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 아닌 고아된 패왕이, 누가 책임지죠?
이주아동 권리는 무시하면서 '법과 원칙'만 외치는 MB정부
10.10.03 19:10 ㅣ최종 업데이트 10.10.03 19:14 고기복 (princeko)
  
▲ 외국인과 공존하는 열린사회 구현 출입국에 걸려 있는 '외국인과 공존하는 열린사회 구현'이라는 구호와는 달리 강제출국하는 이주노동자들은 부모로서의 권리행사를 무시당하고, 아동들은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 고기복
출입국

지난 1일 국무총리로 취임한 김황식 총리가 '법과 원칙', '소통과 화합', '나눔과 배려' 등을 최우선 가치로 꼽았다고 한다. '법과 원칙'은 이명박 대통령이 강조한 온 가치 가운데 하나라는 점에서 새로울 게 전혀 없는 구호임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낯설고 어색하기만 하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법과 원칙'이라는 구호를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곳은 아마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이하 출입국)일 것이다. 법을 집행하는 기관에서 법과 질서를 확립하겠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도 이처럼 구호를 적어가며 의지를 드러내는 것은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현실은 법을 집행함에 있어서 형식에 지나치게 치우친 나머지, 정작 내용은 없는 경우가 허다해 이명박 정부의 구호에선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가령, 이명박 정부 들어 강력하게 집행하고 있는 미등록이주노동자 단속과 추방정책만 해도 그렇다.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 N은 미등록체류를 하던 중 지난 9월 중순 법무부 수원출입국에 단속되었다.

 

단속된 후 그는 화성외국인보호소로 이송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20개월 밖에 되지 않은 N의 아들, 패왕이가 고아 아닌 고아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그렇게 된 데는 나름 사연이 있다. N이 단속되자, 동거 중이던 패왕이 엄마가 자신 역시 강제 출국될 것을 염려하여 아이를 내팽개치고 잠적했기 때문이다.

부모가 있어도 만날 수 없는 이주 아동들

 

N이 단속에 걸려 출입국으로 이송된 날, N은 자신의 아들 문제를 이야기했다. 하지만 출입국에서는 N이 아기를 돌볼 수 있도록 배려하지 않고, 화성외국인보호소로 이송하였다. 결국 평소 보육시설에 아이를 맡겨놓고 일을 하던 N이 패왕이를 데려가지 않자, 보육시설에서는 패왕이를 외국인보호소로 데리고 왔다. 하지만 외국인보호소에서는 18개월 이상된 유아를 보호소에서 수용할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N이 패왕이를 데리고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출입국에서는 졸지에 엄마에게 버림받았고, 아빠와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어린 패왕이를 용인이주노동자쉼터에 맡겼다. 이렇게 패왕이는 고아 아닌 고아 신세가 되고 말았다.

 

쉼터에서는 당시 출산을 앞둔 임산부와 네 살배기 여아를 둔 이주여성이 있어서 한시적으로 아이를 돌볼 수 있다는 전제 하에 패왕이를 맡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네 살배기 여아를 둔 이주여성은 문제가 해결되어 쉼터를 나갔고, 출산을 앞둔 이주여성 역시 10월 들어 산모원으로 옮길 계획을 갖고 있어서 패왕이를 더 이상 돌볼 여력이 없다는 뜻을 지난 9월 30일 출입국에 전달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출입국에서는 패왕이를 어떻게 돌볼 계획을 갖고 있는지 아무런 연락을 하고 있지 않다. 문제는 패왕이에게 발생한 문제가 패왕이에게 그치지 않는다는데 있다. 용인이주노동자쉼터에는 패왕이보다 두 달 먼저 들어와 있는 여아가 또 한 명 있다. 현재 두 명의 이주아동이 부모와 떨어져 지내고 있는 것이다.

 

법과 원칙 강조하기 전에, 보호 장치도 마련해야

이처럼 출입국은 이주아동을 동반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을 단속할 때마다, 늘 이주아동에 대한 보호 의무나 아동의 권리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다. 출입국은 부모가 있는 이주 아동들을 갈 곳 없는 고아 아닌 고아로 만들어 놓고 있다.

 

아이들이 부모와 갑자기 떨어지면서 겪을 수 있는 상실감과 두려움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를 하지 않고, 이주아동을 보호하는 수고는 민간단체에게 떠넘기며, 단속된 외국인은 외국인보호소 수감을 원칙으로 한다.

법무부는 이런 일이 반복될 수록 또 다른 법과 원칙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거창하게 "모든 아동은 생명에 관한 고유의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생존과 발달을 최대한 보장받아야 한다"라는 유엔 아동권리협약(제6조)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어린 핏줄을 강제로 떼어놓는 건 부모나 아이 모두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는 것이라는 사실은 상식 아닌가?

물론 엄정한 법질서 확립을 위해 이주아동을 동반하고 있는 미등록이주노동자 단속이 불가피하다고 하자. 그러나 단속하고 강제출국시키기 전까지 아동을 물리적으로만 아니라 정서적으로까지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장치 또한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것이 선행되지 않는 한, '법과 원칙', '질서의 확립'은 형식만 있고, 내용은 없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