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 제한이 몰고 온 이주노동자의 죽음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을 찾은 지 넉 달 만에 한 네팔 청년이 자살했다. 네팔 총리실에서 일할 만큼 엘리트였던 그는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128호] 2010년 03월 01일 (월) 09:41:14 허은선 인턴 기자 webmaster@sisain.co.kr
충남 천안 ㅅ여관. 주로 일용직 노동자들이 머무는 이곳 305호에 네팔인 이주노동자 4명이 모여 살았다. 스물여덟 살 청년 레그미 씨도 그중 한 명이었다.

지난 1월16일 일을 마치고 여관으로 돌아온 그의 동료들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문을 열자 방 안은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술은 입에도 못 대던 레그미 씨가 사놓고 따지 않은 소주 한 병과 얼마 전 병원에서 처방받아온 수면제가 나뒹굴고 있었다.

그런데 방문 뒤에 뭔가 있었다. 바로 레그미 씨였다. 그는 흰색 운동화 끈으로 목을 매 자살했다. 유서는 없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인 ‘불법 체류자’도 아닌 그가 왜 목을 맸을까?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국제 비정부기구(NGO)에서 일하던 그는 한국에 오기 전 네팔 총리실에서도 일한 엘리트 청년이었다. 현지 공무원 시험에도 합격했다. 하지만 그는 한국행을 선택했다. 공무원보다 높은 임금 때문이었다.

   
네팔 국무총리실 재직 시절 마다브 쿠마르 총리(왼쪽)와 악수하는 레그미 씨(오른쪽).
지난해 9월 한국에 온 레그미 씨가 처음 일한 곳은 ㅂ자원. 폐기물을 운반하고 분류하는 쓰레기 처리장이었다. 네팔 현지에서 작성한 계약서에 표기된 사업장 영문명은 ‘B** JAWON’ 이었다. 근무 내용은 ‘제조업-플라스틱’이었다. 제조업으로 알고 한국에 왔던 그가 한 일은 계약서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게다가 그는 일주일도 안 돼 피부병이 생겼다. 직장을 옮기고 싶었다. 그러나 현행 고용허가제에 따르면 사업장 변경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다만 불가피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사업장 변경을 허용하며 최초 입국 후 3회까지 일자리를 바꿀 수 있다.

첫 직장을 나온 레그미 씨는 근로계약을 맺지 않고 일단 이곳저곳에서 일했다. 사업장 이전 횟수 제한 때문이다. 레그미 씨는 지난 10월 울산에 있는 식품공장에 이어 자살 직전까지 일하던 천안의 자동차시트 공장으로 옮겼다. 그로서는 입국한 지 두 달도 안 돼 3회 이직 기회 가운데 두 번을 써버린 셈이다.

“이직 제한은 ‘현대판 노예’ 조항”

한 번 망가진 몸과 마음은 추스르기가 쉽지 않았다. 레그미 씨는 자살하기 일주일 전인 지난 1월9일 ㅇ교회가 운영하는 네팔인 쉼터를 찾았다. 쉼터에서 공장에 연락해준 덕에 일주일 휴가를 얻을 수 있었다. “일하다 불량품이 나와 야단을 맞은 후 악몽과 불면증에 시달렸다”라고 털어놓았던 그는 쉼터에서 5분도 깊이 잠들지 못하고 불면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가 일한 자동차시트 공장 관계자는 “(레그미 씨가) 평소에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우울증을 왜 앓았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10일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이 바뀌었다. 사업장 변경 횟수 제한에서 폐업이나 휴업 등 이주노동자의 책임이 아닌 경우 이직 횟수에서 빼기로 했다. 하지만 레그미 씨처럼 애초 근로 조건이 계약과 달라 이직하는 경우는 개정안에서도 구제받기는 힘들다.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이영 사무처장은 “사업장 이동 횟수 제한은 악명 높았던 산업연수생 제도에도 없던 독소조항이다. ‘현대판 노예’ 조항은 즉각 폐지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레그미 씨의 시신은 지난 1월 말 비행기에 실려 네팔로 돌아갔다. 마다브 쿠마르 네팔 총리가 나서 네팔 정부가 장례비를 대준 덕이다. 레그미 씨의 죽음은 네팔 현지 신문 에칸티푸르(Ekantipur)에도 보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