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명령’에 맞서 싸우는 미셸 카투이라 이주노조 위원장, 그에게 한국이란 무엇인가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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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셸 카투이라 서울·경기·인천 이주노조 위원장은 “한국 활동가들의 운동방식이 이주노조 운동과 문화를 지배하지 않도록 독립성을 높여나가겠다”고 말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제40화] 나는 당당한 이주노동자!

그는 남자다. 노동운동가다.

필리핀에선 달랐다. 그는 여자였다. 노동운동도 몰랐다. 한국에서 성을 전환하고, 삶의 노선까지 전환한 셈이다.

미셸 카투이라(Michel Catuira·39)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주노조) 위원장을 모셨다. ‘서울·경기·인천’에 한정됐고 정식 인가를 받지 못한 법외노조이지만, 국내에서는 하나뿐인 이주노조다.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는 그에게 “3월7일까지 한국을 떠나라”고 명령했다. ‘허위취업’을 이유로 들었다. 그는 이 조처가 명백한 표적단속이라며 서울행정법원에 출국명령 등 행정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했다. 직설 대담 이틀 뒤인 2일, 서울행정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일주일 안에 한국에서 쫓겨날지도 모르는 형편이었지만 그는 편안해 보였다. 통역을 해준 김동영(이주노조 자원활동가)씨는 “다른 매체와 인터뷰를 할 때는 한국에 대해 쌓인 분노가 많아 화를 내기도 했는데 오늘은 정말 분위기가 좋다”고 말했다. 트랜스젠더에 관한 조심스런 질문에도 그는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호르몬 주사를 맞는 것에 대해 필리핀의 가족들이 적극 지지해주고 있다.”

마닐라 남쪽 리살 타나이에서 태어난 미셸은 2006년 한국에 왔다. 지난해 7월 이주노조 제5대 위원장으로 뽑혔다. 1·2대 안와르(방글라데시), 3대 카지만(네팔), 4대 토르너(네팔) 위원장은 표적단속에 걸려 보호소에 가거나 강제추방됐다. 이젠 그의 몫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또 어떤 방법으로 그를 괴롭히고 못살게 굴까.

진행·정리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서해성(이하 서) 장충체육관은 필리핀이 한국인을 위해 지어준 것인데, 필리핀과 관련된 곳에 가봤는지요?

미셸 카투이라(이하 미셸) 혜화동(필리핀 벼룩시장)만 가봤습니다.

한홍구(이하 한) 필리핀의 한국전 참전기념비도 있죠. 고양시에.

미셸 저희 할아버지도 한국전쟁에 참전했어요. 할아버지는 영웅 대접을 받았는데 노동자로 온 손자는 빈대 취급을 받고 있죠. 저는 한국이 바나나공화국이라고 생각해요. 겉은 노랗지만 속은 하얀색.(웃음) 자기들이 백인인 줄 알아요.

필리핀은 스페인과 미국 등 백인의 지배를 오래 받았죠. 필리핀 내부도 인종 문제가 복잡하다고 들었는데, 한국에서 겪은 차별과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요.

미셸 필리핀엔 섬이 많아요. 섬끼리 언어도 다를 정도죠. 그래도 외국인이 오면 왕이나 여왕처럼 받들어요.


눌러살까봐 그렇게 걱정되세요?


한국도 88년 올림픽 전까지는 주로 지위도 높고 돈도 많고 한국사회 높은 곳에서 필요로 하는 미국이나 유럽 사람들이 왔기 때문에 대우를 잘 해줬죠. 지금은 외국인들이 하층 노동자 신분으로,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3디(D)업종에 많이 옵니다.

해 이주노동자 체불임금을 대략 200억원가량으로 추론할 수 있습니다. 평균월급을 100만원으로 치면 2만명이 떼인다는 이야기죠. 근데 2010년 강제출국당한 이주노동자 수가 공교롭게도 2만여명이에요.

미셸 ‘사장님 나빠요’.

그런 사장님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 ‘빨리빨리’죠.(웃음) 그분들이 ‘가족처럼 대해준다’는 말도 자주 하죠?

미셸 위선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족처럼’이라는 말 속엔, 가족이니까 밥 먹여주고 옷 사주고 재워주고 같이 논다, 대신 월급은 안 주는 거야. 자식한테 월급 안 주잖아요.(웃음) 사장님들의 그 말씀을 들을 때마다 뜨끔해요.

‘가족처럼’은 60~80년대 한국 노동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할 때 썼던 말이에요. 노조가 큰 힘을 얻으면서 그 말씀이 사라졌죠.

미셸 한국에 오기 전 교육받을 때 비디오를 보는데, 중소기업은 ‘가족처럼’ 대해주고, 큰 기업은 급여가 높다고 하죠.

제가 만난 법무부 관료나 출입국관리사무소 실무책임자들은 묘하게도 반이주노동자 감정을 갖고 있더군요. 이주노동자 때문에 일자리를 잃는 것도 아니고, 이주노동자가 온 건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기 때문인데 말이죠. 왜 그들이 반대감정을 가졌을까요?

미셸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단속건수가 많으면 인센티브 포인트가 쌓이기 때문은 아닐까요?(웃음) 이주노동자가 한국 사회의 단일성을 파괴한다고 생각하나 봐요.

법무부 인권정책 자문위원을 할 때 고시 패스한 엘리트들인 과장급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깜짝 놀랐어요. “이주노동자들을 왜 못살게 구느냐. 노동허가도 해야지” 했더니 바로 튀어나오는 답이 “그러면 여기 눌러살 거 아니에요? 우리는 단일민족인데”였거든요.

드라마 <추노>가 큰 인기를 끈 적이 있어요. 조선시대 노비 사냥꾼들 이야기죠. 어떤 공무원들은 그 사냥꾼들 노릇을 하는 셈이죠. 드라마를 보면서 추적당하는 이주노동자들이 겹쳐졌어요.

미셸 이주노조 3대 위원장이었던 카지만(네팔) 동지가 납치되다시피 잡혀 강제출국을 당한 것은 <추노>와 다를 게 없어요. 단속이 심해질 때면 서대문에 있는 노조 사무실(민주노총 서울본부 내) 밖에서 밴이 왔다 갔다 하며 감시를 하죠. 지난해 12월 마로니에공원(서울 혜화동)에서 열린 ‘이주노동자의 날’ 때 제가 이주노동자방송과 인터뷰하는 걸 여자경찰이 다가와 전화를 거는 척하면서 녹음을 하더라고요.

미네르바처럼 전기통신법 위반이네요.(웃음)

엠비정부는 외국인노동자를 한국인으로 대체 고용하면 시설투자비를 50%까지 지원하고,사람당 120만원을 지원하겠다는 발표를적이 있어요. 이주노동자 수를 줄이겠다는 거였죠.


이주민 관련 종교단체들의 권위적 자세


미셸 우리가 주로 일하는 분야에선 한국인들이 일하려고 하지 않아요. 결국 올해도 이주노동자 쿼터가 늘어났고요. 한국인 실업률과 관계없이 이주노동자는 계속 필요한 거죠.

그래서 각하가 눈높이를 낮추라고 했죠.(웃음) 이주노동자들을 지원하는 상담소나 엔지오, 종교단체도 많은데, 왜 굳이 어렵고 힘든 노조활동을 하시는 겁니까?

미셸 잘못된 답을 드릴까봐 좀 두렵습니다.(웃음) 한국의 일부 엔지오나 이주노동자 권익단체들이 이주노동자에게 시혜를 베푸는 듯하는 태도는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미셸 임신중이던 미등록 여성노동자가 해고를 당했는데 남자에게서도 버림받은 상태였어요. 가톨릭 단체로 가서 아이 낳고 보상받는 데 도움을 받았죠. 단체에선 아기를 필리핀으로 보내도록 도와주겠다고 했어요. 엄마가 아기를 데리고 있고 싶다고 하자, 그렇게 하면 추방당한다면서 당장 이곳을 떠나라고 했죠. 권위적 자세인 거죠. 사실 고용허가제도 몇몇 종교단체들이 정부와 협상을 해서 통과시킨 거잖아요. 무엇보다 이주 관련 엔지오와 종교단체들은 이주민 역량 강화보다는 그들의 서비스에 우리를 의탁하게 만들어서 결과적으로는 이주노동자들을 수동적으로 만들어요.

혹시 한국의 헌법을 읽어본 적 있나요?

미셸 노동법 관련 구절은 읽어봤어요.

이주노동자 노조 활동은 최소 네 가지 법률적 근거를 갖고 있어요. 헌법 제6조 2항 외국인은 국제법과 조약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 지위가 보장된다. 헌법 제33조 제1항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근로기준법 제5조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해 국적, 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대우를 하지 못한다. 그리고 요거는 외우기가 쉬워요. 아이엘오(ILO, 국제노동기구) 협약인데 111조. 인종, 피부색, 출신국 또는 사회적 신분 등에 의해 차별대우해서는 안 된다. 이걸 길게 말한 건 이주노동자는 물론, 우리 대통령 때문이기도 해요. ‘국격’을 위해서.(웃음)

미셸 실천이 잘 안되는 법조항들이죠. 다음에 번역해서 캠페인할 때 써야겠네요.

현행 헌법이 87년에 만들어졌는데 이주노동자가 지금처럼 70만명이 되리라는 걸 염두에 두지 못했죠. 우리 법 체계에 이주노동자에 관한 부분은 적극적으로 명시해야 합니다. 이주노조 현황은 어떤가요?

미셸 정식명칭이 서울·경기·인천 이주노조이지만, 이 지역에서 일하다가 부산·울산·창원에서 일하는 분들이 많아 전국에 조합원이 퍼져 있는 셈입니다. 정부 단속이 심해서 현재 250여명밖에 되지는 않지만. 한국인 노조에 통합된 노동자들도 많고요. 대구 성서공단노조에는 이주노동자 사업국이 따로 있죠.

상당기간 한국에서 일하다 자기 나라에 돌아갔을 때 적응 못 하거나 차별받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나라도 이미 변해 있을 테고.

미셸 자기 나라에서도 외톨이가 되곤 해요. 그래서 나중에 필리핀 돌아가면 그런 걸 도와주는 단체나 재단을 만들 계획이에요. 아이엠더블유에스엔(IMWSN, International Migrant Workers Solidarity Network, 국제이주노동자연대네트워크)이라는 기구가 있는데, 이주노조 지도자 중 방글라데시나 네팔로 추방된 분들과 한국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네트워크를 만든 거예요. 본국에서 이주노동자들이 한국 오기 전에 조직과 교육을 하고, 또 한국에서 일하고 난 뒤 돌아갔을 때 지지대가 되어주는 거죠.

고용허가제로 바뀌면서 3년+3년 해서 6년밖에 있을 수 없잖아요. 한국말과 문화에 익숙해질 무렵 돌아가는데, 과거에 비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줄어드는 셈이죠. 법무부가 굉장히 불리한 여건을 고안해낸 거예요. 이게 고용허가제의 본질입니다. 이젠 장기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많지 않죠. 기간이 짧아서 문제지, 대부분 합법 신분이잖아요.


한국인 역할 최소화… 결정은 우리가 한다


미셸 고용허가제 이후 들어오는 노동자들은 투쟁 경험이 없을 뿐 아니라 들어오기 전 사회통합 트레이닝을 강하게 받고 들어오는 탓인지 빨리, 많이 벌고 돌아가야 한다는 의식이 강해요.

몇 년 동안 이주민 어린이들을 위해 아홉개 나라 말로 된 동화책을 만든 적이 있습니다.교수도 평화박물관에서 ‘엄마나라 이야기’라고 비슷한 사업을 했고요. 한국은 ‘다문화’라는 이름으로 동화정책을 쓰고 있어요. ‘한화’정책은 제국주의적 폭력성을 안고 있습니다. 이주민들의 모국어, 문화, 자기 정체성을 지켜내고 발전시켜내는 작업이 절실해요.

미셸 다문화정책이 동질화시키려는 시도라는 지적에 동의합니다. 그런 까닭에, 가령 지금 이주노조에서는 한국 활동가들의 역할을 최소화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한국의 운동방법이 이주노동자들에게 필요한 효과를 가져다주지 못하는 점도 있지만,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이들을 통해 한국의 운동방식이 이주노동 운동과 문화를 지배하게 되는 것이죠.

문제를 스스로 인식해서 행동하는 과정이 자기 안에 축적되지 않으면 일시적으로는 몰라도 종국적으로 성공하기 어렵죠. 엘에이(LA) 사는 한국인이 미국인 지도 받아서 운동한다면 말이 되겠어요?

미셸 이주노동자 특수성을 살린 고유한 전략과 투쟁이 필요한 거죠.

냉전 종식 이후 한국 노동운동권 상당수가 이주노동자 문제가 생기면서 그쪽으로 쏠려갔어요. 운동의 주체를 확립해야 한다는 지적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한국 활동가들과의 건강한 연대 방식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미셸 앞에서 말씀드린 이유로 더는 이주노조에서 한국 활동가는 일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다만 경험 공유나 자원활동, 교육 프로그램 지원 등은 당연히 필요하죠. 운동과 투쟁의 중요한 결정은 이주노동자들 스스로 내릴 것입니다.

이주노동자 아이들 교육도 심각한데, 보호가 차별이 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요.

미셸 우리는 다문화가정 자녀 특수교육에 반대합니다. 이는 인종차별적인 행위입니다. 다문화라는 이름 아래 교환과 공유가 되어야 할 교육을 한국 아이들과 똑같이 되도록 강요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저는 이 기회에 한국 아이들이 ‘특수한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웃음) 이주노동자 아이들은 여러 언어를 구사하고, 다른 문화를 접해보았고 이해하고 있는 셈이죠. 한국 학생들은 좀더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게 되는 거고요.

‘한류’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코리아 판타지’를 생성시키는 매개물인데다 통속성이 대중에게 끼치는 영향도 그렇고.

미셸 저는 한류의 팬이 아닙니다. 한류가 재현하는 한국은 우리들을 현실로부터 멀어지게 해요. 이것은 순간적 만족에 그치기 때문에 사회정의나 사람들에 대한 관심에서 떼어놓게 하고 물질주의에 집착하게 만들죠. 한류는 모르핀과도 같습니다. 우리들의 고통, 현실을 외면하게 하고, 결국 조금씩 조금씩 우리를 갉아먹을 것입니다.

한국이 부자 되는 데 결정적 영향을 준 것도 이주노동자로 일할 때였어요.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 중동건설 노동자로 나가서 큰돈을 벌었죠. 지금도 강남 부자들은 노동은 안 하지만 국적 이주를 계속하고 있어요. 원정출산.(웃음)

왜요? 산고(産苦)도 영어로는 레이버(labor)예요.(웃음)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자본의 약탈은 국경이 없는데 노동자들의 이동은 막고 있죠. 프랑스·영국 등 유럽에서도 비자법 갱신을 통해 장기체류를 못 하게끔 하고 있어요.

미셸 사람들을 이주하게 만드는 건 자본이잖아요. 자본은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데, 그 이익은 몇몇 곳에만 집중되고 있죠. 노동자들이 거기로 이동하는 거죠. 중요한 것은 자원을 분배하면 사람들이 이주할 이유가 없게 된다는 거죠.


한국인에 대한 증오·폭력 걱정된다


앞으로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들의 분노나 양태가 어떻게 나타날 것으로 보는지요?

미셸 우선 다른 나라에 경제적 기회가 생긴다면 상당수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을 떠나겠죠. 문제해결이 안 되면 명동성당투쟁(2003년) 같은 게 다시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이주노동자들 본국에서 한국에 대한 증오와 폭력이 일어날 수도 있어요. 실제로 지금 필리핀에서 그런 분위기가 일고 있어요.

어렸을 적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인(조승희)이 2007년 자기가 공부하던 버지니아공대에서 총을 난사해 여러 사람을 죽게일이 있었지요. 그의 정체성은 비사교, 침묵이었습니다. ‘사회적 모성’으로 이주민과 공생을 모색해야만 하는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다원성을 인정할 때 비로소 소통과 유대가 가능하죠. 한국인도 아니고 떠나온 나라 사람도 아닌 채 떠도는 일은 어떤 경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죠.

미셸 제 할아버지가 한국전쟁에 군인으로 참전한 일이나 제가 일하러 온 것이나 근본적으로 차이는 없다고 봅니다. 함께 싸운 사람들끼리 전우이듯, 함께 일하는 사람들끼리 국경은 없습니다.

비록 오늘 이주노조 운동이 몹시 힘들지만 10년 이내에 중대한 발전이 올 것으로 봅니다. 앞으로 30~40년 뒤엔 한국에 필요한 이주노동자가 1천만명은 돼야 해요. 단지 제 주장이 아니라 유엔에서 그렇게 보고 있죠. 저출산 고령화는 복지 문제와 더불어 이를 사회적 화두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한국의 미래는 이주(노동)민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죠. 그게 싫으면 아이를 많이 낳든가.(웃음)

머잖아 혼혈과 이주노동자가 한국 사회의 가장 중요한 문제로 대두될 텐데 거기서 단군할아버지 찾으면 후진 거죠. 한국엔 두 가지 체험의 국제화가 있어요. 하나는 고공의 국제화, 또 하나는 밑의 국제화죠. 시골 가면 첫째 며느리는 베트남, 둘째는 필리핀 출신인 경우 많잖아요.

70년대 말 필리핀 가수 프레디 아길라가 부른 ‘아낙’(ANAK, 자식)이라는 노래가 있어요. 타갈로그어(필리핀 언어)였지만 우리도 따라 불렀죠. 한국에도 오곤 했는데, 아무도 프레디 아길라를 이주노동자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한국에 와 있는 많은 이주노동자들, 혼인이주자들과 새로운 삶의 노래를 만들고 불러가야 하지 않겠어요.


■ 직설잔설

이승만도 김일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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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대에 전국적 대기근이 들었을 때 어디로 튈 데 없는 남쪽지방에서는 민란이 일어났다. 반면 북쪽에서는 사람들이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한국의 이민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지금 한민족의 수는 이남 5천만명, 이북 2천만명, 해외 각지 700만명 등이다. 민족성원 중에서 약 9%가량이 이주민 신세인 것이다. 해방 당시에는 무려 13~14%가 조선반도 밖에 있었다. 이들의 절대다수는 물론 이주노동자였다. 화교가 전세계에 널려 있다지만 전체 중국 인구에서 2%도 안 된다. 한민족은 아일랜드민족, 유대민족 등과 함께 가장 높은 이주민 비율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100여년간 죽어라 하고 이민을 내보냈던 나라가 지난 20여년간 죽어라 하고 이주노동자와 결혼이주여성을 받아들였다. 우리는 재일동포가 차별을 받았다거나 엘에이(LA)폭동처럼 재미동포들이 쥐어 터졌다 하면 엄청나게 흥분하곤 한다. 이 땅에 살고 있는 화교나 이주노동자들이 당하는 차별에 대해서는 쉽게 눈을 감아버린다.

정작 가난한 나라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의 인구 10만명당 범죄율은 한국인 범죄율보다 크게 낮다. 미국인 범죄율과 비교하면 거의 10분의 1 수준이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편견과 멸시와 잘못된 분노는 괴물 같은 파시즘의 서식지가 될 수도 있다. 어떤 역사교과서에서도 가르치지 않지만, 80년 전 이 땅은 최악의 반중국인 폭동에서 희생된 200여명 중국인들이 흘린 피로 붉게 물들었다. 일본 군대는 이 피를 밟고 만주로 쳐들어간 것이다.

오일쇼크로 전세계 경제가 휘청댈 때, 한국을 일으켜 세운 것은 중동의 열사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보낸 돈이었다. 나라를 빼앗겼던 시절, 임시정부를 먹여 살린 돈은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시간당 3~4센트의 저임금에 시달리던 이주노동자들에게서 나왔다. 이승만도, 김일성도 다들 이주노동자들을 기반으로 싸운 경력을 토대로 남과 북에 나라를 세우지 않았던가? 이제 한국이 이주노동자들에게 기회의 땅이 되어주어야 할 것이다. 한홍구


■ 알립니다

지난주 직설 ‘까칠한 인권운동가의 외침’ 편에 나왔던 인권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교도소에서 흡연을 금지할 법률적 근거가 없다”는 자신의 주장이 착오였다고 밝혀왔습니다. ‘형의 집행과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이 2007년 12월 개정되면서 담배가 금지물품(92조)에 포함되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