도 "48시간 이내에 보호명령서를 발부받아 그 외국인에게 이를 내보여야 하며, 이를 발부받지 못한 때에는 즉시 보호를 해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불법체류자 구금은 헌법원리와 별개?

인권위는 결정문에서 "신체의 구금을 위한 적법절차의 이념은 행정기관의 개인에 대한 신체구금의 권한을 제약하는 가장 중요한 헌법원리"로서 "(외국인 용의자의 보호조치에 있어서)현행 법규에 따른 보호명령서 발급절차는 엄격히 준수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인권위는 "(본 사건이)헌법 제12조가 규정하고 있는 적법절차를 위반한 것이고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 것은 명백하다 할 것"이라면서도 △해당 출입국관리사무소장이 단속 사실을 알고 있었던 점 △진정인이 불법체류자가 명백한 점 △비록 48시간이 경과하였지만 적법(?)하게 다시 보호명령서를 발급한 점을 들어 "재발급한 보호명령서까지 (무효사유가)승계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즉 인권위의 판단은 '출입국관리법을 어기긴 했으나, 불법체류자가 명백하므로 아느와르 위원장에 대한 구금은 무효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다만 인권위는 "○○출입국관리사무소장에게 진정인이 제기한 소송이 종료될 때 까지 진정인에 대한 강제퇴거 집행을 정지할 것을 권고"했다.

이러한 인권위의 판단에 대해, 샤킬 이주노조 위원장 직무대행은 "한국인이라면 절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건 인권위도 알고 있을 것"이라며 "이 결정이야 말로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 중의 차별"이라고 지적했다.

형사소송법은 긴급체포된 피의자에 대해, 48시간 이내에 구속영장을 발부받지 못하면 즉시 석방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법치주의 및 '기본권에 대한 법률제한의 원칙' 과 직결된다.


때문에 민변은 이달 5일 성명서를 통해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단속 및 보호는 사실상 체포와 구금에 준하는 것으로서 신체의 자유를 구속하는 절차이기 때문에 단속과정에서 헌법 제12조에서 정하고 있는 적법절차의 원칙과 법률 우위의 원칙이 지켜져야 함은 행정에서의 법치주의 이념상 달리 이견이 있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어수선한 국가인권위원회

또한 민변은 인권위의 판단에 대해 "출입국관리공무원들에 의해 자행되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적법절차 위반의 불법단속 및 보호 관행에 대해 오히려 합법성을 인정하여 면죄부를 부여한 것"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민주노동당도  "이번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은 인권은 불가침 영역이라는 기본 명제를 스스로 포기한 셈"이라며 "인간존엄과 가치, 결코 침해될 수 없는 모든 개인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해야 하는 본분에 충실(하라)"고 비판했다.

노동사회단체들의 비난 성명이 잇따르는 가운데,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하 이주노조)도 벌써 9일째 국가인권위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주노조는 조영황 인권위원장과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인권위의 뚜렷한 답변이 없는 상태.

샤킬 직무대행은 "인권위의 결정대로라면 아느와르 위원장은 행정소송까지 2-3년을 갇혀있어야 한다"면서 "점거를 하기 전, 인권위 앞에서 일인시위 집회 기자회견을 많이도 했지만 인권위에서 단 한명도 내려와서 '왜 그러느냐' 묻지 않더라"고 전했다.  

문형구 기자(mun@promethe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