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사는 사회니 도와야 한다"
 새우잡이 노동자는 그렇게 떠났다
[르포] 금양호 사망 선원들의 빈소... "6개월 동안 육지 못 밟기도"
10.04.07 11:25 ㅣ최종 업데이트 10.04.07 14:39 박상규 (comune)
<script type="text/javascript"> </script>
  
인천 송도 가족사랑병원에 마련된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 이주 노동자 람방 누르카요의 빈소. 람방 누르카요는 천안함 수색 작업을 돕다 지난 2일 사망했다.
ⓒ 박상규
천안함

생전에 이런 꽃 치장을 해본 시절이 있었을까. 흰 국화에 둘러싸인 영정 속 남자 얼굴이 쓸쓸해 보인다. 피부색도 얼굴 생김새도 다른 외국인이다. 영정 앞에는 '故 람방 누르카요'라 적힌 위패가 놓여 있다.

 

람방 누르카요씨는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온 인도네시아인이다. 그는 지난 2일 천안함 침몰 수색 작업을 돕는 '쌍끌이 어선' 금양 98호에 올랐다가 목숨을 잃었다. '코리언 드림'은 대한민국 서해바다에서 침몰했다.

 

그를 고용했던 ㈜금양수산도, 빈소가 차려진 인천 송도 가족사랑병원도 인도네시아 장례 풍습과 절차를 모른다. 그래서 그의 영정 앞에는 한국식 대로 북어포, 대추, 밤, 곶감, 배, 사과가 놓여졌다.

 

이렇게 쓸쓸하고 적막한 빈소가 또 있을까. 상주는 없었다. 목 놓아 곡을 하거나 만가(輓歌)를 부르는 이도 없다. 찾아오는 사람도 없다.

 

빈소 앞에는 조문객을 맞는 20개의 테이블이 있었지만 모두 텅 비어 있다. 람방 누르카요가 생전에 얼굴도 못 봤을 정운찬 총리와 정세균 민주당 대표의 조화가 빈소 좌우에 놓여 있었다.

 

홀로 한국에 와, 얼굴도 모르는 천안함의 장병을 구조하기 위해 거친 파도와 사투를 벌이다 사망한 이주노동자 고 람방 누르카요씨의 6일 빈소 풍경은 이러했다.

 

상주도, 손님도 없는 금양호 이주노동자의 빈소

 

그의 빈소 바로 옆에는 함께 구조 작업을 하다가 목숨을 잃은 고 김종평씨의 빈소가 차려져 있다. 김씨의 동거인 이모씨가 빈소를 지키고 있었지만 쓸쓸한 건 마찬가지다. 이씨는 "평생 바다에서 고생하다가 나라의 부름을 받고 도왔는데 이제 쓸쓸히 떠나간다"고 눈물을 훔쳤다.

 

김씨의 빈소 바로 앞에는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정병국 사무총장의 조화가 놓여 있다. 안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늦게 빈소를 찾았다. 안상수 인천시장도 방문했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와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도 이날 오후 빈소를 찾았다.

 

<script type="text/javascript"> </script>
  
6일 오후 인도네시아 이주 노동자 람방 누르카요의 빈소 앞은 이렇게 텅 비어 있었다
ⓒ 박상규
천안함

정치인들의 조문이 시작된 건, 언론이 '금양호 침몰 차별'을 지적한 후부터다. 금양호가 지난 2일 밤에 침몰했다는 걸 감안하면 늦어도 한참 늦은 조문이다.

 

실종·사망한 금양호 선원 9명은 어떤 삶을 살았던 이들이었을까. 그리고 그들은 왜 2일 밤 천안함 수색 작업에 나섰을까. 이들의 삶을 작게나마 기억하고 있는 인천 옹진군 대청도 공중보건의사 김현수(27)씨가 6일 오후 빈소를 찾았다.

 

김씨는 사망한 김종평씨와 실종된 이용상씨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김씨는 두 사람이 보건소를 찾았을 때 그들의 손을 직접 꿰매줬다. 그에게 몇 가지를 물었다.

 

- 실종자들과 인연이 있나.

"김종평씨는 지난 3월 15일, 이용상씨는 4월 1일 병원을 찾았다. 김씨는 머리를 다쳤고, 이씨는 손을 다쳐서 왔다. 두 분의 상처 부위를, 내가 직접 꿰매줬다."

 

- 어떤 이들로 기억하나.

"두 분 다 꿰매는 그 짧은 순간에 고개를 떨구고 잠을 잤다. 특히 김종평씨는 침까지 흘리며 깊이 잠들었다. 노동이 얼마나 고되고 힘들면 손을 꿰맬 때 잠이 들겠나. 마음이 아팠다."

 

- 노동 시간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은 게 있나.

"김종평씨가 말하길 하루에 12시간 정도 일하고, 바쁠 땐 밤낮 없이 계속 일한다고 했다."

 

- 금양호의 구조 작업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나.

"4월 1일 이용상씨가 왔을 때 내일(2일) 구조 작업에 나간다고 들었다. 이씨는 그런 일 하면 그물 상하고 몸도 피곤하다고 했다. 그런데 왜 구조 작업에 참여하냐고 물으니,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인데, 우리가 도와야지' 하더라."

 

손가락 꿰맬 때 자던 금양호 선원... "더불어 사는 사회인데, 도와야 한다"

 

'더불어 사는 사회니까 돕는다.'

 

많이 가지지 못했고, 많이 배우지 못했던 금양호 선원은 이 말을 남기고 바다로 나간 셈이다. 하지만 국방부는 금양호가 침몰한 직후 "구조 작업과 관련이 없는 침몰"이라며 발뺌을 했다.

 

김현수씨는 이날 실종·사망자들이 근무했던 ㈜금양수산 관계자들에게 "자신들 손을 꿰매는 순간에 잠을 자던 안타까운 사람들이다"며 "앞으로 회사에서 최소한 8시간 노동을 지켜줬으면 한다"고 부탁했다.

 

<script type="text/javascript"> </script>
  
금양호 침몰 실종자 가족들과 (주)금양수산 관계자들이 사고 원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6일 오후 실종자 가족대책위가 꾸려진 인천 연안동주민센터 2층이다.
ⓒ 박상규
천안함

김씨는 "굳이 할 필요 없는 말이었지만, 두 분이 잠을 자던 모습이 너무 안타깝게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인천 중구청에서도 금양호 선원들의 삶에 대해서 들었다. 한 관계자는 "쉽게 말해 21세기 새우잡이 노동자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금양호는 육지에 들어오지 않는 배다. 물고기를 잡으면 육지에서 배가 가서 물고기만 따로 담아서 가져 온다. 식수와 식료품 역시 육지에서 배달해 준다. 선원들은 육지에 잘 들어오지 못한다. 예전에 유명했던 바다에 떠있는 새우잡이 어선이랑 거의 같다. 그러니까 가정을 꾸리지 못했던 것 아니겠나."

 

실종·사망한 선원 9명 중 인도네시아 노동자를 제외하고 결혼한 사람은 없다. 바다 한 가운데에서 오래 생활하다 보니 가족 친지들과 왕래도 거의 없었다. 실종자의 한 친인척은 "먹고 살기 힘들어 연락할 틈이 없었다"고 말했다.

 

'금양호 실종자 가족대책위원회' 대표 이원상(실종된 이용상씨 동생)씨는 "2~3년 동안 형님 얼굴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한 가족은 "몇 해 전 명절 때 한 번 보고 못 봤다"고 밝혔다.

 

"길면 6개월 동안 육지 못 밟아... 어떻게 결혼을 하나"

 

그렇다면 금양호 선원들은 1년 365일 중 육지를 며칠쯤 밟았을까. 금양수산 관계자는 "길면 6개월 동안 바다에서 생활하는 선원도 있고, 보통 2~3개월에 한 번씩 육지를 밟는다"며 "휴가를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음식을 갖다 주는 배가 싣고 나왔다"고 말했다.

 

금양호 실종자 가족들은 지금 ▲ 실종자 수색 강화 ▲ 사망자 장례 지원 ▲ 사망했을 시 국가 차원의 적절한 예우 ▲ 정부와의 직통 연락 체계 구축 등을 요구하고 있다.

 

심상정 경기도지사 예비후보는 6일 오후 실종자 가족대책위가 꾸려진 인천 연안동주민센터를 찾아 "천안함 침몰 후 초기 대처가 잘 됐으면 금양호까지 동원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금양호 침몰은 국가의 요청으로 구조 작업에 참여하다가 벌어진 일이니, 모든 걸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망·실종된 금양호 선원 가족들은 보험회사에게 각각 약 1억 600만원에서~1억 1500만원을 지급받는다.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들은 죽음에서도 '차별'을 받는다. 외국인은 사망의 경우 3700만 원, 실종은 4100만 원을 지급받는다.

 

국가는 뒤늦게 금양호 선원들에 대한 의사자 추진을 검토한다고 6일 밝혔다. 의사자로 결정되면 유가족들에게 별도의 보상비가 지급된다. 하지만 학자금, 의료비 지원들은 직계 가족이 없어 별 혜택이 없는 셈이다.

 

실종자 가족대책위를 떠나기 직전 금양수산 관계자에게 물었다. 이 관계자는 귀찮은 듯 심드렁하게 답했다.

 

- 인도네시아 노동자들 가족과는 연락이 됐나.

"6일 오후에 간신히 연락이 됐다. 람방 누르카요 부인은 울면서 한국에 못 오니 시신만 보내라고 하더라.(웃음) 우리 보고 어쩌라는 건지..."

 

- 길면 6개월 동안 육지를 밟지 못하는데, 선원들의 1년 수입은 얼마였나.

"그건 말해 줄 수 없다. 물고기 많이 잡으면 많이 받지 않겠나. 자신들 하기에 달려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