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조선족사회




김경일 ( 중국 북경대학 조선문화연구소 부소장)

불과 10여년 전에만 해도 한국은 중국 조선족에게 있어서 마치 다른 행성의 세상과도 같은 나라였다. 그러던 한국이 중한관계가 물꼬를 트면서 하루아침에 중국 조선족앞에 다가왔었다. 조선족이 처음 만난 일부 한국인 가운데는 만주 땅을 다 사겠다고 호언장담하는 이도 있었다. 한국은 거리바닥에 달러가 깔려 있는 나라처럼 비춰졌다.

중국 조선족의 가치관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코리안드림”행렬이 줄을 잇기 시작했다. 한국인들이 한국에서 처음 본 중국 조선족은 서울 덕수궁 앞과 시청 지하철역에서 약을 파는 모습이였을것이다. 중한 수교를 계기로 한국인들이 물밀 듯 중국으로 진출하였다. 그 물살은 조선족사회에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한국인과 조선족의 만남은 앞으로의 남과북의 만남의 시험장이라고 할수 있을것이다. 한국이 어떤 정책을 펴느냐가 사뭇 중요한 시점이였다. 그때로부터 십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과연 한국과의 교류에서 중국 조선족이 얻은것은 무엇이고 잃은것은 무엇인가?

필자는 9년전 [중국조선족문화론]이라는 저서에서 코리안드림이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는것을 강조한 적이 있다. 긍정적인 면에서 볼때 총 200만명에서 몇십만의 조선족이 다른 민족은 상상도 할수 없는 해외연수를 하게 되여 한국이라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현대화와 동질문화의 융합을 접하면서 높은 차원에서 무언가를 배울수 있으리라는 기대였다.

그렇지만 우려하는것은 역시 부정적인 측면이였다. 그것은 조선족사회에 대한 코리안드림의 충격이 갓 시장경제의 대해로 출항한 조선족사회라는 배를 산산이 부숴 버릴 가능성과 한국에서도 외면하는 찌꺼기문화나 퇴폐문화가 독버섯처럼 중국 조선족문화를 잠식해버릴수 있다는 우려였다. 9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이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면에서 도대체 어느 쪽이 더 영향을 미쳤는가 물으면 대답은 당연히 후자라고 생각한다.

현대화와 동질문화가 융합된 한국을 접하면서 의례 자기를 새로운 차원에로 보다 높이 끌어 올려야 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오히려 선인들이 이민 140여 년의 력사에서 피와 땀으로 일군 삶의 터전이 해체되는 결과를 초래하며 설자리를 잃어가고있는것이다. 이민 140년의 역사를 뿌리채 흔들고 있는 이 새로운 대이동은 조선족사회 자체의 존속에 위기를 안겨주었다. 한국에 가서는 주로 한국인들이 꺼리는 3D업종에서, 중국내 도시에 들어가서는 주로 식당이 아니면 유흥업소에서 일하고 있다. 이러한 대이동이 물론 중국의 개혁개방에 따른 변화의 일면도 있지만 동시에 한국이라는 모국이 환상적으로 다가오면서 겪게 된 이중의 소용돌이의 결과였다. 따라서 그 변화는 중국내 어느 민족보다 급격하게 이루어졌고 그 속에서 조선족이 겪고있는 진통 역시 어느 누구보다 심각하다고 할수 있을것이다.

사실상 조선족은 중국에서 교육, 문화 수준이 가장 높은 민족으로 긍지를 지켜왔다. 또한 이민 140여년 이민역사에서 중국 동북부 개척, 항일전쟁, 해방전쟁 등을 겪으며 여느 민족보다도 많은 희생을 치르며 중국발전에 기여해 왔다. 이러한 역사를 통해 중국 조선족은 고유의 전통과 풍습을 지켜가면서도 주권국가의 당당한 공민으로서 자리 잡을수 있었고 또한 한국 등 어느 동포사회와도 대등한 위치에 있는 사회문화 집단으로 성장해 왔다.

그렇지만 한국인과 조선족의 만남은 결코 평등한 만남이 아니였다. 비록 한국이 경제적으로 발전했고 문화적으로 우위에 있으며 그 민족공동체가 하나의 국가로 구현돼 있다는것이 주원인일수 있음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양자간 관계설정은 시작부터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음을 부인할수 없다. 그것은 마치 중국조선족이 양자관계에서 종속적인 지위에 있는 듯한, 또한 그래야 하는것 같은 착각을 가져오게 하였다. 마치 조선족의 희망과 번영은 한국을 떠나서는 이룰수 없는듯한 착각을 주었는가 하면 실제 적지 않은 한국인들이 이것을 설교하여 왔다. 지난 시기 자기의 피와 땀으로 고유문화를 보존, 발전시켜 나가며 삶을 영위해 왔던 조선족 앞에 느닷없이 “구세주”가 나타나 조선족사회의 기반을 버텨주던 가치관을 뒤흔들어놓았던것이다.

그리하여 십년이 흘렀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햇듯이 중국조선족 사회에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집을 팔아 한국으로, 땅을 버리고 중국 내 대도시로 들어가서는 한국과 중국의 주류사회에 편입되지 못한 채 산산이 흩어지고 있다. 급격한 이농현상으로 조선족의 전통적 문화기반이었던 농촌은 황폐해졌다. 이젠 농촌에서 젊은 여성들의 웃음소리를 들을수 없다. 인구가 격감함에 따라 농촌 조선족 집거 지구가 소실되고 조선족 학교는 하루건너 하나 둘 사라지고 있다.

사회가 산업화되면서 도시에로의 인구이동이 불가피한 면 없지 않지만 ㅎ나국인의 중국진출에 따른 조선족의 도시진출은 준비없는 급격한 진출이였다. 그 처음 시작은 한국인을 위한 진출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준비 안된 조선족의 도시진출은 결과적으로 음식업과 유흥업소에 주로 종사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유흥업소의 주된 상대가 한국이라는 것은 주지하는 바이다. 궁극적으로 조선족은 지난날의 긍지와 자존을 잃어가면서 “굴종형 문화”를 만들고 있는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조선족사회의 해체와 중국에서의 지위약화를 초래하는가 하면 중국 주류사회와의 유리라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교육과 문화수준이 전국 56개 민족가운데 으뜸이라고 자랑하던 것도 이젠 지난날의 이야기가 되어가고있다.

오래전부터 중국 조선족 지성인들은 이러한 급격한 사회변동에 깊은 우려를 자아냈다. 그들이 우려했던것 중 가장 큰 우려는 지난 시기 지켜왔던 긍지심과 자존심이 흔들리고 있다는것, 따라서 새삼스럽게 자기는 누구이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고 있는것이다.

혹자는 중국 조선족의 이러한 상황을 “변두리민족”, “월경민족”이 지니고 있는 필연적 한계로 이야기하지만 오늘의 이러한 상황이 초래된 데는 한국의 잘못된 정책이 한 몫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

한국은 중국 사정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 조선족을 만났다. 중한수교가 이루어진 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방중 기간 중 중국조선족 지도급 인사를 대거 연회에 초청하려다 성사시키지 못한 경험이 있다. 그후 어느 한 대통령후보는 중국지도자를 만난 자리에서 조선족문제를 거론하였다. 중국정부가 한국동포를 잘 돌보아 달라는 식이였다. 물론 동포인 조선족을 생각해주는 차원에서 그랬을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중국 조선족사회발전에 도움이 될것인가 대한 깊은 사려는 없었음이 분명하다.

한국에서 논란이 일었던 재외동포법 제정을 놓고 보아도 그렇다. 조선족을 포함시키느냐 안 시키느냐를 가지고 논쟁을 벌려 중국정부를 불쾌하게 했을뿐만 아니라 또한 그 혜택을 받아야 할 당사자인 조선족들은 그러한 논쟁을 자기와 무관한 다른 세상의 논쟁으로 바라봐야만 했다.

이러한 논쟁은 결국 한국과 조선족과의 관계설정이 잘못 된데서 기인한다. 문제는 그러한 법제정이 중국 조선족사회의 발전에 과연 얼마만큼의 도움이 되느냐 하는것이다. 이른바 “사실상의 이중국적”이라는것은 중국 법에 저촉되는것도 문제이지만 실제 그러한 상태가 이루어진다면 조선족은 한국인도 아니고 중국인도 아닌 정체불명의 존재가 되어 버릴 가능성이 있는것이다.

다시 말하면 물론 나라의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중국의 경우, 조선족에게 재외동포법이라는것을 만들어 적용할 경우 그것이 중국 법과 저촉되는것으 제쳐놓더라고 그 혜택을 받을 조선족은 극소수일 뿐인 반면 조선족사회는 코리안드림의 환상 속에서 정체성을 상실한 채 무너져 나가게 될 것이란 얘기다.

미국에서 9.11테러사건이 일어난후 한국 국회에서 어느 의원이 한 주장이 생각난다. “앞으로의 테러사건에 대비해 해외 500만 동포의 안전을 위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무얼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도무지 모를 주장이었다. 한국 국적을 가진 재외 한국인을 제외한 해외동포, 즉 남의 나라 국민을 보호해 주겠다니 마음은 고맙지만 그러한 자세가 해당국가법에 어긋날 경우, 해당국가의 내정간섭으로 비춰질 경우 결국은 보호가 되는것이 아니라 시끄러움만 안겨 주게 될것이다. 다른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고 한국이 해외 500만 동포를 모두 한국에 정착시킬 능력과 포용력을 가지고 있는것도 아니다. 한국은 한국으로서의 국내정치가 있다. 해외동포문제를 국내 정치에 끌어들이는 일은 없어야 할것이다. 바람직한 것은 역시 세계 각지에 널려 살고있는 한민족이 각자 살고있는 거주국에서 그 나라 국민으로서 그 나라에 충실하고 그 나라에서의 확고한 지위를 확립하면서, 또한 그 나라와 한국과의 관계에 다리를 놓으면서 문화민족으로서 존경을 받으며 긍지를 느끼게 하는것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중국 조선족은 중국공민이고 중국에서 람을 영위해야 하는 사회문화집단이다. 조선족의 번영은 결국 중국의 번영과 동떨어질수 없으며 그 운명도 역시 중국의 운명과 같이 할수밖에 없는것이다. 한국이 진정 중국 조선족을 생각한다면 그것을 개개인이 아닌 사회문화집단으로서의 앞날을 생각해야 할것이다. 또한 중국 조선족이 중국에서 높은 차원의 문화를 가진 사회문화집단으로 발 돋음할수 있게 대등한 차원의 사회문화집단으로 대해야 할것이다.

물론 한국과 조선족의 만남에서 불신과 실망이 있을수 있지만 개개인의 불신과 실망 그 자체에는 상호간에 다 문제가 있을수 있는것이며 그 원인을 다른 한 의미에서의 문화충돌로 생각할수 있는것이다. 요는 상호간의 불신과 실망은 상호접촉가운데서 상호 이해를 하며 해결을 볼수 있을것이다. 그렇지만 전체적이며 장기적인 시각에서 볼때 하나의 사회문화집단의 해체는 되돌이킬수 없을 것이다.

잃은것만 이야기한다하여 얻은 것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중국조선족사회의 발전이라는것을 좌표로 설정할 때 잃은것이 얻은것보다 크고 또한 얻은것으로 잃은것을 되찾지는 못한다는점을 강조하기 위해 문제점들을 지적했다. 따라서 이제는 조선족 사회의 고유하고도 아름다운 전통과 역사를 계속 유지 발전시켜 가면서 변화를 수용하고 발전을 모색하는 지혜를 모을 때이다. 지금이야말로 눈앞의 소용돌이에 부하뇌동할 일이 아니라 보다 큰 시각으로 조선족사회의 청사진을 그려볼 때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