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에 간 ‘이주노동자 직업 선택의 자유’

‘사업장 변경 3회 제한’ 헌법소원, 공개 변론 열려

윤지연 기자 2010.10.14 21:10

파나니 무하마드씨는 졸지에 불법체류자 신세가 됐다. 20개월 동안 일하던 회사가 경제난으로 명의가 이전되자, 그에게 불법체류 통지서가 전해졌기 때문이다. 일하던 내용과 사업장의 장소, 동료까지 똑같은데 유독 그가 불법체류 신세가 된 이유는 뭘까?

무하마드씨는 현재 회사를 다니기 전 3곳의 회사를 다녔다. 첫 번째 회사는 5개월간 일했지만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았으며, 두 번째 회사는 처음 약속과는 달리 입사 후 수습기간을 뒀다. 세 번째 회사에서는 의료보험혜택을 제공하지 않았다. 때문에 네 번째 회사로 이직했으나 회사의 명의가 변경되면서 무하마드씨는 ‘사업장 변경 3회 제한’에 걸려버렸다. 2004년부터 시행된 고용허가제에서는 외국인 근로자에 대해 사업장을 3회 이상 초과하여 변경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사업장 변경횟수제한 위헌 여부가 헌법 재판소에서 가려질 예정이다.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은 지난 9월 21일, 무하마드씨 외 3명을 대리하여 이 법률에 관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이에 14일, 헌법재판소에서는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제25조 제4항 등 위헌확인 외 2건의 병합사건에 대한 변론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는 청구인에 해당하는 공감 소속 변호사들과 참고인 한상희 교수, 그리고 이해관계인에 해당하는 고용노동부장관의 대리인 변호사들과 참고인 설동훈 교수가 참여해, 위헌성 여부에 대한 설전을 벌였다. 변론 과정에서 쟁점이 된 것은 해당 법률이 청구인의 직업의 자유를 침해하는지에 대한 여부와 포괄위임금지원칙에 위반되는지 여부,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기본권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해석이었다.

직업의 자유 침해한다 VS 특혜로 봐야 한다

2008년 입국한 여성 이주노동자 A씨는 작물재배업에 종사했지만, 3개월 만에 일감이 떨어져 회사를 그만뒀다. 같은 이유로 3번의 사업장을 옮긴 A씨는 네 번째 사업장에서 일하는 도중 임신하게 돼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사업장 변경횟수를 채운 A씨는 체류기간을 1년 남기고 불법체류자 신세가 됐다.

역시 2008년 제조업 비자로 입국한 B씨는 근로 조건이 근로계약서의 조건과 다르다는 이유로 3번을 이직했다. 마지막으로 터를 잡은 회사에서 사장은 B씨의 사업장 이동 제한의 횟수를 채웠다는 걸 알고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다. 회사를 그만둘 경우 불법체류자가 되어야 하는 B씨는 사장의 폭언과 폭행을 견디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청구인의 대리인으로 출석한 윤지영 변호사는 위의 두 사건을 제시하며 ‘사업장 변경 제한’의 위헌성을 강조했다.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제 25조 4항에 해당하는 이 법률이 외국인 노동자에게 강제 근로를 강요하며, 평등의 원칙에 위배되는 등의 위헌적 요소를 함축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윤 변호사는 “청구인 4명 모두 일감이 없다는 경영상의 이유로 해고됐으며, 한 명은 심지어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면서 “하지만 고용지원센터를 방문해도 이를 입증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고용지원센터에 사업장 변경 이유를 밝혀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는 사업주의 확인이 필요하다. 하지만 사업주가 확인을 꺼리기 때문에, 입증이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된다. 결국 고용지원센터는 해당 청구인들에 대해 ‘정당한 사유로 계약해지 했다’고 변경 사유를 기록했다.

윤 변호사는 “추후에라도 사유를 바꿀 수 있는지를 물었지만, 고용지원센터는 한 번 결정된 사유를 바꿀 수 없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결국 외국인 노동자들은 권리 구제방안을 찾지 못한 채 절대적인 횟수 제한으로 불법체류자가 되어야 하는 실정이다.

▲  14일 정오, 헌법재판소의 공개 변론에 앞서 민변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이 '고용허가제 사업장 이동 제한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하지만 노동부의 입장은 달랐다. 노동부장관의 대리인으로 출석한 이창환 변호사는 “우리나라는 오히려 사업장 변경 조건과 횟수를 두어, 외국인 노동자들이 법적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에 따르면, ‘3회로 제한하는 것’이 아닌, ‘3회나 이동할 수 있는’권리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현행 법률에는 변경 가능 조건이 제한돼 있지 않아, 마음만 먹으면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어 3회로 제한하는 법률은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외국인 노동자가 근로계약위반사유가 없는데도, 다른 사업장으로 옮기기 위해 태업과 결근으로 사업주의 해고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청구인 측이 요구하는 사업장 변경 시 사유로만 이를 제한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 변호사는 “사유로만 제한하게 되면 입증에 대한 부담으로 외국인 노동자가 더욱 불리해질 수 있다”며 “또한 엄청난 행정력 낭비를 가져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참고인 자격으로 참석한 설동훈 전북대 교수 역시 “각국이 이주노동자에게 사업자 이동에 대한 제한적 법률을 만들어 놓은 것을 봤을 때, 우리나라는 오히려 특혜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설 교수는 “외국인 노동자는 임금인상, 근로조건 등에 따라 좋은 사업장으로 옮기려 하는 경향이 있으며, 심지어 한 두 번 안 옮기면 손해 봤다는 느낌이 들 정도”라며 “특히 이들 사이에 사업장 변경을 위한 노하우와 다양한 리스트가 있어 사업주들은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주노동자도 기본권의 주체가 될 수 있나

이번 변론에서는 이주노동자 역시 기본권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가 쟁점이 됐다. 참고인 자격으로 참석한 한상희 건국대 교수는 “3~5년동안 국내에 체류하며 지속적이고 포괄적인 관계를 형성해 온 외국인 노동자는 국민, 또는 국민과 유사한 외국인으로 기본권 주체성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한 교수는 “직업선택의 자유는 기본권으로부터 파생된 것”이라며 “외국인 노동자들이 주장하는 것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국가가 간섭하는 것을 배제하는 소극적 권리주장과 다름없다”고 설명했다. 변경 횟수가 완료 됐을 경우, 절대적 제한을 두는 것 역시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외국인 노동자에게 어떤 일이 발생하더라도 횟수가 완료되면 가차 없이 불법 체류자로 전락하는 엄격한 심사기준을 완화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권영국 변호사 역시 “국가에 노동력을 도입한다는 것은, 인간 그 자체를 수입하는 것”이라며 “이들이 거주하게 되면 노동력만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닌, 인간의 존재 양식이 발동하는 것이어서 인간의 기본 권리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설동훈 교수는 “외국인을 차등적으로 대하는 것은, 이주노동자 제도가 만들어졌을 때부터 존재했던 상식적인 이야기”라고 반박했다. 국민에 준하는 외국인부터, 입국 불허 외국인까지 차등정책을 두는 것이 ‘이민 정책’이라는 것이다.

또한 설 교수는 사업장 이동 제한 법령을 폐기 할 경우 발생하는 부작용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그는 “2008년 국제금융위기 당시, 3D직종의 인력난에도 한국은 외국 인력을 축소해, 노동자들의 사업장 이동 증가로 임금이 오르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만약, 무제한으로 사업장 이동이 허용 될 경우, 잦은 사업장 이동으로 노동자 임금인상이 더욱 가파르게 상승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설 교수는 “그렇다고 도입 규모를 늘리는 것은 더욱 큰 악재를 가져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권영국 변호사는 “현실을 호도하는 이야기”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외국인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은 최저임금 인상률과 거의 부합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간혹 최저임금을 웃도는 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경우, 상대적으로 긴 노동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 변호사는 “외국인 노동자 역시 정당한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댓가를 받아야 한다”면서 “저항이라고는 사업장 변경밖에 할 수 없는 노동자들에게 횟수제한을 두어 사용자에게 사유화 하려는 것은 강제 근로의 원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사업장 변경 횟수 제한에 대해 ‘특혜’라고 주장한 데 대해 “이는 특혜나 혜택이 될 수 없는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