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에도 국적이 있나"…수해 외국인 노동자 지원금 '0'

[현장] 가리봉동 쪽방촌 중국 동포의 물폭탄보다 더 큰 상처

기사입력 2010-10-01 오전 6:4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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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금천구 가리봉동위치한 '쪽방'촌. 벌집처럼 다닥다닥 붙여 있어 일명 '벌집'촌이라고도 불린다. 미로처럼 되어 있는 골목길 양 옆으로 쪽방들이 즐비하다. 상당수가 반 지하 방으로 지난달 21일 쏟아진 폭우로 이곳 주민들 대부분이 침수 피해를 당했다. 중국 동포 주창문(54) 씨도 마찬가지였다.

피해 주민들에게 정부가 지원한 돈은 100만 원. 생활터전이 엉망이 된 많은 수재민들이 겪는 슬픔과 절망이야 100만 원으로 대신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 돈 마저 주 씨 같은 재외 동포들이나 외국인 노동자들은 한국 국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단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집주인에게만 50만 원이 지급됐다.

29일 저녁 늦게 퇴근한 주 씨의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25만 원 짜리 방을 방문했다. 실외등이 없어 깜깜한 길을 지나 방에 들어가보니 4평 정도 되는 방의 벽지에 누렇게 생긴 물 띠가 그날 침수 상황을 짐작하게 했다. 무릎 정도 높이에 생긴 물 띠가 아직까지도 선명했다. 습기로 인해 방안 곳곳에는 곰팡이가 생겨 있었다. 벽지 일부가 찢어져 시멘트벽이 훤히 드러났지만 주 씨는 새로 도배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주 씨는 부인과 때 늦은 저녁을 먹고 있었다. TV에서는 일일드라마방송되고 있었지만 화질이 좋지 않아 배우 얼굴조차 제대로 구분이 가지 않았다. 추석에 동생집이 있는 가평에 가 있는 사이 냉장고, 선풍기 등이 물에 잠겼다. TV는 집주인이 높은 곳으로 옮겨 놓아, 다행히 건졌지만 그래도 습기를 잔뜩 먹었는지 영 신통치 않았다.

방 안 장판을 걷자 물기는 아직도 남아 잇었다. 이것을 없애기 위해 매일 보일러를 틀고 있었다. ⓒ프레시안(이경희)
"앞집은 지원금 타가라고 하던데 우리는…"

주 씨는 99년에 처음 한국을 방문했다. 그동안 안 해본 일도 없었다. 공사장 막노동부터 용광로 작업까지,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하지만 한국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갖은 차별과 멸시를 당했다. 그는 "말하면 뭐하냐"며 한 숨을 내쉬었다.

과거 불법체류자 시절에는 신분 때문에 돈을 떼먹힌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용광로에서 일할 때는 용광로 쇳물이 오른쪽 눈에 튀어 실명됐지만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 겨우 한 달간의 치료비만 받았을 뿐이었다.

이번에 쏟아진 폭우에 심각한 침수피해를 당했지만 이 역시 아무런 지원금도 받지 못했다. 같은 피해를 당한 이웃집의 경우 한국 국적이기에 100만 원의 지원금을 받은 것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

작년 12월에 남편을 따라 한국을 찾은 주 씨의 아내 이정실(52) 씨의 소외감은 그래서 더욱 컸다. 이 씨는 "앞 집이 자기들은 돈 타가라고 전화 왔다고 하면서 우리는 안 가냐고 물어 보던데, 우리는 전화도 안 왔다"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중국에 있는 두 아들 때문에 돈을 번다"는 주 씨는 "한국에 있으라고 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거지"라고 씩씩하게 웃었지만 그 뒤에는 체념이 묻어 나왔다.

"누구는 지원금 받고 누구는 못 받고…"

주 씨 부부의 집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중국 동포 이순화(34) 씨 역시 수해를 입었다. 침수피해 지원금을 받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다.

형부,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 방 두 칸짜리 반지하방은 이 씨가 초등학교 5학년인 외동딸을 만나러 중국을 다녀온 며칠 사이에 피해를 봤다. 물은 다행히 발목 정도 높이 정도만 차서 가전제품 피해는 크지 않았지만 장판과 옷가지, 이불 등이 수해를 당했다. 젖은 옷가지 등이 너무 많아 며칠 동안 무리하게 세탁기를 사용했더니 세탁기는 금세 고장이 나 버려야만 했다.

아직까지도 장판 아래 시멘트 바닥에는 물기가 흥건했다. 그래서 수해 이후 계속해서 보일러를 틀어 바닥이 후끈후끈했다. 이 씨는 "이번 달 보일러 값이 20만 원이 넘을 것 같다"고 걱정했다. 공단에서 일하고 있는 이 씨가 버는 돈은 월 150만 원. 그렇기에 20만 원은 이 씨에겐 큰돈이다.

이 씨는 "월세도 꼬박꼬박 냈음에도 피해는 다 똑같이 입었는데 지원금을 못 받는 것은 불공평하다"며 "지원금 100만 원을 우리도 당연히 받는 줄 알았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이 씨는 "공단에서 같이 일하는 중국 동포들이 우리는 지원이 없는 것 같다고 했지만 그 말을 믿지 않았다"며 "정부가 다 알아서 한다고 해서 지원금이 조금이라도 나올 줄 알았는데 이렇게 돼서 너무 화가 난다"고 말했다.

▲ 4평 남짓한 공간의 벽면에는 수마가 지나간 자국이 남아 있었다. ⓒ프레시안(이경희)

지원금 못 받아 더 안타까운 외국 국적 노동자들

금천구가 속해 있는 강서지역의 경우 시간당 최대 98.5mm, 3시간 동안 최대 261mm의 폭우가 쏟아졌다. 서울 시내에서는 큰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저지대 지역 빗물 집중 유입으로 저지대 주택, 특히 반 지하 주택 5000여 가구가 침수되는 피해가 발생했다.

정부는 침수 피해 가구에 100만 원의 지원금을 지급했지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기준이 되는 '재난구호 및 재난복구비용 부담기준' 등에 관한 규칙의 경우, 적용 대상이 국민, 즉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자로 한정돼 있어 침수 피해 외국인은 기준에서 제외됐다.

실제 금천구의 경우 신고 된 침수 주택의 경우 737곳이었으나 침수피해 지원금을 지급한 건수는 501건에 불과했다. 구청 관계자는 "지원을 하지 않은 경우는 침수 피해가 100만 원 미만인 경우도 있었으나 대부분 외국인이기 때문에 지원기준에 미달됐다"고 설명했다.

구청 관계자는 "침수 피해가 나면 집안 살림이 모두 망가진다"며 "어렵게 돈을 모아 고국으로 돈을 부치고 남는 돈으로 겨우 세간 살림을 마련했는데 그게 이번 수해로 모두 날라 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하지만 한국의 재난관리 시스템은 외국인에 관한 보상이 전혀 없다"며 "중국 동포 등은 한국으로 와서 힘들게 일하고 있는데 이들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건 문제가 심각하다"고 밝혔다.

그는 "같은 피해를 입었지만 외국인이기 때문에 지원금을 주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이번 기회에 정부가 재난 관련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 이중적 태도로 더 큰 상처"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프레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외국인의 경우는 이번 재난관리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다"며 "관련법이 내국인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하지만 외국인 세입자가 피해를 입었을 경우, 집을 수리할 수 있도록 집 주인에게 지원금 50만 원을 지급했다"며 "관련법에서 최대한 배려를 했다"고 말했다.

집주인들이 침수된 곳을 고치는 데 이 지원금을 사용하는 것은 요원하다. 실제 <프레시안>이 취재한 침수 피해 외국인 노동자들 대다수는 침수된 상황이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김숙자 재한동포연합회 회장은 "정부 차원에서 집을 수리하는 게 아니라 집주인 개개인에게 일정 지원금을 지급해 집을 수리하도록 한다면 상당수의 집 주인들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집을 수리하지 않을 것"이라며 "결국 외국인 노동자들은 침수 피해에 따른 혜택을 하나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과거 여공들이 채웠던 가발공장 등을 이젠 중국 동포들이 채우고 있는 현실"이라며 "이들은 한국에서 정당한 대우도 받지 못하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더구나 이번 침수피해로 인한 정부의 이중적 태도는 이들에게 더욱 큰 상처를 주고 있다"며 "이들을 돌보고 보살필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근본적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허환주 기자,이경희 기자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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