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이 축산농가, 외국인노동자 탓? ...‘마녀사냥’ 나서나

책임전가로 일관하는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안

김도연 기자 2011.01.14 13:42

축산농가와 외국인노동자들에 대한 단속과 처벌을 강화하는 조항을 포함한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가운데, 정부가 구제역 발병의 책임을 힘없는 민간에 돌리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13일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이 개정안에는 축산 발병의 원인을 제공한 축산농가에게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의 처하도록 하는 등 축산농가에 대한 엄중한 조치를 하도록 하는 조항(개정안 제48조와 제57조)과, 축산농가에서 일하는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단속과 처벌을 더욱 강화하는 내용(제19조와 제48조)이 담겨 있다.

이 같은 법률 조항에 대해 농가를 두 번 죽이는 책임 전가라는 비판과 함께 외국인노동자를 잠재적 가해자로 만들어 ‘마녀사냥’을 부추긴다는 우려가 일고 있다.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앞서 12일 국회헌정회관에서 열린 ‘구제역 사태 대안 모색을 위한 긴급 토론회’에서 “질병의 발생 원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는데, 정부가 손쉽게 희생양 만들려고 한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최근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의 질의에 응답하며 ‘베트남에 다녀온 농민’을 감염경로로 지목하는 등 “완전히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런 언급을 할 수 있다는 데 충격을 받았다”며 “그렇게 공공연히 얘기되려면 구제역 균의 유전자형과 베트남 지역의 유전자균을 최소한 보인 다음에 얘기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우 교수는 또 이것이 농촌의 이주노동자 문제로 비화되고 있는 데 대해서도 “마녀사냥 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며 “정부가 책임져야 할 많은 부분을 힘없는 집단에 근거 없이 막연히 전가, 발뺌하고 국민 여론 호도하는 것이 느껴져서 염려스럽다”고 말했다.

진보 양당 의원들도 각각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안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은 국회 반대토론을 통해 “구제역 발병이 곧 하늘이 무너지는 사망선고와 같은 축산 농민에게 실형과 벌금, 발병에 대한 사회적 책임까지 전가시키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 주문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며 “치밀한 역학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발병의 원인을 정확히 밝혀내지 못하여 억울하게 범죄자가 되는 농가가 존재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축산농가에서 일하는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단속과 처벌을 강화하는 조항에 대해서도 강 의원은 “현재 축산농가에서 일하고 있는 1만5천 외국인노동자의 경우 상당수가 불법 체류자로 고용된 현실이어서 외국인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고, 축산농가들은 농장에서 일할 노동자를 찾기가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도 이번 개정안이 “축산농가들과 관련 종사자들에게 이중 삼중의 책임과 의무를 지우고 있고, 이를 위반한 농가에 대해 농장폐쇄, 보상금 차등지급, 심지어 징역형에 처하는 등 이중 삼중의 처벌을 담고 있다”며 “이번 구제역이 정부의 허술한 방역체계와 초기 대응실패에 주요 원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책임을 농민들에게 돌리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 의원은 이어 “이번 개정안에는 이주 노동자를 고용하는 축산농가에 대해 별도의 신고 절차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런 내용은 이미 대부분의 축산농가 이주 노동자의 노동력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현실에서 전혀 비현실적인 대책일 뿐 아니라, 외국인에 대한 차별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때문에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은 “이 개정안이 현재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구제역에 대한 실효성있는 대책이 되지 못한다”며 기권했다. 강기갑 의원은 이러한 우려가 있지만 “앞으로의 발병을 막기 위해 그동안 수많은 책임을 방기해온 정부가 최소한의 시스템은 갖추도록 강제해야 한다”며 찬성표를 던졌다.

한편 애초에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안의 입법 취지였던 ‘베트남 구제역 매개체설’이 사실과 다르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농림수산식품위원장은 해당 개정안을 제안하며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역학조사위원회의 2010년 1월과 4월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구제역에 대한 역학조사 결과에 따르면 구제역 발생 국가 출신 외국인 근로자와 구제역 발생 국가에 해외여행을 다녀 온 농장주가 입국 후 소독 절차 없이 농장에 출입함으로써 해외로부터 가축전염병이 국내로 유입되었고, 2010년 11월에 발생한 구제역도 해외여행을 다녀 온 농장주에 의해 전파된 것으로 추정되는 등 해외로부터의 가축전염병 유입을 근절할 제도적 장치가 시급한 실정”임에도 “현 가축전염병 방역·검역 제도는 해외로부터의 가축전염병의 국내 유입과 유입된 가축전염병의 확산을 효과적으로 예방하지 못하고 있고 가축전염병에 대한 가축의 소유자 등의 방역·검역 의식이 매우 안이한 상황”이라며 그 제안 배경을 밝혔다.

하지만 대구경북지역 신문인 매일신문은 지난 6일 보도를 통해 “구제역 사태의 감염 경로로 전국에 알려졌던 3명의 베트남 여행 축산농가가 이번 구제역 첫 발생지와는 시간적·공간적으로 아무런 역학 관계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전했다.

매일신문은 ‘베트남 여행농가, 구제역 누명 벗었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지금까지 베트남 구제역 매개체로 공개적으로 거론돼 온 안동의 세 사람 중 두 사람은 이번 구제역 첫 발생지와 연고가 없고, 귀국 후 한 차례도 구제역이 발생한 서현양돈단지를 방문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확인돼 일찌감치 역학조사 대상에서 제외됐으며 나머지 한 사람도 당국이 베트남 구제역 바이러스 첫 유입일로 보는 작년 11월 10일보다 3일이나 지난 같은 달 13일에야 귀국 후 처음으로 서현양돈단지 내 돈사를 방문한 것으로 확인돼 이마저도 역학조사 대상으로서의 과학적인 근거가 희박해진 상황이 돼버렸다”며 “가장 유력한 구제역 바이러스 매개체로 거론되던 이들의 혐의가 풀리면서 이번 구제역 사태의 원인 규명과 감염 경로를 새로 조사해야 할 상황이 됐다”고 보도했다.

이 내용을 보도한 권동순 기자는 7일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사태 초기에 언론들이 베트남에 다녀온 축산농민 때문에 구제역이 발병한 것처럼 일제히 보도하고 나선 것은 지역 방역대책본부에서 역학조사 과정에서 검토 중이었던 사안을 기자들에게 흘렸기 때문인데 이후 구제역과 여행을 다녀온 농민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며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구제역의 모든 책임을 축산농가에 떠넘겨 축산업을 허가제로 바꾸고 가축관련 질병법을 강화하겠다는 기가 막힌 대책들을 내놓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