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신부' 피살, 예고된 사고였나?>(종합)


베트남 신부 피살 사건 조의 표하는 외교장관 (서울=연합뉴스) 이상학 기자 = 베트남 신부 피살 사건과 관련해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16일 오후 도렴동 외통부 청사에서 트란 트롱 톤 주한 베트남 대사에게 위로금을 전달하며 조의를 표하고 있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온 베트남 이주여성 고(故) 탓티황옥씨는 신혼 8일만에 정신병력이 있는 남편에게 흉기에 찔려 숨졌다. 2010.7.16 leesh@yna.co.kr

남편 정신병력 전혀 몰라..'묻지마 결혼'의 결말

미등록·불법업체 설쳐.."동남아 여성도 온전한 인격체"

(부산=연합뉴스) 김선호 기자 = '베트남 신부' 피살 사건은 '한국의 국격'에 심각한 상처를 남겼다.

베트남 이주여성 고(故) 탓티황옥(20)씨의 '코리안 드림'은 무참히 깨졌다. 그것도 신혼 8일 만에 정신병력이 있는 남편 장모(47)씨의 손에 의해 갈가리 찢겼다.

이 사건은 한국사회에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책임을 다하려면 뼈를 깎는 성찰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아울러 이를 계기로 국제결혼 중개업자들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를 위한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결혼과 함께 비극 시작..8일만에 끝난 신혼 단꿈 = 탓티씨의 고향은 베트남 호찌민시에서 자동차로 6시간 걸리는 껀터시 외곽의 농촌. 그는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학업도 중단하고 호찌민으로 돈을 벌러 나갔다.

탓티씨는 가정부 생활을 하며 힘들게 번 돈 100만동(8만원)가량을 2개월에 한 번씩 부모에게 부쳤다. 그러던 중 지난 2월 결혼대행업체 소개로 한국인 남성 장모(47)씨와 만나 호찌민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 업체의 주선으로 한 쌍의 부부가 탄생했다.

한줌 재로 남은 베트남 이주여성 (부산=연합뉴스) 김선호 기자 = 15일 부산 금정구 영락공원에서 신혼 8일만에 정신병력이 있는 남편에게 흉기에 찔려 숨진 베트남 여성 탓티황옥씨의 부모와 사촌언니가 침통한 표정으로 유골함을 들고 화장장을 나서고 있다. <<지방기사 참조>> 2010.7.15 wink@yna.co.kr

하지만, 신혼의 단꿈에 빠져 있어야 할 탓티씨는 한국 입국 8일 만인 지난 8일 남편이 휘두른 흉기에 먼 이국땅에서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한국에서의 행복한 삶을 꿈꿨던 탓티씨의 '코리안 드림'은 신혼 일 주일여만 에 산산조각이 됐다.

◇남편 정신병력 전혀 몰라..'묻지마 국제결혼' 세태 = '아는 것이라곤 배우자의 이름과 나이뿐?'

탓티씨는 호찌민에 있던 결혼대행업체를 통해 장씨를 만났다. 장씨 역시 수원 소재의 모 결혼대행업체 소개로 베트남 호찌민으로 가서 베트남 여성 수십 명 가운데 탓티씨를 선택했다.

보통 한국 남성들의 동남아 여성들과의 국제결혼은 이처럼 40∼50명의 여성 가운데 한 명을 선택하고 하루 정도 같이 지내고서 결혼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결혼대행업체들의 설명이다.

당연히 배우자 후보에 관해 알 수 있는 것이라고는 키와 몸무게, 이름, 나이 정도.

탓티씨에게 흉기를 휘두른 장씨는 지난 8년간 무려 57차례에 걸쳐 정신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았던 정신질환자였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탓티씨는 전혀 알 수 없었다. 병력과 전과, 부양능력 등 결혼 전 반드시 알아야 할 정보에 관해 사전 통보를 받지 못한 것이다.

이주민·여성 단체는 일단 배우자에 대한 충실한 정보를 제공해 예비 신랑과 신부에게 판단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정수 부산 다문화인권교육센터 소장은 "최소한 배우자에 대한 충분한 정보만 전달해도 이번같이 불행한 일은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내딸 불쌍해서 어쩌나" (부산=연합뉴스) 김선호 기자 = 신혼 8일만에 정신병력이 있는 남편에게 흉기에 찔려 숨진 베트남 탓티황옥씨의 영결식이 15일 부산의료원에서 열린 가운데 탓티황옥씨의 부모가 흐느끼고 있다. 2010.7.15 wink@yna.co.kr

◇'국제결혼 과정' 허점투성이..불법업체 양성화 조치 필요 = 탓티씨 피살 소식이 알려지자 법무부가 임시방편을 내놓았다. 중국 및 동남아시아 여성들과 국제결혼을 희망하는 남성에게 출국 전 소양교육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마련해 시행하겠다는 것.

이에 따라 외국인 여성과의 맞선을 원하는 남성은 해당 국가로 출국하기 전 반드시 가까운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소양교육을 받아야 하며, 교육 미이수자는 외국인 배우자의 국내 초청이 제한된다.

또한, 11월18일부터는 개정된 '결혼중개업의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제결혼중개업자는 혼인경력, 건강상태, 성폭력·가정폭력·아동학대 등 범죄경력 등을 신랑과 신부의 자국어로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돈만 받으면 '묻지마 주선'을 해주는 불법·미등록 국제결혼중개업소가 난립하는 상황에서 법망을 얼마든지 피해갈 수 있다고 여성단체 관계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부산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부산에서만 21곳의 미등록 국제결혼중개업소가 적발됐고 10개 업소가 법 위반으로 영업정지를 당했다.

구수경 여성문화인권센터 대표는 "결혼중개업 자체가 불법인 베트남에서도 여성들이 국제결혼을 원하고 있고 결혼 적령기를 놓친 한국 남성들이 차선책으로 국제결혼을 선택하는 상황에서 불법·미등록 국제결혼중개업체를 양성화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동남아 여성 이혼 땐 '철저한 약자' = 동남아 여성에 대한 그릇된 결혼관도 문제다.

수백만원에서 1천만원대까지 사례금을 지급하는 한국 남성의 처지에서는 '돈을 주고 사왔다'는 인식에 빠져 마치 여성을 상품처럼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국제결혼을 한 한국 남성들이 동등한 인격체로 동남아 여성들을 대하지 않다 보니 부부싸움은 물론 가정폭력, 심지어 이혼에까지 이르는 경우가 많다.

실제 보건복지가족부에 따르면 다문화 가정의 이혼건수는 2002년 1천744건, 2004년 3천300건, 2006년 6천136건, 2008년 1만1천255건 등으로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주요 이혼사유는 외도(13.2%), 학대와 폭력(12.9%) 등이었다.

피살 베트남女의 행복했던 결혼사진 (부산=연합뉴스) 지난 8일 베트남 여성 탓티황옥씨가 신혼 8일만에 정신병력이 있는 남편에게 흉기에 찔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베트남 현지 인터넷 신문이 탓티황옥씨의 결혼사진을 공개했다. 오른쪽은 탓티황옥씨와 결혼한 한국인 장모씨. <<베트남 현지 인터넷 신문>> 2010.7.14 wink@yna.co.kr

또한, 동남아 여성들이 한류 영향 등으로 '코리안 드림'을 꿈꾸다 막상 국제결혼을 해놓고도 국내에서 이혼하면 불법체류자로 전락하는 등 철저한 약자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국제결혼에 대한 지나친 환상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베트남 신문 '두이째'의 명예기자로서 이번 베트남 신부 살해사건을 취재한 베트남 유학생 호앙 란(24.여.부산대 무역학과 대학원생)씨는 "한국사람들 역시 경제적인 이유로 국제결혼을 선택하는 과거가 있지 않았느냐"며 "온전한 인격체인 동남아 여성들에 대해 한국사회가 더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win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