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리스트도 아닌데…" G20에 서러운 외국인노동자들



【서울=뉴시스】이인준 기자 = 라피씨(27)는 방글라데시에서 온 이주노동자다. 13명이나 되는 대가족을 고향에 남겨놓고 타국 생활을 시작한 지 올해로 10년 째다. 그는 비전문취업 비자(E-9)를 발급받아 한국에 왔으나 5년 전 비자가 만기되면서 미등록 이주노동자 신세가 됐다.

10년 동안 고향에 간 것은 단 한 번뿐이었다. 2003년 라피씨는 고향에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러나 장례식에만 참석하고 돌아오는 게 고작이었다.

라피씨는 올 추석을 집에서만 보냈다. 근래들어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이 부쩍 심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요즘에는 아무 이유도 없이 이주노동자로 보이기만 하면 다 단속하는 것 같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이주노동자 인권단체 등에 따르면 최근들어 이주노동자에 당국의 단속이 이전보다 한결 더 강화됐다. 이들은 이같은 단속이 G20정상회담을 겨냥한 것이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합법적인 이주노동자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란다. 라피씨는 "친구들도 밖에 나가면 경찰들이 자꾸 쫓아와 물어보니까 사람들이 우릴 테러리스트라고 생각할까봐 두렵다고 한다"고 했다.

라피씨는 "대가족이다 보니 생활비가 많이 필요하다. 방글라데시도 물가가 많이 올라서 가족들이 힘들어한다"며 "방글라데시에 남아 있는 가족들은 '보고 싶다. 빨리 돌아오라'고 하는 데 지금 가면 언제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니까…"라고 말 끝을 흐렸다.

법무부는 올해 6~7월 경찰, 노동부 등 정부부처와 합동으로 미등록 이주노동자 합동 단속을 실시했다. 또 지난달 23일부터 2차 단속을 진행 중이다. G20의 안전개최와 체류질서를 확립하겠다는 이유다.

아무리 국가대사라지만 1회성 행사를 위해 이주노동자에 가혹한 단속의 채찍을 휘두르고 있다는 비난이 적지 않다.

지난 6월에는 출입국관리소 직원이 중국인 미등록 이주노동자 A씨(48)에게 수갑을 채우는 등 폭력을 휘둘러 법무부가 자체진상조사에 나서는 일도 있었다.

이주민 인권감시단 'Cats-Eye'에 따르면 경기도 광주에서는 지난 6월 스리랑카 국적의 이주노동자가 야간단속을 피해 강으로 뛰어들다 목숨이 위급한 순간을 맞았지만 단속반은 지켜보기만 했다.

또 단속반이 신분증 제시하지 않거나 공장, 집 등에서 관리자나 주거자 동의 없이 무단으로 침입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밖에 사복경찰이 '단지 액세서리를 많이 달고 있다'는 이유로 길거리에서 불심검문을 했다는 내용도 보고됐다.

정영섭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사무차장은 "미등록 이주노동자와 G20이 무슨 관계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법을 위반하면 출국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범죄율도 낮고 오히려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많다"고 설명한다. "정부는 G20을 통해 국격을 높히겠다고 하지만 인권부터 보호해야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정 사무차장은 "현 정부는 G20을 앞두고 선제적 예방조처라는 미명 하에 이주노동자들을 테러리스트로 만들고 있다"며 "미등록 이주 노동자들을 억압하는 정책을 계속 실시해 피해사례가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출입국관리사무소 관계자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퇴거를 위해 현장에 가보면 격렬한 저항이 나오기도 한다"며 "체류질서를 정립해야하는 우리 입장에서 그런 딜레마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체류질서를 세워야 근로 자격을 받아 비자를 발급 받고 들어오는 외국인에 대해 통제가 가능해지는 것 아니겠냐"고도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서 2008년 9월 '불법체류자 감소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정기적인 정부 합동 단속반을 운영하고 있다"며 "이마저도 2000년 초부터 합동 단속을 진행해오던 것이기 때문에 (G20을 맞아서 실시하는) 특별한 단속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출입국관리사무소 지난달 통계월보에 따르면 올해 8월까지 출입국관리법 위반자는 6만375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6만5794명과 비교해 큰 차이는 없다. 하지만 올해 출입국관리법 위반자는 ▲1월 6261명 ▲2월 6196명 ▲3월 7827명 ▲4월 7423명 ▲5월 7431명 ▲6월 8189명 ▲7월 8913명 ▲8월 1만510명로 G20이 가까오면서 계속 증가하고 있다.

라피씨는 "불법체류자들도 다 먹고 살기 위해서 일하는 것인데, 공장에서는 어차피 일할 사람 필요한 데 현 정부는 다 내보내려고만 한다"고 말했다. 이어 "불법체류자를 합법으로 해줘서 노동자들이 일할 수 있게 해줘야 경제도 좋아질 텐데 현 정부는 그렇게 생각 않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현재 라피씨와 처지가 같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17만여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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