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국적 허용에 희비 교차
| 기사입력 2009-11-13 17:16
  
광고
  

'군대ㆍ대입시' 문제로 벙어리 냉가슴도

영주권자 인요한 소장 "당장 신청하겠다"

(서울=연합뉴스) 홍덕화 기자 = "화교 출신의 젊은이들은 군대 문제로, 또 한국대학 진학을 준비중인 고교생들은 '특별전형' 자격 상실 등으로 인해 고민이 많을 겁니다."(연희동 거주 화교 J씨)

법무부가 13일 외국 국적을 가진 한국인, 결혼 이민자, 해외 우수인재, 고령의 동포 등에게 복수 국적을 허용하는 내용의 국적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 가운데 결혼이민자, 화교, 재외동포 등 대상자 중 다수는 한국이 "개방사회를 향해 거보를 내디뎠다"며 환호했다.

인요한(미국명 존 린튼) 세브란스 의대 외국인진료소장은 "전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탁월한 재능의 한국인이 널려 있는 상황에서 복수국적을 허용하는 것은 아주 잘 된 일"이라고 평가한 뒤 "나도 영주권자로서 특별히 불편한 것은 없지만 당장 국적을 신청하겠다"고 말했다.

13년 전 한국 남성과 결혼해 1남 1녀를 둔 필리핀 출신의 패트리샤 아마란토(38.서울 독산동)씨는 "결혼 이주민 대부분이 복수국적을 원해 온 만큼 환호하고 있다"며 "필리핀 국적을 되찾으면 저와 두 아이에게 큰 자산이 되고 좀 더 편한 마음으로 고향을 찾아가고 현지 투자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10여년 전 귀화시 원국적을 포기한 그는 주한 필리핀 대사관을 통해 국적회복 가능성을 타진해 볼 계획이다.

베트남 출신으로 8년 전 한국 남성과 결혼, 귀화한 윈티 안다오(37.경기도 평택시) 씨도 "복수국적 허용 대상을 결혼이주여성에게까지 확대해 반갑다"며 "당장 주한 베트남대사관에 국적회복 절차를 물어보겠다"고 말했다. 그는 베트남 국적 포기 후 비자수속 등이 복잡해 고향에 자주 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대부분 대만(중화민국) 여권을 소지하고 있는 주한 화교들은 국제사회에서 사실상 고립된 대만 여권으로는 동남아 여러나라나 일본 비자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다, 복수국적 허용시 노인이나 장애자들도 복지혜택을 얻게될 것이라며 대부분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한성화교협회의 궈위앤여우(郭元有.60) 사무국장은 "몇 대씩 대를 이어 이곳에서 살아온 화교들에게 한국정부는 영주권(F4)을 주었으나 큰 도움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며 "노인과 장애자 복지를 위해 청와대, 보건복지가족부, 법무부 등에 수 차례 진정해왔는데 이런 노력이 결실을 맺게 돼 반갑다"고 말했다.

궈 사무국장은 "복수국적 허용 방침은 한국사회가 덜 배타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환영한다"며 "화교들이 한국국적을 얻게되면 65세 이상의 화교 노인은 지하철 무료 승차 혜택을 받고 장애인에게도 장애자 수첩이 나와 각종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어 크게 기대된다"고 말했다.

반면 화교사회의 한 지도자급 인사는 "청소년 중 다수는 병역의무 이행이나 한국대학 진학이 어려워짐에 따라 복수국적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 대학에 진학하려는 화교 고교생들은 한국국적 취득시 외국인에 부여되는 정원 외 전형 혜택 없이 한국학생과 무한경쟁을 벌여야한다는 것.

화교 학생들은 한국 학생들과 학력차나 교과서와 학습 방식의 차이가 큰 데다 수능시험에 거의 대비하지 못한 상황이어서 복수국적 허용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산하 결혼이민자네트워크 회장을 지낸 아마란토 씨는 "아직 귀화하지 않은 이주여성 중 아들을 둔 경우 군대 문제로 신청을 꺼리는 경우도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아마란토 씨는 "저처럼 이곳에 뼈를 묻겠다는 사람도 있는 반면 자녀 교육환경 개선 여부 등 한국사회의 상황 변화를 지켜보며 언제라도 귀국할 수 있도록 귀화 신청을 미루고 있는 사람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키르기스스탄 출신으로 6년 전 한국 남성과 결혼해 입국한 누르자나 가마타이예바(35) 씨는 앞서 "국적 신청 여부를 놓고 오랫동안 고민하다 지난해 영주권을 신청했다"며 "귀화 요건도 까다롭지만 한국에서 아이(6)를 잘 키울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어 귀국 여부를 고민 중이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 방송국(MWTV)의 아운틴툰(미얀마) 프로그램팀장은 "이주노동자들은 국적까지는 바라지 않고 법률이나 제도적 차원에서라도 제대로 보호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운틴툰 팀장은 "특히 미등록(불법체류) 노동자를 범죄자 취급하는 등 우리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며 "노동허가제 도입이 당장에 어렵다면 고용허가제 차원에서라도 이주노동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전향적인 정책을 수립해주면 좋겠다"고 정부에 촉구했다.

한국 다문화센터의 김성회 사무총장은 외국인력 유치 문제에 언급, "한국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이주 노동자들은 국적법 개정 논의 과정에서 해외의 고급 인재에 비해 소외된 느낌을 준다"며 "산업현장의 경쟁력 있는 인력 확보를 위해서라도 영주권 제도 등을 활성화해 인재를 유치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duckhw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