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국적법 개정에 맞춰, 다시 인권을 생각한다 임운택 계명대교수·사회학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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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는 지난 13일 국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그 핵심은 외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더라도 복수국적이 허용된다는 것이다. 이제 선천적 복수국적자들, 즉 부모가 속지주의를 채택한 나라에서 체류하면서 낳거나 국내 다문화 가정에서 출생한 자녀들과 우리 국적을 취득한 외국인들이 국내에서 외국 국적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서약만 하면 우리 국적을 계속 보유하거나 새로 취득하는 데 문제가 없게 됐다.

임운택
계명대교수·사회학

대한민국의 국적법은 정부 수립 이후부터 지금까지 이중국적을 불허하는 국적 단일주의에 근거했다. 그간 몇차례 국적법 개정이 이루어졌지만 기본원칙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은 사회경제조건의 변화에 따라 이중국적의 발생요건이 다양화하고, 그 사례도 나날이 증가해 이미 국내 거주 외국인들이 100만명을 넘어서고 매년 귀화 혹은 국적회복 신청만 2만건이 넘는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이번 국적법 개정이 이중국적을 원칙적으로 허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해외 출생자뿐 아니라 고령의 재외동포, 다문화 가정 자녀들, 화교, 국외 입양인 등 이른바 혈통주의로 인해 발생한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국적 취득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일단 진일보한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선천적 복수국적자의 절반인 여성에게 병역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이유로 복수국적 대상에서 배제하는 것은 차별적 조항이 될 수 있다.

특히 문제는 복수국적 허용으로 폐쇄적인 사회에서 개방적인 사회로의 발전을 예고하면서 정작 국내에 거주하는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대하는 정부의 자세는 매우 대조적이라는 점이다. 지난 10월 무려 18년 동안 국내에 거주한 네팔 노동자 미누를 해외로 추방한 것은 ‘국내 5년 거주’ 요건을 채우지 않더라도 국내에 주소만 있으면 바로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하는 해외 고급인력에 대한 조치와는 너무 대조적이다.

고급인력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한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회성원을 저급인력, 고급인력으로 구분하는 것은 헌법정신에도 위배될 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을 경제적 효용성의 가치로만 재단하려는 틀에 스스로를 가두는 일이 된다. 경제적인 이유로 해외의 고급인력 유입을 필요로 하는 것과 똑같은 이유에서 지난 십수년 동안 우리 정부는 여러 법률적 형태를 빌려 외국인 노동자들을 국내로 데려왔다. 고급인력이 당장 모자라서 경제에 얼마나 많은 손해를 입을지는 몰라도 현행 고용허가제 아래서 유입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없다면 국내의 많은 중소기업은 당장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될 것이다.

법은 일반적으로 만인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듯하지만, 그 적용 대상에게 다가가는 방식은 매우 차별적이다. 일찍이 프랑스의 소설가 아나톨 프랑스는 “법은 부자에게나 빈자에게나 똑같이 다리 밑에서 잠자는 것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다”면서 법의 공평한 적용 속에 감추어진 계급성을 비난했다. 국적법 개정이 다시 한 번 인권의 소중함을 곱씹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임운택 계명대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