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의 운명을 걸다시피 한 듯 보이는 G20 서울 정상회의가 한 달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여기저기에서 쏟아지는 G20에 대한 온갖 광고 홍보 문구들 속에서 우리는 과연 G20이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이유만으로 환영해야 할 묻지마 국제행사인지를 묻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 G20 정상회의가 이루어 놓은 성적표과 합의사항을 더듬어 보는 것부터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
1999년 탄생한 G20 재무장관ㆍ중앙은행 총재 회의가 1990년대말 신흥공업국의 금융위기가 선진국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회의였다면 2008년 11월 G20 정상회의는 선진국의 경제위기가 더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회의였다. 그러나 참가국이 늘고 몸집만 커졌을 뿐 G20은 위기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는 별볼일 없는 회의체에 불과하다.
나는 G20의 성적표를 세 가지 측면에서 주되게 조명해 보고자 한다.


1. 말로만 금융규제 그리고 투기꾼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G20


G20 정상회의가 거듭되는 동안 금융규제안들은 말만 무성했고 사실상 규제라고 할 수도 없는 내용으로 후퇴하거나 심지어는 그마저도 폐기됐다. 2008년 11월 15일 워싱턴 정상회의와 2009년 4월 런던 정상회의는 금융기관의 위험자산 규모를 규제·감독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고 각종 규제를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자기자본비율 규제 같은 규제안들은 계속 후퇴하고 있다.
G20은 경제 위기를 촉발한 파생상품에 대해서도 말만 무성할 뿐 이렇다 할 규제안을 도입하지 않았다. 은행권 고위직 보너스 규제도 실질적인 성과가 없다.
G20의 대표적인 금융규제책으로 급부상했던 은행세를 G20 정상회의에서 다시 언급하지 않기로 합의한 것은 G20이 말하는 금융규제가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를 보여 주는 대표적 사례다. 은행세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은행 구제에 들어간 세금을 회수하고, 앞으로 금융위기가 발생할 경우 필요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은행에 부과하는 세금이다. 은행에 갈 돈을 은행한테서 미리 걷자는 것인데도 금융기관들은 뻔뻔스럽게도 이에 대해서도 강력 저항했다. G20은 이런 자들에게 사실상 면죄부를 준 셈이다.
G20의 금융규제안들을 미리 논의하고 전 세계 금융에 대한 규제와 감독 전반을 관장하는 금융안정화위원회가 발표한 장외파생상품시장과 신용평가기관에 대한 규제에 관한 권고안은 자발적이거나 자율규제적인 계획을 승인해 주고 있다.( Eric Helleiner, 2009, Regulation and Fragmentation in International Financial Governance", GlobalGovernance[국역 : ≪누가 금융세계화를 만들었나≫, 후마니타스, pp.264-265)
한마디로 G20의 금융규제는 소리만 요란한 빈수레 규제였고 이제는 그 빈수레조차 개골창에 처박혔으며 G20의 금융규제는 투기꾼들을 정당화시키는 솜방망이 규제를 뭐라도 되는 양 허공에 휘두르고 있는 셈이다.
높은 대출금리로 서민의 허리를 휘게 하고 각종 헤지펀드 투기를 허용하는 자본시장통합법을 전면 시행하는 이명박 정부의 금융규제 완화에 관해서는 언급할 가치도 없다.


2. 경제위기의 부담을 전가하는 G20 그리고 경제위기에 기름붓는 G20


G20이 경제위기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나름의 공을 세웠다는 G20 서울 정상회의 준비위원회의 주장은 어떤가.
2009년 G20 런던 정상회의는 “사상 최대의 경기부양책”을 결정했다. 그 주요 내용은 각국 정부가 2010년 말까지 총 5조 달러의 재정 지출을 통해 GDP 4퍼센트의 성장을 이루기 위해 공조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공조라기보다는 이미 각국이 경기부양책을 위해 쓰겠다고 계획한 액수를 다 더한 것일 뿐이다. 한편 경기부양책을 둘러싸고 각국이 이견과 충돌을 반복했다.
더욱이 경기부양은 노동자들의 임금ㆍ일자리ㆍ사회복지를 유지하거나 향상시키는 데에 맞춰져 있어야 하건만 G20의 경기부양은 노동자ㆍ민중을 부양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게 아니었다. 런던 정상회담 당시 신흥공업국으로 위기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1.1조 달러의 돈을 모으자는 결의가 있었지만 정작 각국 정부들이 내놓기로 한 돈은 그 액수의 고작 10분의 1도 되지 않았다. 제대로 돈이 모였다 해도 그 돈은 대부분이 가난한 나라에 구조조정을 강요하는 IMF의 재원으로 쓰일 계획이었다.
G20 주요 회원국들의 경기부양책의 성격도 부자들 부양에 맞춰 있었다. 예를 들어 2009년 3월 월스트리트 은행들은 그 전 해에 연방정부에게서 구제금융 2천4백30억 달러를 받아서 1백80억 달러를 연말 임직원 보너스로 지급하는 형국이었다. 미 재무장관 헨리 폴슨의 110쪽 짜리 구제금융 초안에는 일반 유권자가 관심을 갖고 있던 조항 - 대출금 체납으로 고통받고 있는 주택 소유자들의 주택 압류를 막을 수 있는 권한을 법원에 주는 조치-은 빠져 있었다.
각국 정부는 이렇게 ‘손실을 사회화’ 해 놓고 이제 와서는 이를 핑계로 긴축 재정을 주장하고 있다. 결국 G20 정상들은 캐나다 정상회의에서 2013년까지 재정 적자를 절반으로 줄이기로 합의했다. 이미 <파이낸셜 타임스>는 2010년 6월 초 부산 G20 재무장관회담 결과를 보도하면서 회의 기조가 ‘재정건전성’으로 확고히 맞춰졌다고 전했다. 캐나다 정상회의는 각국 정부가 추진할 재정건전성 강화 방향이 정부 재정을 줄이는 긴축 정책임을 분명히 했다. 또, 캐나다 정상회의는 재정 문제가 심각한 나라는 구조조정 속도를 높이라고 촉구했다.
캐나다의 저명한 반자본주의 활동가이자 ≪슈퍼 브랜드의 불편한 진실≫의 저자 나오미 클라인은 캐나다 정상회의의 합의가 낳을 효과를 이렇게 설명했다. “충격적일 정도의 긴축 규모를 보면 위기의 대가를 치를 사람이 누구인지 분명해진다. 학생들은 수업료를 더 많이 내야 하고, 연금은 더욱 줄어들 것이고,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일자리는 더욱 줄어들 것이다.”
게다가 재정건전성 강화 정책은 세계경제를 나락으로 떨어뜨릴 공산이 매우 크다. 재정 긴축은 대중 소비를 위축시키고 소비 위축은 경제 위기를 더 부채질할 것이다. 모순이게도 긴축을 강권하는 IMF는 그리스가 긴축 정책을 도입하면 앞으로 2년간 성장률이 7퍼센트나 줄어들 거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물론 긴축 정책 도입 시기를 둘러싸고 각국의 정부들 사이에는 상당한 갈등이 있을 것이고 또 있어 왔다. 그러나 그 방향에 대해서 만큼은 분명하고 G20은 그것을 확인해 주는 장이 된 셈이다.


3. 악덕 사채업자 IMF를 복권시킨 G20


G20이 가장 확실하게 이뤄 놓은 것이 뭐냐고 누가 나한테 묻는다면 나는 IMF 복권이라고 말할 것 같다.
G20은 힘 잃고 골골대던 IMF라는 악마를 부활시켰다. 2008년 11월 G20 워싱턴 정상회의는 G20 회원국이 IMF와 세계은행이 실시하는 금융부문평가프로그램FSAP, Financial Sector Assessment Program을 받아야 한다고 결정했다. 또, G20 정상들은 IMF와 금융안정위원회FSB에 금융규제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고 감독할 권한을 줬다. 다국적 금융회사 정리 절차에 대한 국제규범도 IMF가 만들기로 했다. 권위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IMF에게 명실상부한 금융 감독 권한을 쥐어 준 것이다.
IMF는 G20이 채워 준 세계경제 감독관이라는 완장을 차고 악명 높은 구제금융 채권자 노릇을 재개했다. IMF는 유럽연합의 가난한 동유럽 회원국들인 라트비아ㆍ헝가리ㆍ루마니아 등에 ‘구제금융’ 지원을 대가로 사회복지 삭감, 공무원 연금과 임금 삭감, 의료 등 공공서비스 민영화, 정리해고 요건 완화 같은 ‘노동 유연화’ 등을 강요했다. 충격적인 사례 중 하나가 라트비아다. IMF는 2009년에 마이너스 12퍼센트 성장을 할 것으로 전망되는 라트비아에 추가적 긴축을 요구했고 이행되지 않으면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압박했다. 그동안 IMF는 라트비아에 공공부문 노동자 임금을 45퍼센트 낮추고 실업률을 20퍼센트 이상으로 올릴 정책을 도입하라고 권고했다.
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는 “G20에서 합의된 경기부양액의 대부분이 IMF 자본확충에 쓰이는데 최근 몇 달 동안 IMF가 10여 개 국에 체결한 자금 지원은 경기부양이나 성장 촉진보다는 경기 회복에 나쁜 것들을 부과하고 있다. 의료사고를 낸 의사한테 돈을 더 줘서 병원을 확장하라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IMF는 단지 구제금융을 받은 나라들에만 긴축 재정을 요구하지 않는다. 올해 초 인천에서 열린 G20 재무차관회의에서 IMF는 정부부채 비율을 안정화시키려면 재정 수지 관리가 필요하다며 “고령화로 인해 지출 압력이 높아지고 있는 연금 및 의료분야 등 의무 지출 분야를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정부 빚이 더 늘어나지 않도록 공공지출을 줄이라는 것이다.

투기꾼들을 정당화시키고 경제 위기를 해결하지도 못하며 도리어 위기를 더 악화시킬 결과를 낳을 결정이라 하는 G20, 그리고 한국인들의 가슴 속에 아직도 멍에로 남아 있는 IMF에게 다시 완장을 채워 준 G20... 이 정도이면 우리가 G20에 항의할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