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생활 19년… ‘쫓겨날 날’ 다가와 우울한 추석”
방글라데시 출신 벨랄 후세인씨
김하나기자 hana@munhwa.com | 기사 게재 일자 : 2010-09-17 14:52
▲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벨랄 후세인씨가 서울 금천구 독산동 자택에서 아내 배 속에서 자라고 있는 6개월 된 아기의 초음파 사진을 보여 주고 있다. 옆은 부인 김주현씨로, 후세인씨의 요청에 따라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했다 . 신창섭기자 bluesky@munhwa.com
추석을 앞둔 지난 9일 오후 서울 금천구 독산동의 좁은 골목길에 늘어선 음식점들은 손님으로 북적이고 있었다. 근처 마트에는 제수용 과일들을 고르는 가족 단위 고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그 사이로 서류 뭉치를 든 한 남자가 걸어왔다.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지만 인사를 건네는 그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 했다. 올해 추석이 한국에서 보내는 마지막 추석이 되지 않을까. 다가오는 추석이 기쁘기보다는 두려운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벨랄 후세인(45)씨다.

후세인씨는 1992년 1월1일 한국생활을 시작해 올해로 벌써 19번째 추석을 맞는다. 특별히 올해는 2008년 결혼한 아내의 배 속에서 자라고 있는 6개월 된 아기와 함께하는 첫 명절이다. 하지만 후세인씨에게 명절은 먼 나라 얘기처럼 들린다.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숨어 살다 5월에 붙잡힌 그는 주위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풀려났지만 법무부로부터 2011년 2월11일까지 한국을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다. 추석이 가까워 온다는 것은 아내와 아이를 남겨두고 19년을 살아온 나라에서 쫓겨날 날이 다가온다는 것과 다르지 않은 얘기다.

이날도 한국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관련 서류를 들고 구청의 무료법률상담소를 찾아갔다 오는 길이었다.

후세인씨는 올 추석에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보낼 생각이다. 그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이웃 족발집에 가서 일손을 도와주고, 아내가 좋아하는 김밥을 사서 함께 나눠 먹을 생각이다. 마음의 여유가 없다 보니 추석 음식을 차릴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방글라데시로 가서 1년을 살고 다시 오라고 하대요. 19년간 한번도 못 가 본 고향에 가는 일이 왜 싫겠습니까. 1주일, 1개월이라면 갔다가 다시 오겠어요. 그렇지만 제 아내가 많이 아파 혼자 생활할 수 없는 사람인데, 제가 가면 정말 죽을지도 몰라요. 가족을 버리고 무조건 나가라고 하니 답답하기만 합니다.”

간질과 우울증을 앓고 있는 아내 김주현(25)씨는 후세인씨의 도움 없이는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먹고 입고 씻는 기본적인 것들까지 후세인씨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후세인씨가 외국인보호소에 붙잡혀 있다 3개월 만에 돌아간 집안은 폐허에 가까웠다. 당시 임신 5개월이었던 아내는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않고 반지하방의 어둠 속에서 남편만 기다리고 있었다.

“집에 들어갔더니 완전히 쓰레기장이에요. 악취가 나고 언제 먹었는지도 모르는 피자 조각이 방구석에서 벌레에 뒤덮여 있고…. 아내는 아기나 다름없이 돌봐 줘야 해요. 내가 가족이고, 친구이고, 아내의 전부입니다.”

후세인씨가 떠난 사이, 김씨의 건강 상태는 눈에 띄게 나빠졌다. 가끔 요리를 하고 후세인씨를 돕기도 했던 그는 몇 달째 자리에 누워 제때 먹지도 않는다. 바깥에 나가는 일은 생각하기 어렵다. 우울증이 심해져서 이유없이 화를 내고 눈물을 보이는 일도 잦아졌다. 후세인씨의 이웃 주민은 “한국 남자도 저렇게 아내를 챙기지 못하는데 대단하다”며 “주현이는 후세인이 없으면 못 산다”고 했다.

후세인씨가 방글라데시를 그리워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와 누나, 5명의 동생은 십수년간 후세인을 기다리고 있다. 몇 달 전 쓰러진 어머니는 반신이 마비돼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가족 얘기를 꺼내자 후세인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머니는 ‘내가 죽으면 올 거냐’고 그러시면서도 ‘나를 용서해라’고 하며 미안해하셨어요. 무작정 한국으로 왔던 젊은 나이에는 월급도 못 받고 사장한테 맞으면서도 가족들 생각하면서 꼭 성공해서 돌아가겠다고 다짐했는데, 이제는 방글라데시에 가지 않기를 바라게 됐어요. 아픈 아내가 방글라데시에서는 살 수 없어요.”

후세인씨에겐 방글라데시의 가족과 친구를 대신해 준 사람이 아내 주현씨다. 십수년간 한국 생활을 하면서 방글라데시에 돈을 보내는 것 외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던 그는 2003년 봉제공장에서 주현씨를 만난 뒤 한국에서 뿌리를 내리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생활고에 허덕이느라 혼인신고를 미루면서 문제가 생겼다. 혼인신고 절차를 밟고 있던 올해 5월, 불법체류 단속에 걸린 것이다. 혼인신고만 미리 끝냈어도 ‘한국인’이 돼 남편으로, 아버지로 살아갈 수 있었던 그다. 주위에선 그에게 “왜 이렇게 운이 없느냐”고 안타까워한다.

“불법으로 한국에서 살았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은 해요. 그렇지만 인도적인 차원에서 붙잡혔던 저를 3개월 만에 풀어 준다고 하셨었어요. 한번만 더 인도적으로 생각해 주실 순 없을까요. 제 아내가 장애를 갖고 있고 아이까지 임신했는데, 제가 처한 현실을 생각해서…. ‘정식적으로’(합법적으로) 한국에서 생활하는 게 소원입니다. 대통령님, 법무부장관님, 도와주세요.”

국외추방이라는 ‘시한폭탄’을 안고 하루하루 마음을 졸이는 후세인씨가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있는 이유는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자신을 구해 준 이웃들의 사랑 때문이다. 후세인씨의 딱한 사정을 듣고 50만원을 모금해 준 금천구청 직원들, 틈날 때마다 주현씨의 건강 상태를 살피는 독산동주민센터의 주민생활팀장은 그에게 구세주나 다름없다. 외국인보호소에 잡혀간 후세인씨가 3개월 만에 풀려날 수 있도록 300만원의 보증금을 내준 임모(55)씨는 후세인씨가 ‘형’이라고 부르는 가족 같은 존재다. 집주인은 벌이가 없는 후세인씨 사정을 배려해 벌써 4개월째 집세를 받지 않고 있다.

“저는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 살 수만 있게 된다면 무슨 일이든 해서 돈을 벌어 아기를 잘 키워야죠. 아기를 낳으면 아내를 병원에 데리고 가서 치료도 받게 할 거예요. 치료를 받으면 아내도 좋아질 거고 세 가족이 추석 때 송편을 만들며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도와주신 분들을 찾아가서 감사인사도 드리고….”

한국에서의 새 삶을 꿈꾸는 후세인씨의 마음은 벌써 내년 추석을 향하고 있다. 스물일곱의 후세인씨를 한국으로 불러들였던 ‘코리안 드림’은 불혹을 넘긴 그의 가슴에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김하나기자 han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