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에 대한 두 가지 시선, 연대와 무시
 
기획취재팀
‘난민’이라는 이름은 국제인권의 잣대가 되는 이름이다. 한국은 “난민보호에 앞장서겠다”며 1992년 난민협약에 가입했지만 한국에서 난민지위를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에서 난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며, 그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문화저널21은 지난 27일 난민지위를 얻기 위해 소송 중인 버마행동한국을 찾아 이야기를 들어봤다.

버마행동한국 회원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다. ⓒ박현수기자

한달 회비 12만원, 집회와 시위로 휴일 반납한 지 오래
부천역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타고 내리니 건물 1층에 조그맣게 ‘버마행동한국’이라고 써붙인 사무실 간판이 보인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회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회의에 한창이다.
 
사무실이라고 하기엔 비좁은 열대여섯 평 남짓한 공간엔 부엌 겸 거실 하나, 방 두 칸, 화장실이 있다. 그 중 큰 방은 회의실로 쓰이고 작은 방은 사무실로 쓰이는데 작은 방인 사무실엔 컴퓨터 4대와 사무기기가 놓여 있고 책장엔 각종 책과 자료, 논문들이 빼곡히 쌓여 있다. 회의가 진행 중인 큰 방도 사정은 마찬가지. 각종 책과 활동자료들이 쌓여 있고 벽마다 행사 포스터, 버마 국기, 아웅산 수지 여사의 사진 등이 붙어 있었다.
 
오전 11시에 시작해 12시쯤 끝난다던 회의는 오후 1시가 다 돼서야 끝났다. "많이 기다리셨죠?“ 뚜라 대표는 회의실 문을 열고 나오며 미안한 듯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사무실 곳곳을 둘러보는 기자에게 뚜라 대표는 “이곳은 14명의 회원들이 매달 12만원씩 내는 회비와 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주노동자로 살아가면서 그만큼의 회비를 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터. 그는 “회원들은 평일에 야근과 잔업에 시달리면서 활동을 병행하느라 휴일을 반납한 지도 오래됐다”고 말했다.
 
박해위험 없다? 버마행동회원들 난민 인정 불허
‘버마행동한국(http://cafe.daum.net/mmwc)'은 2004년 한국내 버마출신 이주노동자들에 의해 설립된 이래 버마의 군부독재 상황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한 집회, 캠페인, 교육 등을 펼치고 있다. 또한 버마 내부의 양심수 및 가족지원, 버마 내부의 주민 조직화를 위한 센터 운영은 물론 버마출신 노동자를 위한 노동법 및 한국어 교육활동 등을 펼치고 있다.
 
지난 8월 13일 법무부는 버마행동한국 소속 회원 8명에 대해 ‘난민인정불허’를 결정했다.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이들이 참여하는 단체는 친목단체에 불과하고 특별히 정치적 활동을 하는 단체로는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귀국시 박해받을 가능성이 높지 않다”며 난민인정불허 사유를 밝혔다. 또한 "이들의 집회와 행사 참여 행위 등은 난민 인정을 받아 한국사회에서 살기 위한 목적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버마행동한국 소속 회원 8인은 2004년에 난민 신청을 한 후 그로부터 4년이 지난 2008년 9월 난민인정불허 통지를 받았다. 이에 난민인정불허결정에 대한 취소 청구를 했으나 지난 8월 그마저도 기각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지난 10월 난민인정 불허결정 취소청구에 대한 항소심을 접수해 놓고 현재 재판부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난민신청자에 대한 두가지 시선, 연대와 무시
뚜라 대표 ⓒ박현수기자
“누구도 단지 한국사회의 난민이 되기 위해 6년 동안의 기나긴 쇼를 할 수는 없습니다.”
 
뚜라 대표는 재판부의 난민불허 판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버마는 현재 극심한 군부독재로 인해 많은 국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며 “한국에는 수천 명의 버마 출신 이주노동자가 있지만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은 수십 명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주노동자로 어렵게 살아가는 중에도 버마 민주화를 위한 활동에 매진해왔는데 그것을 단지 한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쇼로 치부하는 재판부의 판결은 우리들의 애국심과 버마 민주화에 대한 의지를 무시하는 처사”라고 말했다.
 
그는 난민신청자에 대한 상반된 두 가지 시선에 대해 말한다. “국제 난민에 대한 문제나 국제 구호에 대해서는 높은 관심을 보이면서 정작 국내 난민문제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시하거나 무관심한 태도를 보입니다. 버마민주화는 남의 일이 아닙니다. 버마의 평화는 곧 아시아의 평화라는 생각으로 우리들의 활동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봤으면 좋겠습니다.”
 
“난민 인정 불허에 깊이 상처받아”

© 배문희기자
"버마의 군사정부는 정치적 활동가들을 극심하게 탄압하고 있습니다. ‘마약장사를 해도 좋다, 정치활동만은 하지 마라’는 것이 버마 정부의 입장입니다. 세계인권의 날에 고등학생이 선언문을 나눠줬다는 이유로 7~8년 형을 선고받는 것이 버마의 인권 현실입니다. 우리의 활동이 박해받을 가능성이 없어 난민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재판부의 판결은 버마의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판결입니다. 중요한 것은 버마 정부의 입장이지 한국 정부의 판단이 아닙니다."
 
소모뚜 총무는 난민문제에 대한 한국사회의 관심을 호소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재판부의 난민인정 불허 판결에 대해 "한국사회에 깊은 실망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한국은 우리와 같이 군사독재의 역사와 슬픔을 지닌 나라이기에 많은 부분에서 버마의 정치적 상황을 이해하고 지지해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어요.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전직 대통령이 계시고 5·8 민주화 항쟁이 있었고 유엔총장을 배출한 나라가 한국 아닌가요? 하지만 이번 판결을 통해 우리 모두는 깊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한국의 민주주의 의식에 대해서 의심스러워졌으며 기대감에도 배신을 느끼게 된 것이죠."
 
소모뚜 총무는 "그동안 버마행동한국이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 제대로 조사했다면 재판부가 불허 판정을 내릴 수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전세계에 버마민주화를 위한 조직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버마행동한국은 노래를 만들어 전파하는 등 문화활동과 민주화활동을 접목시켜 국제적으로 높은 인지도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사회에서 버마 민주화 활동을 펼치면서 많은 부분을 희생하고 포기해야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람이 더 컸기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활동을 하면서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많았지만 때로는 분에 넘치는 격려도 받았고 우리의 활동이 버마의 민주화뿐 아니라 한국사회의 다양성에도 어느 정도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보람이 있어요. 특히 버마 내부 주민들을 교육하고 활동가를 키우는 사업을 하면서 큰 기쁨을 느낍니다."
 
<버마와 미얀마 사이>
버마는 1988년 사회주의체제가 무너지고 군부에 의한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생겨난 국명이다. 때문에 한국에 있는 버마인들을 비롯해 전세계에 퍼져 있는 버마 민중들은 군사독재정권이 개명한 국명을 쓰지 않고 선조들이 지은 '버마'라는 국명을 사용하고 있다.

문화저널21 기획취재팀(배문희기자 baemoony@mhj21.com, 박현수기자 phs@mhj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