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허가 판자촌 거주자에게도, 불법체류자에게도 도시에서 살 권리가 있다
도시에 대한 권리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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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미산 지키기 운동을 하고 있는 이 동네 주민들이 지난해 12월 건축 공사로 파헤쳐지고 있는 공사장 앞에서 노래로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출처 다음 카페 '성미산을 지키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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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참사가 있은 지 20일로 꼭 2년이 된다. 2009년 1월 그날, 용산 재개발에 따른 철거에 반대해 점거 농성을 벌이던 상가 세입자 중 5명이 경찰의 강제진압에 목숨을 잃었다. 경찰특공대원 1명도 숨졌다. 법원은 당시 불법행위를 한 농성자 대부분에게 중형을 선고했다. 아무리 먹고 살기 위한 투쟁이라도 불법은 안 된다는 논리였다.

재개발이 사람 잡은 야만으로 기억될 이 사건은 도시에서 사회적 약자의 지위를 보여준다. 실정법은 연민을 베풀지 않았다. 도시는 주민 모두를 고르게 대우하지 않는다. 장애인에게 도시는 돌아다니기 불편하고 위험한 곳이다. 불법체류 중인 이주노동자에게는 언제 강제 추방될지 모르는 곳이다. 그들은 도시에 대한 권리가 없다.

그러나 아니다. 도시는 그 안에 사는 모든 사람의 것이다. 그가 무허가 판자촌에 살거나 외국인이거나 불법체류자라 해도. <도시에 대한 권리>가 펼치는 주장이다. 도시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이 개념의 발달 과정과 실제 사례를 통해 소개함으로써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도시를 꿈꾸게 하는 책이다. 저자인 강현수 중부대 교수는 도시 및 지역계획학 전공자로 도시나 지역에서 진정한 발전이란 무엇이고 이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평생의 화두로 삼고 있는 학자다.

도시에 대한 권리는 한국에는 낯설지만 해외에서는 보편적 개념이다. 40여년 전 프랑스의 68운동 당시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앙리 르페브르가 주창했다. 그는 도시 주민 누구나 도시가 제공하는 편익을 누릴 권리, 도시 정치와 행정에 참여할 권리, 자신들이 원하는 도시를 만들어 갈 권리가 있다고 설파했다. 국적 인종 성별 나이 빈부 종교와 상관없이 모든 주민이 향유하는 권리라는 점에서 도시에 대한 권리는 국가 단위의 인권이나 시민권이 지닌 배타성을 뛰어넘는다. 빈곤층, 노인과 장애인, 어린이청소년, 소수 인종, 이주노동자와 난민, 철거민 등 사회적 약자도 차별하거나 배제하지 않는다.

세계 여러 나라, 여러 도시가 이를 실천하고 있다. 브라질은 2001년 무허가 정착촌 주민에게도 주거의 권리를 인정하는 도시법을 제정했다. 유럽연합(EU)이 2000년 제정한 '도시에서의 인권에 대한 유럽 헌장'은 350개 이상의 도시가 비준했다. 1960년대 일본의 혁신적 지방자치단체들은 도시 주민 누구나 건강하고 문화적인 최저 한도의 생활을 할 권리로서 시빌미니멈(Civil Minimum) 정책을 펼쳤다.

저자는 세계화 추세에 따라 국가 단위의 근대적 인권은 한계에 부닥쳤다고 지적하고, 삶의 터전인 도시에 대한 권리야말로 생활 밀착형 민주주의의 토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개념이 한국에서 어떻게 펼쳐져 왔으며, 어떤 노력을 해야 실현될 수 있는지, 현실적 장애는 무엇인지도 살핀다. 그간의 사례로는 70, 80년대 철거민 투쟁부터 장애인 이동권 확보 투쟁, 서울시 보행권 조례 제정 운동, 이주노동자 권리 운동, 외국인을 포함해 모든 주민을 대상으로 한 경남도와 전북도의 인권 조례 제정, 최근의 무상급식 조례 제정 운동 등을 꼽는다.

서울 청계천의 버들다리가 시민운동 끝에 전태일다리라는 이름을 병기할 수 있게 된 것은 주민이 직접 도시의 기억을 이름으로 붙인 바람직한 예로 든다. 동시에 이명박 정부 들어 인권의 전반적 후퇴 속에 도시에 대한 권리도 추락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용산 참사가 대표적 예다.

서울 마포구 성미산 마을 주민들의 활동은 도시 공동체 운동의 모범적 사례로 들었다. 이들은 이 산에 학교를 지으려는 홍익대학 재단에 맞서 성미산 지키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내 땅 갖고 내 맘대로 하는데 왜 반대하느냐는 논리에 맞서 도시에 대한 권리는 사유지라도 그 공간을 오랫동안 이용해 온 사람들에게 이용권이 있다고 주장한다. 도시의 주인은 특정 소수가 아니라 주민 전체라고 보기 때문이다.

개발우선주의를 맹신하는 이들에게 이런 주장은 씨알도 안 먹힐 것이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상주의라는 비판에 대해 저자는 "도시에 대한 권리는 현재의 도시가 아닌 미래의 도시에 대한 권리"임을 상기시키면서, 68운동 당시 구호였던 '모든 권력을 상상력에게'를 다시 외친다. 상상력은 실정법의 테두리에 갇히지 않고, 더 보편적인 인권과 정의, 평등을 추구한다. 40여년 전 르페브르가 도시에 대한 권리를 처음 주창했을 때 거기 공감한 사람들은 이렇게 외쳤다. "도시를 바꿔라, 인생을 바꿔라."저자가 하려는 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