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속 피해 추락하고, 자해하고…"이것이 '다문화'?"

[세계 이주민의 날] 인권단체, 이주노동자 인권 실태 발표

기사입력 2009-12-18 오후 4:44:28

#사례1. 지난 10월 7일, 서울 송파구 문정동 한 주택가에서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 A씨를 비롯한 9명을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이 체포했다. 이들이 갑작스럽게 체포된 이유는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으려는 회사 측의 신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는 체포 하루 전, 이들이 퇴직금 수령 문서에 서명을 거부하자 곧바로 출입국관리소에 신고를 했다.

#사례2. 지난 10월 14일 오후. 경상남도 양산 덕계다리 근처에서 한 중국인 노동자가 자해를 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는 단속반원들이 다가오자 곧바로 라이터 금속을 집어삼켜 가까스로 단속을 피할 수 있었다. 문제가 불거질 것을 우려한 단속반원들이 병원에 가라며 그를 풀어줬기 때문이다. 이날만 이 근처 공단에서 총 20명이 체포됐다.

2004년 고용허가제를 시행하며 아시아 최초로 이주노동자의 법적 권리를 인정한 '인권 국가' 대한민국의 성적표는 초라했다. '세계 이주민의 날'을 맞아 전국 곳곳에서 '다문화 사회'를 표어로 한 행사가 열렸지만, 행사는 하루일 뿐, 이주노동자는 수시로 이뤄지는 단속과 강제 추방의 공포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출입국관리소 '막무가내' 단속…인권위 권고조차 무시해

18일은 유엔이 제정한 '세계 이주민의 날'이다. 이날 오전 이주노동자노동조합과 인권단체들로 구성된 '이주노동자 차별 철폐와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 행동(이주공동행동)'은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주노동자의 인권 실태를 발표했다.

▲ '세계 이주민의 날'을 맞아 '이주노동자 차별 철폐와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이 이주노동자의 권리 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프레시안

출입국관리소의 단속 과정에서 일어나는 인권 침해 실태는 심각했다. 체포되지 않고자 자해를 하고, 체포 과정에서 부상을 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지난 4월 수원시 지동 한 주택가에서는 단속을 피해 도망치다 2층에서 추락해 온 몸에 골절상을 입은 한 중국인 이주노동자를, 출입국관리소 단속반원이 그대로 현장에 방치한 채 자리를 떠난 일도 있었다.

이에 대해 오산이주노동자센터 정창원 대표는 "경제 위기가 몰아닥치자 정부는 이주노동자를 부담스러운 짐짝 취급했으며, 이주노동자가 마치 내국인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은양 몰고 갔다"며 "이런 분위기 속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은 더욱 강화됐다"고 지적했다. 2008년부터 지난 10월까지 총 5만5000여 명의 이주노동자가 강제 추방됐다.

이런 상황을 놓고 문제제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11월 국가인권위원회는 대표적인 단속 행태인 주거지 무단 침입을 놓고서 "인간의 존엄성, 신체의 자유, 사생활 보호를 침해하는 행위"라며 단속 관행을 시정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할 것을 법무부에 권고했다.

그러나 많은 이주노동자는 법무부의 단속 관행에 변화가 없다고 지적한다. 공익 변호사 그룹 '공감' 장서연 변호사는 "최근 법원이 음식점, 공장, 집 등에 무단 침입해 이주노동자를 단속하는 게 인권 침해라는 판결을 내렸는데도, 출입국관리소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구잡이 단속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법무부가 지난 11월 발표한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은 외국인의 입국 및 등록시 지문 날인과 얼굴 사진 채취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장 변호사는 "이주노동자의 지문 날인을 의무화하는 것은 이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엔·ILO도 이주노조 합법화 권고…한국 정부 '뒷짐'만

이날 기자회견에는 '세계 이주민의 날'을 맞아, 이주노동자의 노동권 보장과 인권 보호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이주노동자노동조합 미셸 활동가는 "2007년 이주노동자의 노동조합을 법적으로 인정한 고등법원의 판결이 나왔는데도, 한국 정부는 이주노조는 물론 이주노동자의 노동권을 무시하고 있다"며 "여전히 이주노동자는 한국에서 일회용품 취급을 당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서 "ILO(국제노동기구)와 유엔은 등록·미등록이라는 지위 여부에 상관없이,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의 선택으로 노조를 결성하고 가입할 권리를 인정하라고 한국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며 "한국 정부는 모든 이주노동자의 노조 가입 및 결성 권리를 보장하고 이주노조를 즉각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이영 사무처장은 "1990년 유엔은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권리 보장 협약'을 채택했고, 이를 기념하고자 '세계 이주민의 날'이 제정됐으나, 한국 정부는 여전히 이 협약을 비준할 의사가 전혀 없다"며 "정부는 언제나 '다문화'를 운운하지만, 이주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이주노동자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이주공동행동은 모든 이주민의 권리 보장과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합법화를 촉구하는 내용의 선언에 서명한 1648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이 선언에는 민주노동당·진보신당 의원을 비롯해 각 지역 이주민센터와 인권단체 회원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이 선언에서 △유엔이 정한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 보호에 관한 협약'을 비준할 것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강제 단속 추방을 중단하고,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전면 합법화 할 것 △모든 외국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출입국관리법 개악을 중단할 것 △이주노동자의 노조 가입 및 결성 권리를 보장하고 이주노조를 인정할 것 △모든 이주민의 인권과 노동권을 보장할 것 등을 정부에 요구했다.
 

/선명수 기자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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