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00" align="center" border="0"> <tbody> <tr> <td> <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00" align="center" border="0"> <tbody> <tr> <td colspan="2" height="25"> </td> </tr> <tr> <td class="B18_212163_05" colspan="2">"아이 병만 고치면 한국 떠날 게요"</td> </tr> <tr> <td class="G10_8E908E_01" colspan="2">난치병 아들 수술비 구하다 붙잡힌 불법체류노동자</td> </tr> <tr> <td style="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30px; PADDING-TOP: 20px">텍스트만보기 </td> <td class="G9_818464_01" style="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30px; PADDING-TOP: 20px" align="right"><!-- --> 이정희(hee8861) 기자 </td> </tr> </tbody> </table> </td> </tr> <tr> <td height="5"> </td> </tr> </tbody> </table> <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00" align="center" border="0"> <tbody> <tr> <td class="context"> <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40" align="center" border="0"> <tbody> <tr> <td align="right"></td> </tr> <tr> <td height="10"> </td> </tr> <tr> <td align="left">▲ 난치병 수술을 위해 입국한 컨치벡과 빠리다 모자. 갑작 스럽게 발생한 남편의 단속 사실에 어쩔줄 몰라하며 불안해 하고 있었다. </td> </tr> <tr> <td class="context" align="left"></td> </tr> <tr> <td class="date" align="left">ⓒ 이정희</td> </tr> <tr> <td height="10"> </td> </tr> </tbody> </table> "우리 아들 수술만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했어요. 우리 어머니도 이제 83세입니다. 언제 돌아가실지 몰라요. 빨리 고향에 가고 싶어요. 제발 꼭 좀 도와주세요." <br /><br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인 호리코프 우랄(37)의 전화 목소리는 절규에 가까웠습니다.<br /><br />그에게 지난 몇 년간은 신변 불안과 박봉에 시달리던 고단한 세월이었지만, 지난 한달 남짓은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가슴 설레는 시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세 살배기 아들 컨치벡이 고국에서는 고칠 수 없다는 난치병 수술을 받기 위해 아내 빠리다(32)와 함께 지난달 20일 입국하여 입원 날짜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br /><br />그러나 기쁨도 잠시, 그렇게 고대하던 아들의 수술을 며칠 앞둔 지난 11일 오후, 우랄은 부족한 병원비를 마련을 위해 집 근처 아산시 둔포면에 나갔다가 불법체류 단속반에 걸려 외국인 보호소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아들의 수술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br /><br /><strong>수술비 빌리러 나갔다가 보호소 수감</strong><br /><br /> <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40" align="right" border="0"> <tbody> <tr> <td width="10" rowspan="5"></td> <td align="right"></td> </tr> <tr> <td height="10"> </td> </tr> <tr> <td align="left">▲ 단속반에 검거되기 며칠전 가족의 다정했던 한 때. </td> </tr> <tr> <td class="context" align="left"></td> </tr> <tr> <td class="date" align="left">ⓒ 아산외노지원센터</td> </tr> </tbody> </table> 우랄은 아들 컨치벡이 태어나기 4개월 전인 지난 2003년 11월, 산업연수생 자격으로 한국에 입국하여 대구의 한 철근공장에서 1년 정도 근무했습니다. <br /><br />그러나 허리통증이 악화되면서 도저히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습니다. 우랄은 수차례 회사 측에 근무지 변경을 호소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고 합니다. 몸이 더 악화돼 일을 못할 상황이 되면, 고국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처지에 놓인 것입니다. <br /><br />설상가상으로 우랄이 한국으로 온 이후 태어난 아들 컨치벡이 몸에 항문이 없는 상태라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컨치벡은 고국 우즈베키스탄에서 수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직장과 요로 사이에 생긴 구멍으로 인해 생명까지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더구나 우즈벡의 의료기술로는 더 이상의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br /><br />참다못한 그는 아들의 수술비 마련을 위해 무단으로 근무지를 이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이후 충남 아산시 인근으로 들어와 몇몇 소규모 제조업체를 전전하다 단속반에 잡혀가기 전날까지 공사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며 월 80여만 원 정도를 벌었다고 합니다.<br /><br />고향에 30만원을 부치고 방세 20만원과 공사장 식당 밥값 25만원을 제하고 나면 매월 10만원도 안되는 용돈으로 버틸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아들의 병원비를 마련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상황이 되었던 것입니다.<br /><br /><strong>아들 수술비 마련 때문에 근무지 이탈했다가</strong><br /><br /> <table cellspacing="1" cellpadding="0" width="310" align="right" border="0"> <tbody> <tr> <td width="10"> </td> <td width="300"> <table cellspacing="1" cellpadding="0" width="300" bgcolor="#758497" border="0"> <tbody> <tr> <td> <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298" bgcolor="#efefef" border="0"> <tbody> <tr> <td bgcolor="#efefef" colspan="3" height="8"> </td> </tr> <tr> <td width="8"> </td> <td align="center" width="282" height="20">한국이주노동자건강협회 찾아가보세요</td> <td width="8"> </td> </tr> <tr> <td bgcolor="#efefef" colspan="3" height="8"> </td> </tr> <tr> <td width="8" bgcolor="#ffffff"> </td> <td class="box1" width="282" bgcolor="#ffffff"><br />한국이주노동자건강협회에서는 제도적인 의료혜택(건강보험)을 받지 못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일정액의 회비를 받고 이들에게 의료비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br /><br />의료비 지원을 원하는 이주노동자는 가입비 5000원과 첫달 회비 6000원, 사진 2장, 여권 사본을 가지고 가까운 외국인 노동자 상담소를 찾아가 가입하면 된다.<br /><br />공제회에 가입하면 개인병원의 경우 진료비의 30~40%만 본인이 부담하며, 종합병원 40~50% 할인된 금액으로 치료를 받으실 수 있다.(단 공제회와 협약을 맺은 의료기관에 한함)<br /><br />사단법인 한국이주노동자건강협회<br />(02-3417-0516) </td> <td width="8" bgcolor="#ffffff"> </td> </tr> <tr> <td bgcolor="#ffffff" colspan="3" height="8"> </td> </tr> </tbody> </table> </td> </tr> </tbody> </table> </td> </tr> </tbody> </table> 태어나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아들이 난치병에 걸려 죽을지도 모른다는 슬픔에 견디다 못한 그는 지난해 11월에 충남 아산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이영석 간사를 찾아와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br /><br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이영석 간사는 백방으로 수소문 한 끝에 우즈베키스탄 대사관과 이 분야 국내 최고권위자인 서울대학병원 소아외과 박기원 교수, 불법 체류노동자들의 의료보험 적용을 도와주는 한국이주노동자건강협회에 도움을 요청하였으며 이들로부터 지원 약속을 이끌어냈습니다.<br /><br />이러한 과정을 거쳐 지난해 12월 20일 컨치백 모자는 아산외국인노동자센터의 신원보증으로 치료가 완료되면 출국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입국할 수 있었습니다.<br /><br />그러나 이번 수술의 병원비 상당액을 서울대학병원 측이 지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왕복항공료와 기타 병원비용을 포함하여 결국 200여만 원 정도를 우랄씨 개인이 부담해야 했습니다.<br /><br />점점 수술 날짜는 다가오고 수중에 가진 돈이 한 푼도 없던 우랄씨는 고민 끝에 주변의 고향친구들에게 5만원, 10만씩 빌려줄 것을 부탁했으며 검거 당일에도 친구들에게 부탁했던 돈이 통장에 입금됐는지 확인하려고 집 근처 둔포농협에 들렀다가 단속반에 붙잡혔던 것입니다. <br /><br /><strong>"불법체류 안 할 게요, 제발 우리 아들 좀 살려 주세요"</strong><br /><br /> <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40" align="left" border="0"> <tbody> <tr> <td align="right"></td> <td width="10" height="1" rowspan="5"></td> </tr> <tr> <td height="10"> </td> </tr> <tr> <td align="left">▲ 몸이 아픈 듯 칭얼대던 컨치벡이 자신이 찍힌 사진을 보여주자 활짝 웃으며 이영석 간사의 장난에 환하게 웃고 있다. </td> </tr> <tr> <td class="context" align="left"></td> </tr> <tr> <td class="date" align="left">ⓒ 이정희</td> </tr> </tbody> </table> 13일 오후 아산외국인노동자센터 이영석 간사의 안내를 받아 컨치벡 모자가 머물고 있는 충남 아산시 둔포면 관대리에 있는 우랄씨의 집을 찾았습니다. <br /><br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낮선 이국땅에 남편마저 없는 캄캄한 방에서 갇혀 지내고 있는 모자는 낮선 사람의 방문에 경계심을 보이며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몸이 아픈 컨치벡은 칭얼거리며 엄마 품에만 안기려고만 했습니다. <br /><br />그러나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자 신기한 듯 금세 환하게 웃으며 우리 일행의 품에 안기기도 하였습니다. 아들의 행동에 다소 안심이 된 듯 부인 빠리다씨도 초코파이와 삶은 계란을 내오며 먹으라는 손짓을 하기도 하였습니다.<br /><br />그러나 언어가 통하지 않아 인터뷰를 진행할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청주외국인 보호소 관계자의 협조를 얻어 우랄씨와 20여분을 통화할 수 있었습니다. <br /><br />그는 그동안의 상황을 설명하는 동안 울먹였습니다.<br /><br />"이번에 우리 아들 얼굴 처음 봤어요. 우리 아들 좀 살려주세요. 아들 병 고치면 불법체류 안하고 고향으로 돌아갈게요. 고향의 어머니도 이제 83세입니다. 돌아가시면 못 보잖아요. 아들 고쳐서 빨리 가고 싶어요."<br /><br />현재 우랄씨는 법무부 대전출입국 사무소 단속반에 의해 청주외국인보호소에 보호 조치되어 있습니다. 관련법에 따르면 그는 '300만 원 이상 1000만 원 이하의 보증금'을 내야 풀려 나올 수 있습니다.<br /><br />예정대로라면 컨치벡은 서울대학교 소아외과에 15일에 입원하여 17일에 항문 수술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석방되지 않는다면 보호자가 없는 컨치벡의 수술도 장담할 수 없게 됩니다. 이영석 간사가 우랄씨의 빠른 석방과 보증금 경감을 위하여 백방으로 뛰고 있지만 안타까움은 더해만 갑니다. <br /><br />우즈벡 소년 컨치벡이 건강한 모습을 되찾아 대한민국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한 채 고향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탈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합니다.<br /><br /> <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40" align="center" border="0"> <tbody> <tr> <td align="right"></td> </tr> <tr> <td height="10"> </td> </tr> <tr> <td align="left">▲ "'빠이 빠이' 컨치벡, 아저씨 다시올게" 이영석 간사가 모자와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 </td> </tr> <tr> <td class="context" align="left"></td> </tr> <tr> <td class="date" align="left">ⓒ 이정희</td> </tr> </tbody> </table> </td> </tr> </tbody> </tab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