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한국경제 “비자기간 끝나도 (불법)체류할 것 … 돌아가면 일자리 없어”
2011-01-31 오후 12:54:01 게재

한국사람 '빨리 빨리' 적응 안되고 노동강도도 너무 세 … 가족에겐 "잘 있다, 괜찮다"위로하기도

인도네시아인 토마스 안드레안이 한국에 온지 이미 5년차에 접어들었다. 29일 경기도 광주에서 만난 그는 한국말에 여전히 어색해 했다. '어떻게' '어떤' '얼마' 등이 포함된 의문문엔 한참동안의 설명이 필요할 정도였다.

저녁 6시를 넘어 기온이 다시 영하 10도 밑으로 내려앉았다. 토마스는 두꺼운 점퍼를 걸쳐 입고는 제법 밝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평상시엔 오후 6시께 끝나고 토요일엔 쉰다. 특히 요즘은 일거리가 많지 않다.

◆한국 가려 월급 3배 써 = 토마스는 5남 2녀 중 다섯째다. 부모와 형 3명, 누나 1명, 남녀동생 각각 1명씩이다. 형제중엔 시청에서 일하는 공무원이나 학교교사도 있을 정도로 집안 살림이 나쁘지 않다. 토마스는 "공무원 교사라고 해서 월급이 많은 것은 아니고 크리스찬이라 뇌물도 받지 않아 그리 넉넉한 살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호텔리어로 일했다. 한화로 월 55만원을 받았다. 단순사무직이라도 20만원정도 받으니까 상대적으로 고소득자인 셈이다. 그러나 이 돈은 교통비와 조금의 여유를 부릴 정도에 지나지 않다.

우연히 신문에 나온 광고를 봤다. 한국정부와 인도네시아 정부 간에 맺은 고용협약에 의해 한국에서 일할 기회가 생겼다는 것이었다.

최근엔 250만원 들지만 당시엔 140만원정도로 각종 훈련과 한글시험을 준비했다. 월급의 세 배 가까운 비용을 들인 셈이다. 평균적으로 따지면 7배의 고액이 필요하다. 운이 좋은 편이다. 이 과정을 통과해 인력풀에 들어가더라도 모두 선택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어떤 일 하는지도 모르고 와 = 외국인 노동자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할지도 제대로 모르고 온다. 노동자를 채용하는 사람들도 충분히 검증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한국으로 들어오고 싶은 외국인들이 보는 한국어 시험의 합격선은 80점이다. 만점이 200점이므로 40%만 맞추면 된다. 문제은행에서 출제한다. 인력 풀에 올라가면 한국의 회사에서 사람 수를 정해 선발을 요구한다. 인력풀에서 3배수로 인적사항을 제시받은 후 고른다. 한장짜리 인적사항엔 신체조건과 AIDS(후천성면역결핍증) 등 기본적인 병력 등이 기재된다.

'선택'된 노동자 역시 자신이 가게 될 회사에 대한 개요를 간단히 보게 되지만 이 또한 수박 겉핥기다.

3일간 한국에서의 인사법 등 한국문화, 각종 업무와 관련한 기본기술 등을 교육받지만 실제 사용하는데는 턱없이 부족하다.

토마스는 "처음에 올 때 마루재료를 만드는 회사인지 몰랐다"면서 "그냥 찍어서 오게 되는 것이고 개인적인 상황은 거의 고려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할 준비도 안돼 있어 = 외국인에게 위험한 일을 맡기는데다 외국인 역시 기계를 다룬 경험이 거의 없어 산재가 많이 일어난다.

토마스는 "기계를 다루지 못하는 데도 위험한 일을 맡기니까 다치는 경우가 많다"면서 "대다수 인도네시아 젊은 청년들은 야자수 숲에서 놀다가 고용계약서를 쓰고 온다. 무슨 일인지로 모른 체 기술도 없이 오기 때문에 적응하는 데만 6개월정도 걸린다"고 설명했다.

소똥 냄새가 싫어서 일을 못하겠다고 나오기도 하고 몸이 힘들어서 도망가려는 사람들이 많다. 고용된 지 1년이 지나면 직장을 바꿀 수 있어 옮겨다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운에 맡겨야 하는 한국생활 = 어떤 직종의 회사주인에게 선택되느냐가 팔자를 바꿔놓는다. 토마스는 운이 좋은 편이다. 그는 "기숙사건물 안에 있고 샤워시설, 화장실도 안에 있다"면서 "하루 3번 식사 주고 재워주는 데다 공장직원이 100명이 넘을 정도로 크고 그중 10여명이 외국인이라서 그렇게 차별이 심하지 않다"고 말했다.

옆에서 한참 얘기를 듣고 있던 네팔인 누르가는 "공장에서 일하고 싶다"며 웃었다. 그는 농장노동자다. 그는 "요즘 (구제역 때문에) 일이 없어서 이렇게 나와 있다"면서 "농장노동자는 밥도 안 주고 최저임금 잔업도 알아주지 않는다. 한달에 두번밖에 안쉰다"고 아이처럼 한참 토해냈다. 이어 그는 "추운 데 100미터 떨어진 구식화장실까지 가야한다"면서 '100미터'를 계속 강조했다. 하루 12시간 정도 일하고 월급은 94만원 받는다.

바다에 전혀 경험이 없는 네팔사람이 어업비자를 받아 들어온 경우도 있을 정도로 개도국 외국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나라로 들어오려고 하지만 실제로는 적응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다른 문화, 고려해 주지 않는다 = 토마스는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한다. 요즘은 건설경기가 좋지 않아 일이 많지 않지만 일이 많으면 밤 늦게까지 일하기도 한다. 하루에 12시간, 심지어 15시간을 넘기기도 한다. 그만큼 월급을 많이 받긴 하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노동강도다.

특히 한국인의 '빨리 빨리'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는 "한국사람은 '빨리빨리'를 요구한다. 질보다 양을 따진다. 그러다 보니 불량이 많이 나온다"면서 "게다가 먼저도 너무 많고 소음도 커 처음엔 많이 힘들었다. 적응하는 데 6개월이상 걸렸다"고 털어놨다.

인도네시아 문화에 대한 이해도도 많이 떨어졌다. 한번은 공장장이 한 인도네시아 노동자의 머리를 쳐 파업을 한 적도 있다.

그는 "인도네시아에서 머리를 건드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인도네시아의 문화를 전혀 이해해주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0명의 친구들 = 토마스의 월급은 야근수당까지 합하면 대략 145만원정도 된다. 이중 115만원은 인도네시아로 송금한다. 그는 "35만원은 옷도 사고 친구들도 만나고 교통비로도 쓴다"면서 "일주일에 1~2번 만나는 친구모임이 있다"고 말했다. 만나서는 주로 힘들었던 일들을 털어놓으며 '동병상련'을 한껏 느낀다.

그는 "만나면 주로 힘든 생활에 대해 얘기한다"면서 "불만은 무겁다, 뜨겁다, 너무 오래 일한다 등"이라고 설명했다.

인도네시아 가족과 결혼 후 한달만에 헤어진 아내와는 인터넷 채팅으로 대화한다.

그는 "아내는 '일 조심해요' '건강 챙기세요' 등을 얘기하고 한국에 오고 싶어하다고 하지만 초청이 제한돼 있어 어렵다"면서 "나도 '한국이 즐거워요' '괜찮아요' 등으로 위로한다"고 말했다. 대체로 현지에서는 한국에서 매우 잘 지내는 줄 안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유명한 곳이나 좋은 자동차 옆에서 사진을 찍어 보내기도 한다. 그는 "현재 우리가 지내는 모습을 사실대로 알려줄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이라도 체류할 거예요 = 토마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체류기간 만기'다. 올 6월이다. 다섯 달밖에 남지 않았다.

그는 2005년에 들어왔다. 5년을 넘으면 국적신청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에 체류기간을 5년으로 제한했다. 서른살에 들어와 서른다섯이 된 토마스는 "불법이라도 인도네시아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한참을 망설인 후 힘없이 말했다. 또 한참이 지난후에 그는 "돌아가도 할 일이 없다"고 털어놨다. 비록 환경은 좋지 않지만 선진문물과 교통 체계, 고임금을 인도네시아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워 불가피하게 불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버틸만큼 버티겠다는 생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불법'이라는 부담도 죄어오는 듯해 보였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