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이주 노동자 ‘인권 사각지대’ 
2010년 06월 01일 (화) 22:35:12 유영선 기자 sun@newscj.com
   
▲ 지난 14일 오전 서울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이주공동행동 공동주최로 열린 ‘G20 관련 이주노동자 합동단속 대응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법적 지위 보장‧정부제도 개선 필요”

[천지일보=유영선 기자] #사례1. 외국인 노동자 A씨(32)는 몇 달째 월급을 받지 못했다. A씨는 월급을 달라고 말했지만 돈이 없다는 사업주의 말에 급여의 20%만 받았다.

하지만 사업주는 한국인 직원들에게는 월급을 꼬박꼬박 지급했다. 그렇게 한 지 6개월, 체불된 임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월급을 못 받게 될까 불안해진 A씨는 다시 사업주에게 월급을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사업주는 불법 체류자인 A씨의 약점을 잡아 오히려 회사를 그만두라고 큰 소리를 쳤다.

#사례 2. 합법체류자인 외국인 노동자 B씨(27)는 법적으로 4대 보험을 보장받을 수 있다. 하지만 사업주는 4대 보험을 가입해주지 않았다. B씨는 몸이 아파 병원에 갔지만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했다.

B씨는 이 같은 사실을 노동부에 알렸지만 담당부서가 아니라며 건강보험공단으로 책임을 떠넘겼다. 건강보험공단은 사업주가 보험료를 내도록 강제할 수 있는 법이 없다고 B씨를 외면했다.

“이주 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많은 이주 노동자들이 극도로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고통당했다.”

국제앰네스티가 지난 5월 27일 발표한 ‘2010 국제앰네스티 연례보고서 전 세계 인권상황’ 가운데 우리나라에 대한 내용이다.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이주 노동자들은 고용허가제가 고용주의 권한을 과도하게 부여해 불공정한 해고, 성적 착취, 강요된 연장근무 등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국제앰네스티는 “내국인 노동자보다 이주 노동자에게서 사망 등의 산업재해가 월등히 높게 나타났다”며 “출입국 공무원들은 비정규 이주 노동자 체포 시 종종 제복을 입지 않았고 영장을 제시하지 않거나 구금자에게 권리를 고지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서민식(대전이주노동자연대) 대표는 “이주 노동자들은 목적 자체가 돈을 버는 것이기에 웬만한 인권침해는 그들 나름대로 견뎌낸다”며 “이들이 원하는 것은 일한 만큼 대가를 받는 것인데 이들에 대한 임금체불 현상은 심각한 수준”이라고 우려했다.

서 대표는 또 “인권침해를 없애기 위해선 한국사회 내에서 이주 노동자들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외국인 노동자를 단지 일자리를 뺏으러 온 사람으로만 봐선 안 된다”고 말했다.

대부분 영세 사업장은 고용비용이 저렴한 외국인 노동자를 주로 채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최근 집중단속으로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를 강제 추방하는 일이 잦아 영세 사업장 고용주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서 대표는 전했다.

불법체류 노동자 K씨(필리핀)는 “지난해 공장에서 다른 업체에서 온 한국인 노동자와 말다툼하는 과정에서 집단구타를 당해 뇌진탕으로 병원에 실려 갔다”며 “그들은 내가 불법체류자이기 때문에 신고를 못한다는 약점을 이용해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주 노동자에 대한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가 이같이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고 우려했다.

석현모(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 씨는 “현재 한국의 이주 노동자 관련 정책은 사업자에게 모든 권한을 부여하고 이주 노동자는 종속적 지위에 있어 법적 지위를 전혀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이주 노동자의 인권 개선은 정부 제도를 바꾸는 것 외에 특별한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한편 국제앰네스티는 G20정상회의를 앞두고 국내 이주 노동자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